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린스, 콜린스 소위, 이것 좀 먹어봐요. 아주 맛있어.”

발을 동동 구르며 걸음을 재촉하던 콜린스를 멈춰 세운 것은 이국 억양이 강하게 섞인 동료 조종사의 목소리였다. 돌아보니 얼마 전 RAF로 망명한 체코 출신 조종사 서너 명이 작은 냄비를 둘러싸고 둥글게 모여 있었다. 그는 부쩍 쌀쌀해진 바람을 피해 일찍 숙소로 돌아가려던 참이었으나, 새로 전우가 된 동료―그것도 갓 일 년 전에 고향을 잃고 이곳으로 망명한 외국인 동료의 초대를 선뜻 무시하기 어려웠다. 결국 콜린스는 시린 손을 비비면서도 체코 조종사들 곁으로 다가갔다. 추워서 겨드랑이를 바짝 움츠리고 뛰어오는 그의 모습을 보고, 체코인들이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이거 먹어봐요. 우리 와이프가 만든 건데 당신 입맛에도 맞을 거요.”

풍채 좋은 체코인 리더가 내민 것은 검은 액체가 든 작은 냄비였다. 그 아래에선 휴대용 난로로 불을 떼고 있었다. 낯선 괴음식을 보고 호기심이 발동한 콜린스가 멀찍이서 코를 킁킁거렸다. 검고 흐물텅한 반고체에서 나는 익숙한 단내를 맡은 순간,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외쳤다.

“초콜릿?!”

“맞아, 쇼콜라, 쇼콜라에요. 날씨 추워졌다고 우리 와이프가 간식으로 챙겨줬어. 여기 이 스틱 찍어서 같이 먹어요.”

리더 체코인이 아직 어눌한 영어로 손짓까지 동원해가며 먹는 법을 설명해줬다. 녹인 초콜릿이 담긴 냄비와 함께 그가 내민 것은 바게트를 축소해놓은 듯한 모양의 가느다란 막대 과자였다.

“이게 뭡니까?”

“이 막대 과자를 쇼콜라에 찍어 먹어요. 자, 이렇게. 어서. 한 입 들어봐요.”

콜린스는 긴가민가한 기색으로 초콜릿에 담갔다 뺀 막대과자를 받아들었다. 그러나 그 의심스런 눈길은 아직 뜨끈뜨끈한 초콜릿 막대가 혀끝에 닿는 순간 눈 녹듯 사라졌다. 입 안 가득 퍼지는 초콜릿의 단맛과 따스운 기운, 그리고 초콜릿이 남기기 마련인 씁쓸한 뒷맛을 중화시켜주는 담백한 막대 비스킷의 조합까지. 가히 천상의 레시피였다.

그 맛에 홀딱 반한 콜린스는 어느 새 권하지 않아도 알아서 열심히 녹인 초콜릿에 막대 과자를 찍어 먹기 시작했다. 그는 어느 새 한 손에 세 개씩 꼬치를 들고 흡입하면서, 뒤늦게 이 기막힌 간식의 이름을 물었다.

“이 굉장한 음식의 이름이 대체 뭐죠?”

“쇼콜라 퐁듀? 나도 잘 몰라요. 우리 고향에선 겨울에 자주 먹었어. 추우니까 초콜릿 녹여서, 빵이랑 과자 적셔서 이렇게 함께.”

리더 체코인이 허허 웃으며 알려주었다. 잃어버린 고향을 그리는 그 눈빛 위로 언뜻 쓸쓸한 상실감이 어리는 듯도 했으나, 그보다 콜린스의 주의를 사로잡은 것은 ‘추운 겨울에 나눠 먹는 요리’란 대목이었다. 그는 양 볼 가득 녹인 초콜릿 과자를 우물거리면서 물었다.

“야코프 씨, 혹시 이거 조금 더 나눠주실 수 있어요? 아니면 비법 공유라도?”

“허허, 글쎄. 우리 와이프가 만들어준 거라서 나도 자세히는 모르는데…… 이따 냄비 찾으러 오면 물어보고 알려줄게요.”

체코인 야코프 씨가 사람 좋게 웃으며 약속했다. 젊은 군인, 그것도 전투기를 모는 파일럿이 요리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드문 일이었으나, 부탁하는 태도가 워낙 열렬해서 차마 모른다고 내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같은 날 오후, 야코프 부인이 빈 간식 그릇을 회수하러 방문했을 때 체코인은 젊은 영국인 동료의 부탁을 전달해주었고, 맘씨 좋은 부인은 의아해 하면서도 흔쾌히 조리법을 전수해줬다. 덤으로 약 2인분의 초콜릿 냄비와 막대 과자 선물도 함께 곁들여서.

그리고 선물 받은 조리 기구와 재료 일체를 받아들자마자 콜린스가 장교 휴게실로 달려간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파리어 대위님, 이것 좀 드셔보십쇼. 아주 맛납니다.”

추위를 피해서 뜨듯한 장교 휴게실에서 늘어지게 졸고 있던 파리어를 깨운 것은 익숙한 스코틀랜드 억양이었다. 대위는 눈을 뜨기도 전에 저절로 머릿속에 그려지는 직속 후임의 얼굴을 상상하고는, 지끈거리는 신음을 흘렸다.

“왜. 이번엔 뭔데.”

그러나 선임의 반응이 미적지근하든 말든, 소위는 아랑곳하지 않고서 테이블 위에 뭔가를 열심히 설치하기 시작했다. 그 하는 양을 구경하고 있으려니, 작은 냄비에 시커먼 반고체 덩어리를 집어넣질 않나 그 아래에선 토치로 은은하게 불을 지피니 어쩌니 저쩌니 하며 난리가 아니다. 불을 피우는 데 성공한 다음에는 웬 미니 바게트처럼 생긴 빵 바구니까지 소복하게 담아서 내놓았다. 언뜻 봐도 요리 같아 보이는 그 차림새를 보고서, 파리어가 경계하는 태도로 물었다.

“이번엔 또 무슨 꿍꿍이야?”

“짠! 초콜릿 퐁듀랍니다. 체코인들이 알려준 특제 겨울 간식이에요. 쌀쌀할 때 초콜릿을 뜨끈뜨끈하게 녹여서 이 기다란 과자에 함께 찍어먹는 겁니다. 제가 시험해 봤는데 아주 따뜻하고 맛있습니다! 요새 대위님 감기 기운 있으신 것 같아서 가져오는 김에 같이 얻어왔어요.”

그러더니 콜린스는 토치로 지핀 불이 행여 꺼질 새라 휴대용 화로 주위를 손으로 둥그렇게 감싸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 정성어린 헛수고를 본 대위는 체념 반, 신경질 반 섞인 목소리로 차갑게 대꾸했다.

“소위, 이게 벌써 몇 번째지?”

“예?”

“선물이랍시고 일방적으로 나한테 갖다 안기는 게 몇 번째냐고.”

날 서린 선임의 질타에 콜린스도 잠시 멈칫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뿐, 그는 곧 눈을 도로록 굴리며 성실하게 질문에 대답했다.

“아마…… 스물 세 번 째 인 것 같습니다?”

콜린스가 흐릿해진 기억으로 과거의 실패한 고백 횟수를 헤아리며 말했다.

“그래, 스물세 번. 그리고 그 스물 세 번 동안 난 소위한테 이제 이런 짓은 그만두라고 대답했고. 넌 내 말이 말 같이 안 들려?”

파리어가 부러 싸늘한 목소리로 음성을 높였다. 그러나 콜린스는 잠시 어깨를 움찔하긴 했어도, 움츠리진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항상 그렇듯이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넉살 좋게 해명을 하는 것이었다.

“아, 이번 건 고백 아닙니다 대위님. 정말로 그냥 선물입니다. 그러니까…… 순수한 호의에서요! 요새 대위님 훈련하느라 밖에 나가실 때마다 오들오들 떠시는 걸 보아서요.”

“난 추위 같은 거 안 타. 혹시 탄다고 해도 그게 소위가 관여할 일인가?”

날이 선 물음에 대해 콜린스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럼요. 물론이지요. 윙 메이트끼리 서로 건강 상태를 체크하는 것도 팀의 사기를 진작하기 위한 얼마나 중요한 사안입니까?”

공적인 거리감을 방패삼아 막아보려고 했으나, 이런 식으로 뱀처럼 유유히 피해서 옆구리로 비집고 들어오니 어쩔 도리가 없다. 파리어는 피곤한 손길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중얼거렸다.

“난 누구랑 마주 앉아서는 밥을 못 먹어. 소화가 안 된다고.”

삼시 세끼를 장교 수십 명과 구내식당에서 해결하는 군인이 대기에는 신뢰도가 매우 떨어지는 변명이었다. 그러나 이 허술한 변명을 가장한 매몰찬 거절 앞에서도 콜린스는 의기소침하기는커녕 또랑또랑하게 맞장구를 치며 대응했다.

“대위님이 영 불편하시다면 전 이것만 녹여놓고 나가보겠습니다. 그래도 이거 정말 맛있으니까 한 번 드셔보십쇼. 꼭이요. 감기에 아주 좋더랍니다.”

그 말을 끝으로 콜린스는 더 이상 파리어의 신경을 긁는 것을 멈추고 이만 발걸음을 돌렸다. 문 밖을 나서기 전에는 의젓하게 경례를 붙이는 담대함까지 보이면서.

“식기 전에 따뜻하게 드셔야 합니다. 꼭이요! 올해 겨울은 혹한일 거랍니다. 고뿔 걸리시면 큰일이지 말입니다!”

마지막까지 꿋꿋하게 할 말 다 하고 사라지는 후임을 지켜보며, 파리어는 소리 없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저 녀석은 대체 얼마나 더 거절을 당해야 그만둘 생각인 걸까? 몇 번을 더 매몰차게 밀어내야 포기를 할까? 콜린스의 일방적인 고백과 자신의 거절이 열 번쯤 반복될 때까지만 해도, 이 씨름이 이렇게 길어질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었다. 저 고지식한 놈은 뭐가 그리 미련이 남아서, 이렇게 재수 없이 행패나 놓는 놈한테 이리도 정성을 쏟아?

그러나 답은 이미 알고 있다. 그건 콜린스가 자기 감정 앞에 거침없는 아주 용기 있는 녀석이고, 자신은 무조건적으로 주어지는 그 애정마저 제대로 쳐다볼 엄두를 못 내는 비겁한 겁쟁이기 때문이다.

‘태양의 온기가 사내의 외투를 벗겼다는 얘기는 모두 새빨간 거짓말이야.’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오래되고 시린 겨울을 가슴 속에 품어온 남자는, 두꺼운 외투를 더욱 강하게 동여매며 그렇게 생각했다. 포기하지 않고 다가오는 별의 온기가 너무 따스해서, 얼어붙은 심장이 채 녹기도 전에 먼저 타버릴 것만 같았다.




<끝>



전력 조건인 1,111자에 맞춰보려고 열심히 노력했는데, 도저히... 도저히 더 짧게 쓸 수가 없었습니다.....ㅠㅠ 공백 미포함으로 3,000자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보고 싶었던 빼빼로(를 가장한 초콜릿 퐁듀)를 준비하는 콜린스와, 그런 콜린스의 애정을 피하기만 하는 파리어의 얘기를 쓸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제 머릿속의 동인 해석에서 콜린스는 포기하지 않는 꿋꿋한 청년입니다. 그리고 훗날 파 대위는 자기가 저지른 비겁한 거절의 대가를 치르며 분명 후회하게 되겠지요. 히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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