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에릭


외장하드 뒤지다가 발견한333333 사실 진짜 찾고 싶었던 원고는 따로 있는데, 어디로 날아간 건지 보이지를 않아서 슬프다. 사실 이미지에만 치중한 짧은 글은 어차피 쓰기도 어렵고 주제도 명확하지 않아서 가급적 삼가려는 스타일이지만, 이미 써버렸으니 어쩌리. 


아마도 퍼클 즈음에는 이렇게 찰스에릭을 해석했었던 모양이다.


 





「사랑해, 에릭.」그의 고백은 마치 고해성사처럼 터져 나왔다.


죄인이 신부에게 구걸하듯이 그는 사랑을 간구했다. 절박함을 띠고 올려다보는 두 눈은 맑다 못해 시퍼렇게 빛이 서렸다. 정념이 비치는 눈빛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치 그가 무릎 꿇고 빌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그러나 땅에 묶인 그의 두 다리는 실은 애원하기 위해 무릎을 꿇지도, 사람을 붙잡기 위해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지도 못하는 다리였다. 에릭은 우습다고 생각했다. 용서를 내려야 할 사람이 용서를 빌고 죄 사함 받아야 할 사람이 죄를 사한다. 거꾸로 뒤집어진 세상 속에서 제대로 된 사람은 그밖에 없었다. 그가 당한 모든 고통에 대해 그는 응당 보답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도 그는 손을 뻗어 떠나려는 이를 잡는 것조차 주저하고 오로지 한 마디만을 반복하여 말한다. ‘이러면 안 돼,’ 이 속에는 힘없는 그의 사랑에 대한 불안이 감돌고 있다. 그 겸손한 불안이 듣는 이의 가슴에 서글픈 마음을 들게 하여 떠나려는 발걸음을 무겁게 했다.


에릭은 찰스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사고의 원인이 에릭에게 있었음을 인정하면서도 그를 원망하지는 않는다. 도리어 뒤늦은 죄책감에 몸서리치는 그를 끌어안는다. ‘괜찮아.’ 매일 조금씩 비쩍 말라가는 허벅지를 보면서도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일까 생각했다. 지방이 빠져 푸석해진 거죽을 볼 때마다 그는 차마 거기에 손을 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에릭에게 찰스의 말라비틀어진 두 다리는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표상이었다.


정작 '너와 나는 너무 다르다‘고 말한 것은 그였으면서도 그는 친우가 옆에 남아있기를 바란다. 두 사람 모두 이제는 그들 사이에 결코 좁혀질 수 없는 차이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아직 그는 모든 신념, 믿음, 그런 것들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들이 함께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야 한다고 말한다. 찰스의 말은 모순 덩어리였다. 그는 평온을 부정하는 에릭을 부정하고 복수를 좇는 그에게 복수의 허망함을 강조했지만 동시에 한없는 슬픔의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것은 연민보다는 깊은 동질감에 가까웠다. 부딪힐수록 서로의 가장 깊은 부분을 깎아 내야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그는 에릭을 포기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그것이 그의 천성적인 박애와 관용의 결과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를 움직이는 것이 차게 타오르는 정념이라는 것을 안다.


성자의 현신처럼 보였던 얼굴 뒤에는 성취되지 못한 채 타들어가는 정열과 쓰라린 고뇌가 있다. 그의 열정은 바깥에서 맹렬히 불타오르는 대신 수면 아래서 무겁게 흘러가는 것이라서 아무도 그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러나 시간만큼이나 느리게 흐르는 그의 불꽃은 꺼지지 않고 약해지지도 않고 계속 거기에 있었다. 그가 매달리는 지금에서야 에릭은 그것을 깨닫는다. 온 몸을 내던져 구석까지 한 치도 빠짐없이 드러낸 그 모습이 낯설다.


이 낯선 손을 잡으면 그의 남은 생은 송두리째 뒤바뀔 것이다. 남은 평생을 ‘혹시’와 ‘만약’, ‘어쩌면 그 때’같은 말들을 떠올리며 살게 될지도 모른다. 찰스와 함께하기로 한다고 해서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인간에의 회의와 투쟁의 씨앗이 말소되는 것도 아니다. 매 순간마다 그들이 얼마나 다른지 깨달을 것이고, 그 때마다 그는 버려진 들판에 비바람 피할 옷가지 하나 없이 홀로 서 있는 괴로움을 맛보게 될 것이다. 그런데도 그가 망설이는 이유는……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에릭은 지금 오래된 교회의 예배당 안에 서 있다. 텅 빈 의자들 사이를 지나 그는 수백 년 전 장인이 정교한 손길로 만들었을 제단에 도착한다. 제단 위에는 신자들이 놓고 간 하얗고 소박한 꽃들이 담백한 향기를 내뿜고 있다. 그는 천천히 무릎을 꿇고 앉아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이 순백의 돌 위에 가만히 몸을 눕힌다. 높은 천장 덕분에 예배당 안은 항상 찬 공기가 돌고 있고, 볼에 닿는 대리석은 서늘하다. 그런데 긴 유리창으로 들어오는 빛이 그의 몸 위로 쏟아져 내렸기 때문에 그는 이만 일어서려던 것을 포기하고 그대로 누워 있기로 한다. 양 뺨에 닿는 서늘함과 등을 덮어오는 온기, 그는 그 사이에 갇혔다.


「사랑해, 에릭.」그는 그대로 있기로 결정했다.



<끝>




cocktail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