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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 이후, 우리가 피터와 에릭의 이야기를 써야하는 이유:
미완으로 끝난 '아들의 아버지 찾기' 여정



아이게우스와 테세우스, 오디세우스와 텔레마코스, 고구려 태조왕과 유리 태자, 오시리스와 호루스의 신화, 그리고 스타워즈까지. 인류가 한 번 정착 생활을 하기 시작하면 그 본능에 ‘기원 찾기’라는 새로운 요소가 첨가되기라도 하는 것일까? 문화권을 막론하고, 아들이 아버지를 (혹은 반대로 아버지가 아들을) 찾아 나서는 모티브는 오랫동안 어느 서사 장르에서든지 관객의 집중도를 끌어모으는 데 가장 효과적인 모티브로 사용되어왔다.


여태껏 적인줄로 알았던, 혹은 혈연 관계는 아니지만 ‘뭔가 있는 듯’해 보였던 두 인물이 사실 부자지간이라는 사실을 암시하는 장면이 등장하기 시작하면 독자의 시선은 일단 그곳에 집중되고 본다. 그래서 아버지와 아들은 자신들의 진짜 관계를 알게 될까? (사실상 이 모티프가 한 번 등장하고 나면 대다수의 독자는 당연히 끝내 진실이 밝혀질 것을 상정하고 텍스트를 읽어나가기 시작한다) 진실은 어떤 과정을 통해 밝혀지게 될까? 이 새롭고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와 아들은 그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이때, 두 사람의 반응이 너무 미지근하다든지, 갈등이나 고비 한 번 없이 포옹 한 번으로 해결되는 구성을 짜면 독자들은 ‘진부하다’면서 짜증을 낸다) 저 사람이 내 아버지(아들)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주인공은 그 사실에 화를 낼까? 반가운 마음에 눈물을 흘릴까? 아니면 당황한 나머지 도망쳐 버릴까?


아무리 진부하다고 욕을 해도 클리셰가 클리셰인 데는 이유가 있는 법. 출생의 비밀은 언제나 독자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좋은 소재다. 숨겨진 가족 관계가 폭로되는 장면에 조금이라도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는 독자는 없다. 텍스트 속에서 아무리 다른 수많은 사건들이 얽히고 섥혀서 대체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헷갈리는 지경에 이르더라도 관객은 새로이 폭로된 혈연 관계에 대해서만은 결코 쉽게 잊지 않는다.


아예 구 <스타워즈> 시리즈처럼 ‘아버지가 걸어온 길을 되짚어 올라가는 아들’과 ‘잃어버린 줄 알았던 아들을 인지(認知)・ 종국에는 그를 지키는 아버지’의 관계가 핵심 소재가 되어버린 경우도 있다. (적나라하게 말해서, 지난 3천 년 간 서구 문명이 창출해낸 온갖 영웅 서사 모티프는 전부 때려 박으려고 작정한 듯이 보이는 <스타워즈>시리즈에서 ‘아들의 아버지 찾기 여정’과 그에 상응하는 ‘아들을 되찾으려는 아버지의 발버둥과 희생’은 그 열정의 정점을 찍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싱어 감독 역시 엑스맨 프리퀄 3부작에서 이 효과 좋은 모티프를 차용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매그니토와 피에트로가 처음부터 확실한 부자 관계로 나왔던 기존 시리즈와 달리, 이 새로운 시리즈의 에릭과 피터는 서로의 관계를 처음부터 더듬어가야 하는, 보다 더 신화적 원형에 가까운 관계로 되돌아간 것을 보니 말이다. 단 하나 문제가 있다면 좋은 소재를 선택한 건 좋은데, 하필 그 갈등을 해소하지 않은 채 시리즈를 끝내버렸다는 점이다. 


‘그래, 10년 전에는 친부인지도 몰랐던 세계 제일의 지명수배자가 우리 아빠란 걸 알게 됐고, 호기심에서든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든지 그 사람을 찾아 나서기로 했구나. 그래서 드디어 만났네? 하지만 쉽게 ‘난 아빠의 아들이에요’라고 밝히진 못하고 있군. 나라도 그럴 것 같아.’ 그래서 그 다음은?  


<Days of Future Past>에서 부자 관계를 암시하는 작은 실마리를 던졌고, <아포칼립스>에서 그 관계를 다시 한 번 확인해준 다음 본격적으로 ‘아들의 아버지 찾기 여정’이 시작되려는 시점에서 영화가 끝나버렸다. 어떤 방식으로든지 갈등이 제대로 해소되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채로 관객만이 홀로 남겨졌다. 물론 피터 역을 맡은 배우의 섬세한 연기 덕분에 아버지의 아들의 재회 장면이 그 짧은 순간에도 아주 멋지게 펼쳐지면서 긴장을 고조시켜 준 것은 멋진 연출이었다. 마지막의 학교 재건 장면에서 매그니토에게 언제 사실을 밝힐 생각이느냐고 묻는 스톰에게 “언젠가는 말해야지”라고 답하는 부분을 통해서도 감독이 한 쪽만 알고 있고 다른 한 쪽은 모르고 있는 이 미완성의 관계를 완전히 잊어버린 것은 아니라고 재차 강조하고 있는 듯 하다. 그러나 <아포칼립스>로 일단 프리퀄 3부작은 끝났고, 이후 두 부자가 어떤 행보를 걷게 될지를 관객이 공식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다만 상상의 영역에 내던져진 채로 궁금해 해야할 뿐. 그래서 나는 애가 탄다.


차라리 <Days of Future Past>에서 잠깐 삽입된 유쾌한 흥미거리로 살짝 맛만 보여줬다면 그렇게 신경이 쓰이지 않을 텐데, <아포칼립스>에서 ‘아들의 아버지 찾아가기’ 모티브의 수순은 이미 정석대로 밟을 만큼 밟아가다가 갑자기 끝을 내버렸다. 아무래도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훌륭한 연기와 연출, 꽤 멋진 대사와 대화로 꾸며 놓아도 근본적인 차원에서 중요한 갈등 구조가 해소되지 않는 한, 서사는 완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포칼립스>에서 피터가 아버지인 매그니토를 찾아나서기로 결심하게 되는 과정은 장난스럽던 이전 편과 다르게 꽤 진지해 보이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이 즈음에서 영화 속에 묘사된 피터의 매그니토에 대한 태도를 다시 한 번 정리해보자. 그동안 존재도 몰랐고, 알았어도 크게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지만, 결국 호기심에서인지 아니면 자신의 기원을 더듬어 올라가려는 인간 본능에서인지,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해 궁금해 하는 그의 모습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장면들이 다수 등장했다.  



1.      다른 뮤턴트 학생들의 평균 연령을 훌쩍 웃도는 20대 중반의 한량 피터. 안정적인 직장을 얻는 데에는 그다지 큰 관심이 없어 보이고 잠잘 곳은 엄마 집 지하실의 안락한 방 한 칸이면 된다. 업소용 팩맨 기계와 유리드믹스(Eurythmics)의 그루브가 흘러 나오는 워크맨만 있으면 인생에 별 불만이 없는 막시모프 가의 첫째. 거리낌 없이 나는 “루저(loser)”라고 말할 수 있는 당당함까지 겸비한 그가 26년만에 집 밖으로 나와 세상 구경을 하기로 마음 먹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십 년 전에나 얼굴 한 번 보고 각자 갈 길 갔던 운전 험하게 하던 자비에 아저씨를 다시 찾아가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는? 바로 십 년 전 사라졌던 매그니토가 폴란드에서 다시 등장했다는 TV 뉴스를 보고 난 뒤였다.


비록 천연덕스럽게 채널을 돌리긴 했어도 엄마의 눈을 속이진 못했다. 에릭을 만나러 가도 피터가 생각하는 것처럼 잘 풀리지는 않을 거라는 엄마의 경고에도 그는 어깨만 으쓱 하고 만다.


Ms. Maximoff: This won't end well. Nothing does with him. (좋게 안 끝날 거야.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Peter: You wanted me to get out of the house more, right? (언제는 집 밖에 좀 나가보라 면서요.)

“무섭지 않느냐”는 질문에도 피터의 대답은 시큰둥하기만 하다. “전혀요.”


물론 뒤에 나오는 레이븐과의 첫 만남에서 그녀에게 “매그니토 말인데, 무서운가요? 제 말은, 그러니까, 나쁜 사람이라던가? (Is he scary? I mean, is he a bad guy?)”라고 물어보면서 사실은 엄청나게 긴장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긴 한다. 어쨌든 영화 안에서 줄곧 피터라는 캐릭터를 행동하게 하는 동기로는 이제껏 만나지 못했던 '혈연을 향한 호기심’이 강하게 작동하고 있다. 배우의 귀여운 연기와 만나 유쾌한 시너지가 넘쳐흐른 이 장면에서부터 관객은 피터가 레이븐과 다른 뮤턴트들을 따라 나서는 큰 이유 중 하나가 ‘친부인 에릭 렌셔를 만나보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본격적으로 접하게 된다.


단순히 ‘뮤턴트 매그니토’를 만나 보려던 것이라면 굳이 그에 대한 정보를 이것저것 캐묻을 필요가 없다. 매그니토는 뉴스와 신문기사만 뒤적여도 이야깃거리가 산더미처럼 쏟아져 나오는 유명인이고, 만에 하나 그러한 공식 정보 정도로는 성이 안 찬다고 해도 원하면 세상 어디든 달려갈 수 있는 피터에게 기밀 몇 개 정도 찾아내는 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테니 말이다. 그러나 ‘개인 에릭 렌셔’에 관한 정보라면 사정이 달라진다. 워싱턴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전의 에릭 렌셔, 그 후 잠적한 기간 동안의 에릭 렌셔에 관한 정보는 그와 사적인 관계를 가졌던 사람에게 직접 물어보지 않고서는 아무리 빨리 달릴 수 있어도 달리 알아낼 방도가 없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피터가 ‘악당 매그니토’가 아닌 ‘인간 에릭 렌셔’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고, 그를 향해 어느 정도의 연민과 동정을 느끼고 있다는 부분이 드러나는 또 한 가지 장면은 이어지는 레이븐과의 대화에서다. 그 대화 내용으로 추정컨대, 웨스트체스터에 들리기 전에 피터는 이미 매그니토가 발견되었다던 폴란드의 마을을 들러서 마그다와 니나가 살았던 그의 집을 둘러보고 온 듯 하다. 뉴스를 보자마자 그의 위치가 마지막으로 확인된 곳부터 먼저 달려갔던 것이다. 그리고 그 비극적인 사건 현장을 둘러본 기억에 대해서 피터는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Peter: You know, for a guy who's just fast as me, I always seem to be too late. (있잖아요, 이렇게 빠른데도 (중요한 일에는) 항상 너무 늦고 마는 것 같아요.”


“너무 늦었다”라는 표현이 에릭이 마그다와 니나를 잃었던 비극의 현장을 지칭한다는 점은 쉽게 유추 가능하다. 아직은 미약하나 ‘나쁜 사람’인 아버지를 향한 연민과 약간의 죄책감이 심중 바닥에서 약동하는 모습이 드러나 있다. 레이븐은 그런 그를 다독이며 “그러니까 이번에는 늦지 말자”고 답하고, 피터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수긍한다.


이어지는 카이로로 향하는 헬기 장면에서는 피터가 그들과 동행하는 목적의 우선순위가 친부를 만나려는 것에 있다는 점이 보다 분명히 드러난다. 진, 스캇, 커트, 행크 같은 다른 팀원들이 아포칼립스에게 잡혀간 찰스를 구출하고 세계의 멸망을 막기 위해서 같은 보다 더 공적이고 대외지향적인 동기로 합류한 것에 비해서, 피터가 아포칼립스 저지 작전에 동행한 데는 그의 사적인 동기가 조금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 이는 레이븐이 직접 에릭을 만나서 설득하기 위해 내려가려고 하자, 재빨리 자기도 따라가겠다며 말하는 장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려고 온 거잖아요. (That’s why I’m here)”



2.       다음으로 <아포칼립스>에서 에릭의 대면이 이뤄지는 가장 중요한 장면을 살펴보자. 이를 통해서 에릭과 피터, 두 인물 간에 작동하는 주된 테마가 다름 아닌 ‘가족’이라는 점을 보다 더 명확하게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먼저 레이븐이 십 년 만에 에릭을 만나 그를 설득하기 위해 던졌던 대사를 복기해 보자. 다시 한 번 희망을 품고서 가족과 함께 ‘평범하게’ 살아보려 했던 소망이 박탈된 채 절망하고 있는 에릭에게 레이븐은 그의 심경을 충분히 고려한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Raven: I know you think you've lost everything, but you haven't. You have me, you have Charles... you have more family than you know. You never had the chance to save your family before, but you do now. That's what I've come here to tell you.
지금 모든 걸 잃었다고 생각할 테지만, 아니야. 당신한테는 내가 있고, 찰스가 있잖아. 그리고 당신이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가족들을 지니고 있어. 이전에는 가족을 지킬 기회가 없었지만, 지금은 아니야. 그걸 알려주고 싶어서 왔어.


비록 에릭이 바로 대답하지는 않았지만, 레이븐의 진심 어린 설득을 듣고 나서 그녀와 찰스가 그의 옛 ‘가족’이었으며 그 사실은 지금도 바뀌지 않았음을 비로소 깨달은 것으로 보인다. (그 전까지 혈연으로 한정돼 있던 에릭의 가족 범주가 그 이상으로까지 확장된다는 사실은 이후에 나오는 그가 아포칼립스를 배반하며 던지는 말에서 직접적으로 확인이 가능하다. 1편부터 줄곧 그래왔듯이 에릭 렌셔라는 캐릭터는 언제나 말보다는 행동으로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는 캐릭터이다.) 레이븐의 말을 가슴 한 편에 잠시 담아둔 채로, 그러나 아직 그 사실을 인정할 용기는 내지 못한 매그니토는 대신 옆에서 기다리던 피터쪽으로 대화의 방향을 돌린다. “넌 누구지?”. 무뚝뚝하게 던지는 그 물음에 피터는 쉬이 진실을 말하지 못한다.


Magneto:  And you? (넌 누구지?)
Peter: I'm your... (나는 당신의⋯⋯)  I'm here for my family, too. (나도 내 가족을 지키려고 왔어요.)


‘드디어 부자 관계의 진실이 밝혀지는 것일까?’, 긴장이 고조되는 순간 결국 피터는 “내가 당신의 아들”이라고 말하려던 것을 속으로 삼키고 만다. 피터 역을 맡은 배우의 얼굴이 클로즈업되고 배경에서 휘몰아치던 자기장 폭풍마저 느리게 멈추는 그 장면에서, 관객들의 입에서는 안타까움 혹은 아쉬움의 탄식이 흘러나온다.


그러나 무언가 결심한 듯 눈을 질끈 감고 피터가 내뱉는 다음 대사는 그 탄식을  상쇄하기에 충분한 결정적인 사실 하나를 전달해주고 있었다. 비록 내가 당신 아들이라는, 아직 내가 남아있노라는 사실을 밝히지는 못하지만, 그 대신 ‘내 가족인 아버지 당신을 지키려고 여기 왔다’는 피터의 대답에서 비로소 에릭의 존재는 그동안 귀로 들어서만 알고 있던 악당 ‘매그니토’에서 그의 가족 ‘에릭’으로 변모한다. 다시 말해, 이 재회 장면은 피터가 엑스맨에 합류한 목적의 상당 부분이 ‘아버지 찾기’ 모티브와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뒷받침해줄 뿐만 아니라, 에릭에 대한 피터의 인식의 전환이 이뤄지는 중요한 지점으로 해석될 수 있다.  



3.      마지막으로, <아포칼립스>에서 피터와 에릭 사이에 작동하는 ‘가족’ 테마를 충분히 다루지 못한 것에 대한 개인적인 아쉬움을 토로하고자 한다. <퍼스트 클래스>의 아우슈비츠 수용소 장면에서도 그랬지만, 이번 <아포칼립스>에서 유독 에릭이라는 인물은 가족 간의 애정 및 그 상실이라는 소재와 깊게 관련되어 다뤄지고 있다. 그렇기에 에릭이 십 년 동안 폴란드에서 마그다와 이룬 가정에서의 이야기 및 감정 묘사가 양적인 측면과 질적인 측면 모두에서 심도 있게 다뤄졌다. 그러나 그를 둘러싼 가족 모티브의 또 다른 한 축을 이루는 피터와의 관계는 충분히 서술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내용 상의 균형이 다소 부족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토록 가족을 중시하는 것으로 표현된 인물이 자신이 몰랐던 또 다른 가족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을 때, 과연 어떻게 반응할지 몹시 궁금해지지 않는가?  






요컨대, <아포칼립스>에서 싱어 감독은 피터와 에릭 간에 나타난 ‘잃어버린 아버지 찾기 모티프’를 차용했으되, 그 갈등 해소까지는 보여주지 않았다. 물론 상영 시간이나 플롯 수의 제한 같은 현실적인 한계 탓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본래 이야기란 우연의 연속인 현실이 아닌, 필연으로 엮어가는 허구적 진실이기에, 일단 그 속에 한 번 갈등 구조가 던져진 이상, 논리적이고 납득할 만한 인과 관계를 통해 그것이 해소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아포칼립스>에서는 안타깝게도 그 작업이 마무리 되지 못했다. 혹은 일부러 관객에게 상상의 여지를 남겨주기 위해 해소 직전의 시점에서 끊어버린 걸지도 모르겠다.


감독의 의도야 어떤 것이 되었든, 항상 구하고자 하는 자가 두드려야 하는 법. 미처 완성되지 못한 ‘아들의 아버지 찾기’의 나머지 여정에 대해 끓어오르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는 독자라면 남은 방법은 직접 그 과정을 상상해보는 길뿐이다. 그러니 부디 영화를 본 후, 머릿속에서 이 부자의 향방에 관한 호기심이 멈추지 않고 뱅뱅 맴돌고 있는 분이라면 그 이야기를 함께 나눠주기 바란다. 그 향방은 오해와 도피로 점철된 순탄치 않은 과정일 수도 있고, 피터 막시모프라는 이 유쾌하고 거침없는 캐릭터의 영향을 받아 블랙코미디 같은 로드트립의 형식일 수도 있을 테고, 아니면 또 다른 제 3의 모습을 취할 수도 있다. 구체적인 분위기와 사건은 무엇이 되어도 좋다. 기왕에 감독이 뒷수습을 독자에게 넘겨버렸으니, 이제는 우리가 원하는 피터 막시모프와 에릭 렌셔의 이야기를 마음껏 펼쳐보자. 원작을 훌쩍 뛰어넘는 상상이야말로 독자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권리이자 부릴 수 있는 가장 막강한 능력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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