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부터 혼자 관람한 전시에 대해 기록하려는 습관이 생겼다. 티켓을 모으고 간단한 감상을 쓰는 정도야 십 대 때부터 늘 해왔던 일이지만, (허용되는 전시에 한하여) 기억하고 싶은 물건들을 사진으로 남겨두는 습관이 생기면서 한 편의 사진과 글로 정리해두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고 해야 할까. 늘어만 가는 휴대폰 속 사진 용량을 줄이고, 관람할 때의 기억도 보존할 수 있는 나름 좋은 방법이다. 


같은 날 관람한 학고재 갤러리 <함영저화 전>에 비해서 내게 큰 인상을 주지 못했음에도 파에즈 바라캇 서울관에서 본 것을 정리하려는 것도 위와 같은 이유에서이다. 감동적이진 않았지만, 그래도 잊고 싶진 않은 기억이기 때문에. 학고재 갤러리를 방문하고 근처를 돌아다니다가 웬 그리스 조각상이 있길래 호기심에 들어가본 곳이다. 백팩 하나 매고 들어가니 직원이자 학예사로 보이는 분께서 알고 오셨느냐고 물었다. '지나가다가 궁금해서 들어와봤다'고 하니, 파에즈 바라캇이란 사람이 대체 누구인지, 북촌 한 가운데 그리스와 이집트의 고문물이 멀거니 놓여있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를 참 친절하게도 설명해주신다. 그게 못내 미안해서 예상보다 더 오래 둘러봤더랬다. 


바라캇(Barakat)이라길래 <레인보우 브릿지> 작곡한 뉴에이지 피아니스트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아는 사람들은 아는 유명한 개인 고문물 수집가라고 한다. 화가와 갤러리 관장을 겸하고 있는 이 외국인 할아버지가 어떻게 해서 세계의 고문물을 수집하게 되었는지, 그렇게 많은 고문물을 수집할 자금은 어떻게 조달했는지 등 궁금한 점도 많지만, 나로서는 모를 일이다. 내가 기록할 수 있는 것은 그날 본 바라캇 씨의 고문물과 그가 직접 그렸다는 대형 유화 그림들뿐이다. 



파에즈 바라캇 서울관은 두 개의 전시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학예사 분이 들려주신 설명을 가물가물 떠올려 전해보자면, 우측 동의 갤러리는 현재 바라캇 본인의 그림 작품과 몇 개의 고문물을 함께 전시하는 기획 공간이다. 이번 전시명은 '물(物)'을 주제로 했다고 한다. 그래서 전시되어 있는 물건들도 대륙과 문화권을 망라하는 오래된, 털어내도 사라지지 않는 흙먼지가 쌓인 조각상, 인물상, 가면 등이다. 같은 고문물이어도 학고재 갤러리의 <함영저화 전>이 옛 사람들이 사용한 생활용품에 방점을 두었다면, 바라캇 갤러리의 고문물은 사람의 몸, 사람의 얼굴을 한 물건들로 구성되어 있다. 아마 이 수집품의 주인은 옛 사람이 쓴 물건보다는 옛 사람 그 자체에 관심이 많았었나보다. 



(앞) 어느 파라오의 조상. (뒤) 바라캇의 유화 작품.
(앞) 어느 파라오의 조상. (뒤) 바라캇의 유화 작품.

이런 식으로 이름 모를 어느 파라오의 조상과 바라캇 본인의 작품이 함께 배치되어 있다. 우측동 갤러리 전체가 이런 식으로 고문물 + 현대 예술을 함께 전시하는 구성이라고 이해하면 쉬울 것 같다. 현재는 갤러리 주인인 바라캇의 그림만으로 꾸몄지만, 향후 다른 예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할 수 있도록 공간 대여를 할 예정이라고 한다. 즉, 우측동은 바라캇의 수집물 전시보다는 현대 예술 전시공간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커다란 귀가 귀여웠던 어느 부족의 목조상. (목조물은 맞는 걸까?)
커다란 귀가 귀여웠던 어느 부족의 목조상. (목조물은 맞는 걸까?)


아담하고 작은 지하 공간 안에 다양한 문화권의 고문물을 구비해놓았다. 굉장히 이국적이고 원시적인(이 또한 오리엔탈리즘의 일환이겠으나, 정말 이 단어 외에 표현할 어휘를 못 떠올리겠다. 내 무지를 탓할 뿐) 아프리카의 목조 인물상들이 조르륵 놓여있는 것을 보면 귀엽기도 하고 이상야릇하기도 하다. 



우측동 지하에는 여러 물건이 전시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오래 머물렀던 자리는 얼굴 없는 한 그리스 여인의 조상과 그 뒤로 놓여 있는 바라캇의 네 점의 유화가 있는 자리였다. 


이 여인은 누구이며, 화폭 다섯 점의 이름은 무엇인가?
이 여인은 누구이며, 화폭 다섯 점의 이름은 무엇인가?

라벨이 붙어 있지 않아서 구체적인 정보는 알 수 없었지만, 동굴처럼 어둔 조명 속에서 한참을 바라본 장면이다. 길고 커다란 캔버스 위에 화려한 색감으로 길을 낸 붓자국. 그 앞에서 중앙 조명을 받으며 서 있는 대리석 상이 시간을 뛰어넘어 묘한 기분을 전해줬다. 



바라캇의 대형 작품을 처음 봤을 때는 그냥 커다란 캔버스 위에 어울리는 색들을 골라 마음가는대로 뿌려댄 그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까이서 관찰해보니, 두 가지 특징이 보였다. 첫째, 저 막 뿌린 듯한 물감 덩어리 안에서 마치 배춧잎 혹은 혈맥처럼 생긴 생명선이 보인다. 둘째, 금빛 펄을 사용한 부분이 유독 많았다. 미술에 문외한인지라 실제로 금가루를 넣어서 만드는 물감이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인공 펄을 함유한 물감이라고 해도 가격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고문물을 수집하려면, 빛나는 물감을 대량으로 사용해서 그림을 그리려면 그만큼의 재력이 필요한가보다. 



그리스 여인 조각상 뒤에 있던 다섯 작품 중 하나이다. 금빛으로 빛나는 색색의 물결과 배춧잎 같은 연두색 잎맥이 보이시는가?
그리스 여인 조각상 뒤에 있던 다섯 작품 중 하나이다. 금빛으로 빛나는 색색의 물결과 배춧잎 같은 연두색 잎맥이 보이시는가?



물처럼 퍼져나가는 잎맥과, 화려한 오색 비단 같은 물감의 움직임들이 아름답다.
물처럼 퍼져나가는 잎맥과, 화려한 오색 비단 같은 물감의 움직임들이 아름답다.


이렇게 유화 물감이 자연스럽게 섞여드는 기법은 우측동에 전시된 바라캇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발견된다. 수채화만 조금 끄적여 보고 유화를 그려본 적이 없는 나에게는 각자 본연의 색을 유지하면서도 그라데이션을 만들어내는 유화 물감이 신기하기만 할 뿐이다. 



중앙 부분의 붉은색, 보라색, 노란색, 흰색이 섞여드는 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중앙 부분의 붉은색, 보라색, 노란색, 흰색이 섞여드는 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진분홍빛 물감이 본연의 색을 유지하면서 자연스럽게 흰색 물감 속에서 번져가는 모습이, 내게는 신기하게만 느껴진다.
진분홍빛 물감이 본연의 색을 유지하면서 자연스럽게 흰색 물감 속에서 번져가는 모습이, 내게는 신기하게만 느껴진다.




금빛은 사용하지 않았지만, 또 다시 나타나는 바라캇의 혈맥 같은 저 생명선들.
금빛은 사용하지 않았지만, 또 다시 나타나는 바라캇의 혈맥 같은 저 생명선들.




우측동이 바라캇 자신의 작품과 고문물을 함께 전시한 기획 전시라면, 좌측동에서는 본격적으로 바라캇이 수집한 고문물들을 선보인다. 좁은 공간 안에 차곡차곡, 벽면 한 틈도 빠짐 없이 치밀하게 수납한 온갖 종류의 고문물을 보고 있으려니, 박물관급은 아니더라도 그 정성과 한 개인 수집가의 열정에 감탄이 들었다. 


안타깝게도 좌측동의 고문물 전시실은 내부 사진 촬영이 불가능하여 바깥에서 볼 수 있는 그리스로마 프레스코 벽화 한 점과 로마 시대의 '장례를 위한 초상' 한 점만 찍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내부로 들어가면 진열장 별로 이름과 재질, 시대, 지역이 적힌 간소하지만 자세한 설명 팜플렛과 함께 학예사 분의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중국의 불화부터 시작해서 이집트의 투박한 조상들, 그리스인들의 데드 마스크에 이르기까지 물건은 수없이 많다. 이번에도 역시 주제는 사람, 사람들이다. 



외부 유리창을 통해서 볼 수 있었던 프레스코 화. 현재 팜플렛이 없어서 확실하게 기억나진 않으나, 그리스 시대 것으로 추정한다.
외부 유리창을 통해서 볼 수 있었던 프레스코 화. 현재 팜플렛이 없어서 확실하게 기억나진 않으나, 그리스 시대 것으로 추정한다.

혹 벽화의 예술성 및 패턴의 특수성은 유수 박물관에 비해 뒤쳐질지 몰라도, 그 보존 상태와 이것을 수집한 열정과 애정 만큼은 감탄스럽지 않은가? 겸허한 마음으로 보았다.


 

유리창 너머로 비치는 풍경은 외면해 주시기를.
유리창 너머로 비치는 풍경은 외면해 주시기를.

로마 시대의 죽은 이를 위한 초상화. 새내기 시절 들었던 교양 수업의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이집트 문화의 영향을 받아 탄생한 일종의 장례 초상화이다. 헬레니즘 이후의 로마인들(특히 이집트 거주 로마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의 미라 위에 고인의 생전 모습을 모사한 장례 초상화를 함께 붙여 묻었다고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 관 안에, 묘비 아래 누가 잠들어 있는지를 알 수 있도록. 데드 마스크(Dead Mask)의 초상화 버전인 셈이다. 책과 사진을 통해서만 접하던 장례 초상을 실제로 접하자 잊고 있던 묘한 감동이 되살아났다. 책으로만 읽던 이집트와 그리스-로마 전통이 융합된 실례를 실제로 보는 오묘한 감각이. 이집트의 전통을 따른 미라 장례와, 그리스의 전통을 따른 프레스코 초상화. 


옛날 옛적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살던 한 로마인이 죽었다. 그러자 그의 친지와 친우들이 현지의 풍습을 따라 그 시신은 미라로 만들고, 그 얼굴은 고향의 풍습을 따라 파피루스 위에 생전 모습과 똑같이 그려서 함께 묻었다. 역청과 천으로 쌓인 고인의 미라를 만나도, 그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도록. 


곱슬거리는 머리카락과 둥그런 두 눈이 그렇게 살아 남아서 '내가 존재했노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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