1. 학고재 <함영저화> 展


구글과 네이버에서 각각 학고재 갤러리를 검색하면 구글은 재동초등학교 옆으로, 네이버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옆이라고 가르쳐준다. 구글을 믿었으나, 이번에는 네이버가 옳았다. 재동초등학교에서 경복궁 우측 담벼락까지 걸어가는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진 않으므로 산책한다는 마음으로 구경하며 걸어도 괜찮다.



주로 중국, 상하이, 서울의 현대 미술 작품을 전시한다는 곳에서 어쩐 일로 중국 고문물만으로 꾸려진 전시를 기획했는지 궁금했다. 트위터에서 추천글을 본 이유도 있고, 슬슬 박물관에 가고픈 욕구가 솟아오를 때라서 지하철을 타고 슝슝 다녀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대 이상으로 만족스러운 전시였다. 미리 찾아본 홍보 기사에서는 대만 고궁박물관 이야기가 자주 나오길래, 고궁박물관에서 대여한 물건들을 전시하는 가 싶었는데, 직원 분께 물어보니 모두 중국과 대만의 개인 수집품을 대여한 것이라고 한다. 전시된 물건들을 보자면 문외한의 눈으로 보아도 소위 '박물관급'인 물건들이 대다수였다. 중국 고문물 시장이 이렇게 크단 말인가 싶어서 새삼 놀랐다. 아니나 다를까, 혼자 구경하다 보니까 아마 갤러리 대표로 생각되는 할아버지가 지인 대상으로 소개해주는 장면을 엿볼 수 있었는데, 점차 입지가 좁아지는 한국 고문물 시장에 중국 고문물을 소개함으로써 새로운 자극을 주고 싶었다는 말을 엿들을 수 있었다. 고문물 수집하는 사람들이 부유한 것이야 익히 이야기로 들어 알고 있었으나, 박물관에 들어가도 모자랄 것 없어 보이는 유물을 개인이 경매에서 획득할 수 있다니 참으로 딴 세상 이야기였다...




일반 박물관에 비해 작은 공간 안에 여유롭게 참 잘 전시해 놓았다. 전시물의 대다수가 목기, 토기, 귀금속류인만큼 360도에서 관찰할 수 있도록 모든 유물을 독립장에 전시해놓은 점이 가장 감탄스러웠다. 각 독립장에 딸린 백열등의 조도와 각도도 참 교과서적이었다. 누군지는 몰라도 이 전시를 기획한 사람, 굉장한 경력자일 것 같다. 

신석기 시대의 토기부터 청조 시대까지의 유물을 총망라했다고 설명되어있는데, 300점이라는 적은 수 안에 정말로 여러 시대 문물이 촘촘이도 포진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가장 눈을 사로잡는 것은 신석기 시대의 삼발 토기(참 고대 중국스럽지 않은가!), 송~원 시대의 옥 세공품, 청조 시대의 도자류와 유리공예, 귀금속류였다. 


다만 아쉬운 점은 정보전달용 판넬이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심지어 최소한의 정보 전달 수단인 작은 라벨 조차 없었다. 유물의 명칭, 시대, 재질 등을 알 수 없어 답답함이 컸다. 입구에서 열람할 수 있는 5만원어치의 도록과 각종 취재 기사가 없었다면 약간 짜증이 날 뻔 했다. 이 분야 전문가가 아니면 전시 자체를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관람객에게 제공하는 정보가 부족했다. 그러나 본래 박물관이 아닌 갤러리이고 무료 전시회인 것을 감안하면 감지덕지다. 



각설하고, 다음은  주의 깊게 두 번씩 본 유물들이다. 


<청백유 수골나한상>, 남송~원 (12~14세기), 백자상.
<청백유 수골나한상>, 남송~원 (12~14세기), 백자상.

전시실에 들어서면 가장 처음 마주치게 되는 백자상이다. 실제로 보면 아우라가 풍겨나올 것 같은 이 노인은 오랜 수행으로 등골이 다 드러난 도인이라고 한다. 뒷모습은 찍지 못했는데, 등을 보면 실제로 척추뼈가 다 드러난 것까지 볼 수 있다. 아시아투데이 기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고된 수행생활로 야윈 몸과 달리 형언할 수 없이 평안한 표정이 내면의 법열을 드러내는 작품"이란다. 가만히 얼굴을 관찰해보니, 쭈글쭈글한 눈과 입이 정말로 해맑게 웃고 있다. 



끝까지 정보를 못 찾아낸 도자기. 다만 윗면에 붙은 크리스티 스티커를 보고 개인수집품이라고 짐작했다. 



(좌) 구름문양으로 장식된 금 재질의 무언가. (우측 하단) 구름문양으로 장식한 금 재질의 무언가2.

바로 이런 점이 아쉽다. 장 옆에 간단하게라도 이름과 재질, 시대를 알려주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우측 상단) 여전히 명칭은 모르고, 새겨진 한문도 읽을 수 없지만... 백옥으로 산을 만들고 그 위에 글을 새겨, 금을 채워 넣었다. 한 마디로 금을 사용한 상감 기법인 셈이다. 백옥과 금의 조화를 여기서 처음 보았다. 



청나라의 물건으로 유추되는 것들. 노랑, 빨강, 그리고 파란 청화백자의 조화가 아름답다.
청나라의 물건으로 유추되는 것들. 노랑, 빨강, 그리고 파란 청화백자의 조화가 아름답다.

이 장에서 가장 눈낄을 끄는 물건은 가운데 놓인 붉은색 사과이다. 직접 눈으로 보면 진짜 사과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먹음직스럽게 잘 익은 사과였다. 대체 이게 뭐지 싶어서 기사를 뒤적거렸다. 



가운데의 붉은 사과가 보이시나요
가운데의 붉은 사과가 보이시나요

중앙일보 기사에 따르면, 17~18세기 청나라 때 제작된 홍유(紅釉) 사과 모양 필세(筆洗)란다. 한 마디로 붓 씻는 물통이라는 거다. 아래가 좁고 위로 올라갈수록 넓어졌다가 꼭지 부분에서 다시 오목하게 들어가는, 완벽한 사과 모양의 도자기를 빚은 다음 붉게 칠하고 그걸 물통으로 썼다니, 놀라운 사람들이다. 



이것도 대체 뭘까 싶었다. 실제 크기는 가로 10cm 내외. 아래에서 바라보면 꼭 옛날 선비들이 책 읽던 앉은뱅이 책상에서 서랍만 쏙 빼놓은 형상이다. 지나가는 대표 할아버지 얘기를 엿듣자니, 붓을 사용한 다음 바닥에 놓기 전에 먹물 묻지 말라고 올려두는 문방구였단다. 먹이 묻기 쉬운 물건에 나전칠기를 사용한 걸 보고 참 부유하다고 해야할지...



뒤쪽에 용과 남자가 싸우고 있는 것이 보이십니까?
뒤쪽에 용과 남자가 싸우고 있는 것이 보이십니까?

앞에 있는 건 향수병인 것 같았고, 그보다 내 시선을 끈 건 뒤쪽의 청화백자였다. 백자로 험한 산세와 파도를 빚어내고 투각으로 용과 사내를 조각한 다음, 청색 안료로 색을 칠했다. 그릇도 아니고 물통으로 쓰기에도 어려울 것 같은 이게 대체 무엇인고 했더니 붓을 세워놓는 필산(Brush Mountain)이란다. 연필꽂이 같은 건데, 그걸 이렇게 멋지게 만들어도 되나 싶었다. 정식 명칭은 <청화백자 신화고사 필산(Blue and White Porcelain Seven Mountains Brush Rest)>이다. 원나라 때의 물건이다. 


모두 청나라 시대의 유물들. 짙은 청색과 금색의 조화가 예쁘다.
모두 청나라 시대의 유물들. 짙은 청색과 금색의 조화가 예쁘다.

좌측의 금제 장신구와 앞쪽의 하얗고 파란 향수병이 눈길을 끌었다. 장 하나에 이런 식으로 유물을 배치해놓았는데, 배치한 사람의 색감이 장난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청조 때 특히 활발하게 제작한 단색 도자기. 메트로폴리탄에도 청조 시대의 단색 도자기가 무더기로 있는데, 색감이 놀랍다.
청조 때 특히 활발하게 제작한 단색 도자기. 메트로폴리탄에도 청조 시대의 단색 도자기가 무더기로 있는데, 색감이 놀랍다.


금제 장신구. 겹겹이 쌓인 꽃잎을 만드느라 가는 금실을 불에 녹여 동그란 구슬로 잘라낸 다음, 이어붙였다. 놀라운 기술이다.
금제 장신구. 겹겹이 쌓인 꽃잎을 만드느라 가는 금실을 불에 녹여 동그란 구슬로 잘라낸 다음, 이어붙였다. 놀라운 기술이다.



작은 연적?
작은 연적?

재질이 궁금한 물건이었다. 막연히 백자류겠거니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속이 비친다. 기사를 찾아보니 흰색 유리 위에 푸른 안료로 색을 칠한 유리공예란다. 나는 막연히 도자만 기억할 뿐, 중국의 유서깊은 유리공예를 잊고 있었다. 아마도 서쪽 페르시아에서 동으로, 동으로 전해졌을 2천여 년의 유리공예의 역사를. 


정식 명칭은 <투남색 유리 문방도 비연호>. 이렇게만 써놓으면 한자를 잘 모르는 난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럴 때는 영어명을 보면 조금 더 짐작하기 쉬워진다. 영문명은 <'Stationary' Designed Blue-on-White Glass Overlay Snuff Bottle>.


 

이게 바로 그 신석기시대의 삼발이 토기다. 삼발이라니... 정말 중국스럽다. 한반도에는 이런 토기 잘 없다. 

검은간토기 위에 황색, 적색, 홍색으로 색을 칠한 물건이라는데, 상주(商周) 시대 유물과 관련성이 있어서 상나라 실존의 증거 역할을 했단다. 상나라는 은(殷)이라고도 불린 고대 왕조로, 봉신연의에 나오는 그 은나라 맞다. 



고대 중국 냄새가 물씬 풍기는 화로....는 아니고 그 축소판.
고대 중국 냄새가 물씬 풍기는 화로....는 아니고 그 축소판.



삼국지의 한 장면을 그린 청화백자와 청자 두 점. 청자 색이 참 곱다.
삼국지의 한 장면을 그린 청화백자와 청자 두 점. 청자 색이 참 곱다.


청자 색이 아름다우니까 한 점 더. 이래서 Cerulean 이라고 부르는구나. 하늘의 색.
청자 색이 아름다우니까 한 점 더. 이래서 Cerulean 이라고 부르는구나. 하늘의 색.


청조 시대. 황실의 장신구.
청조 시대. 황실의 장신구.

카메라가 색을 너무 밝게 잡았는데, 실제로 보면 사전적 의미의 터키석색 그 자체다. 멀리서 봤을 때는 당연히 금테를 두르고 그 위에 터키석을 얇게 펴서 채워넣은 장신구인 줄 알았다. 그런데 보석의 결이 뭔가 특이해서 자세히 살펴보니



확대해서 이미지가 깨졌다ㅠㅠ
확대해서 이미지가 깨졌다ㅠㅠ

이렇게 새 깃털 같은 문양이 나 있는 것 아닌가. 그라데이션까지 완벽한 새 깃털이었다. 터키석을 깃털 모양으로 가공한 건가 싶은 생각에 경악할 뻔했다. 나중에 찾아보니 공작석이 아닌 공작석 색 깃털을 지닌 <공작새의 깃털>을 실제로 뽑아서 만들었다고 한다. 어느 쪽이든 경이롭다. 



마찬가지로 공작새 깃털로 만든 장신구. 예쁜 건 한 번 더 보자.
마찬가지로 공작새 깃털로 만든 장신구. 예쁜 건 한 번 더 보자.



마지막 세 가지는 정체를 알 수 없었거나, 나중에서야 알아서 답답한 유물들이다. 독립장에 라벨 하나만 붙여놓았더라도 참 감사했을 텐데.... 



청동기 시대로 추정되는 옥기. 뭔가 제사 지낼 때 썼을 것 같은 모양새다.
청동기 시대로 추정되는 옥기. 뭔가 제사 지낼 때 썼을 것 같은 모양새다.



이게 무엇일까... 한문을 모르는 나는 알 수 없다.
이게 무엇일까... 한문을 모르는 나는 알 수 없다.



이게 아주 골 때리는 물건이었다. 상아를 반으로 쪼개서 그 안을 파고 온갖 인물을 조각해넣은 물건인데, 대체 뭐에 쓰는 걸까 싶었다. 석고를 넣어서 문양 찍어내는 틀인가 싶다가도 부조인 것을 보면 그건 아니다. 대체 뭘까 하다가.. 도록을 읽고 알았다. 저 두개를 합치면 길고 완만한 원통이 되는데, 손목 받침대란다. 팔 놓고 쉬는 물건이었다. 그런데 그 속까지 파내서 조각을 하다니 무시무시한 집념이다. 영문명은 <A Pair of Ivory Wrist Rests Carved with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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