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king A Splash!

by roe87


Chapter 1/3 (연재중) 




※ 오역 주의 ※


원 주소: archiveofourown.org/works/7698319

(작가님께 응원의 덧글을 보냅시다!!)


번역 허락글 (아래)


줄거리: 수상안전요원 어벤저스와 인어 버키. 스플래쉬!스터키 AU.

작가의 말: 네. 써버렸네요. 여러분을 위해 링크 하나—지구상에서 가장 멋진 리얼리티 쇼 중의 하나인 베이워치(Baywatch)의 오프닝과 엔딩 크레딧 영상 보고 가세요. 데이빗 샤벳이랑 세바스찬 스탠이랑 닮은 것 같지 않나요? :p


~*~ 내 친구 V에게 ~*~

항상 베이워치 쇼 얘기 들어줘서 고마워. 너 완전 멋짐!


주의: 약간 위험하고 무모하게 수영하는 스티비 주의. 물에도 빠지고 구조도 당해요 <3





18년 전



스티브가 열한 살이었을 때의 일이다. 스티브의 어머니는 카타리나 섬에서 출발하는 보트를 한 대 빌려서 하나뿐인 아들과 함께 캘리포니아 해안을 항해한 적이 있었다. 그건 일종의 선물이었는데, 자주 아프고 병약한 탓에 종종 학교를 빠질 수밖에 없던 그에게 주는 위로의 인사였다. 물론 단지 매일 학교에 나가지 못할 뿐, 스티브의 건강은 나날이 호전되어 가고 있는 중이었다.


스티브는 다른 휴가객들을 피해 그 작은 페리의 뱃머리에 반쯤 매달리다시피 한 자세로, 배가 항해할 때마다 수평선 위로 보이는 작은 섬들을 스케치하고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또 다른 싱글 부모와 수다를 떨고 있는 중이었기에 그런 스티브의 행동을 미리 알아채고 저지하지 못했다.


너무 오랫동안 햇볕 아래 있었던 탓에 곧 머리가 약간 어지러워졌다. 슬슬 그늘을 찾아 자리를 옮기려던 바로 그때, 발밑의 바닷물 아래로 한 줄기 섬광 같은 그림자가 비쳤다. 아마 돌고래인 듯 싶었다. 최근 먼 바다에서 종종 돌고래 무리가 목격된다던 사람들의 얘기가 있었다.


스티브는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난간 쪽으로 상체를 기울였다. 눈앞이 어질어질해진 것은 그때였다. 작게 ‘첨벙’하는 소리와 함께 그와 그의 스케치북이 갑판 밖으로 굴러 떨어졌다.


수년 후, 스티브는 차마 그 다음 순간 일어났던 일이 그의 혼미한 의식이 만들어낸 헛소리나 환각 따위가 아닌 분명한 사실이었노라고 자신 있게 말하고 다니지는 못했다. 어쨌든 다른 상담치료사들이 아직 어렸던 그에게 그건 단순한 환영이었을 뿐이라고 수없이 주입시켰기 때문이다.


단 하나, 스티브의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는 장면은 자신의 입술에 닿아오던 따뜻한 기운과 떨어지는 그를 붙잡아주던 단단한 두 팔이었다. 스티브는 무의식중에 그에게 키스해오는 사람의 품 안으로 더 매달리면서 살짝 눈을 떴다. 혼비백산한 와중에서도 한 가지만은 알 수 있었다. 그에게 키스한 사람은 다름 아닌 한 소년이었다. 깨달은 순간, 한바탕 몸에 전율이 일었다. 그러나 소년의 튼튼한 두 팔이 허우적거리는 스티브의 몸을 다시 아래로 가라앉지 않도록 단단히 받쳐주었다. ‘아마 엄청나게 힘이 센 모양이야.’ 그렇게 판단한 스티브는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을 포기했다.


스티브는 시야를 가리던 바다거품이 서서히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면서 물속에 잠긴 채 눈을 깜빡였다. 눈앞에 보이는 것이라곤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다른 소년의 얼굴뿐이었다. 곧 입 안으로 산소가 밀려들어오면서, 피부에 와 닿는 부드러운 타인의 감촉이 느껴졌다. 그는 다시 눈을 깜빡거렸다.


그 소년은 스티브가 질식하지 않도록 공기를 전해주고 있었다. 그것을 깨달은 스티브는 어쩐지 실망으로 어깨가 축 처졌다. 입술을 떼어낸 소년이 살짝 뒤로 물러서며 스티브를 빤히 쳐다봤다. 어깨까지 닿는 갈색 머릿결이 바다가 만들어낸 조류를 따라 위아래로 흔들리며 물 위에 둥둥 떠 있었다.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스티브는 혹시라도 충격으로 바닷물을 들이마시지 않기 위해 두 손으로 입을 꼭 막으면서 눈앞의 그를 바라보았다. 소년은 아름다웠다. 보는 각도에 따라 시시때때로 색이 바뀌는 창백한 피부, 짙은 고동색의 머리카락, 살 오른 분홍빛 입술과 완벽한 얼굴, 그리고 그를 향해 반짝이는 청회색 눈까지.

소년이 웃었다. 그는 여전히 스티브를 꼭 껴안고 있었다. 거세게 몰아치는 파도 따위에는 전혀 밀리지 않는다는 듯이, 단순히 물 위에 둥둥 떠 있을 뿐이라는 듯이 가볍게 그를 안아 들고 있었다. 그 팔에 안겨 있으니 어쩐지 매우 편안하고 안전한 느낌이 들었다. 소년이 그대로 한쪽 손을 뻗어 스티브의 얼굴에 가져다 댔다. 다섯 손가락이 부드럽게 그의 뺨을 만졌다가, 턱 선을 훑었다. 두 눈은 움직이는 자신의 손가락을 따라 스티브의 얼굴을 자세히 관찰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년은 다시 스티브를 똑바로 바라보며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껏 한 번도 그토록 강렬한 시선을 받아본 적이 없었던 스티브는 설렘으로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는 그저 두 손으로 소년의 강인하고 세밀하게 근육이 진 팔에 단단히 매달릴 뿐이었다. 눈앞의 소년은 완벽했다. 한눈에 봐도 몸이 아주 탄탄하고, 나이는 아마 자신보다 조금 더 많은 것 같았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만나본 사람 중에 가장 아름다웠다.


훗날 상담치료사들은 그 장면이 단지 산소가 부족해진 스티브의 뇌가 만들어낸 멋진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일축해버렸다. 그 자신 역시 그 이상 기억해낼 수 있는 것이 없었기에 딱히 반박할 수 없었다. 다만 소년이 다시 한 번 자신에게 키스했고, 그 키스를 통해 허약한 허파 속으로 숨을 불어넣어주었던 것만을 기억했다.


그 후 대체 어떻게 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얼마 안 있어서 스티브는 다시 물 가까이로 끌어올려졌고 보트에 연결된 철제 사다리를 타고 물 위로 올라왔다. 수면 밖으로 들쳐든 고개가 신선하고 친숙한 공기를 급하게 들이마셨다. 두 팔은 벌써 사다리 단 위에 힘없이 늘어진 채 걸쳐져 있었다. 소년이 점점 멀어져 갔다. 혼미한 의식 속에서도 스티브는 두 번 다시 그를 볼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커다란 꼬리의 그림자가 그가 마지막으로 본 전부였다. 스티브는 그 그림자가 단지 돌고래의 그림자이기를, 결코 다른 어떤 무시무시한 생물이 소년을 좇아간 것은 아니기 만을 바랐다. 갑판 위의 다른 사람들이 사다리에 매달려 있는 그를 발견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은 그를 보트 위로 끌어 올려 산소마스크를 씌워주었다.


“그 애 보셨어요?” 스티브가 가쁜 호흡을 뱉으며 어머니에게 물었다.


“누구 말이니, 얘야?” 어머니는 안도감에 흐느끼며 젖은 눈가를 훔치고 계셨다.


“물 아래 있던 애 말이에요……” 스티브는 그가 본 것을 설명하려고 애썼다. 혹시 다이버였던 걸까? 그러다가 천리 바닷길 속에서 길을 잃어버렸던 게 아닐까?


아들의 말을 들은 어머니는 탑승해 있던 선원들에게 알려 소년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해안 경비대의 스쿠버다이버들이 직접 물속으로 잠수해서 찾아보기도 했지만, 그날 바다에서 스티브 외에 다른 물에 빠진 남자아이는 발견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아마 그가 환각을 본 것일 거라고 말했다. 스티브는 처음에는 그 말을 부정했지만, 해가 바뀌고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그때 그 사람들의 말이 옳았던 것이라고, 조금씩 현실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의 목숨을 구해준 신비한 바다 속 소년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현재



“스티브, 귀찮은 일 하나 생겼다.” 샘이 말했다.


스티브는 들고 있던 쌍안경을 내려놓고 옆쪽 구명보트 위에 앉아있던 그의 동료이자 절친한 친우인 샘 윌슨을 바라봤다. 샘 역시 스티브처럼 차분한 자세로 자신의 쌍안경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입꼬리 한쪽이 슬슬 올라가 웃고 있는 것을 숨기지는 못했다.


“설마 스타크가 왔다는 소리는 아니겠지?” 스티브는 다시 잔잔한 수평선 너머로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그거 맞아.” 샘이 말했다.

“방금 요트 보였어.”

“타이밍 한 번 죽이는군.” 스티브가 투덜거렸다.


샘은 마구 웃기 시작했다.

“이봐, 스티브. 그렇게 스타크의 화려한 요트 파티에 가기 싫으면, 그냥 그렇다고 말하면 된다고.”

“나타샤가 꼭 참석해야 한다고 하도 성화를 부려서 말이야.” 스티브가 대답했다.

“자기가 생각하기에 ‘평범한’ 사교 생활 속에 날 밀어 넣으려고 안달이 나 있어. 대체 요트 파티의 어디가 평범하단 건지.”

“말리부까지 간대잖아.” 샘이 못 말리겠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거절하지만 말고 한 번 가보지 그래? 또 알아? 가봤는데 꽤 재미있을 수도 있잖아.”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냐, 샘. 스타크가 여는 해변 파티의 악명은 나도 들어서 알고 있어. 경비대원 중 아무도 거절 안 할 거라고. 스타크가 여기 머무는 동안 다들 몰려가서 즐기다가 일주일 내내 숙취로 해롱거릴 테고, 일에는 제대로 신경 쓰지도 않을 테고, 그렇게 몰려든 피서객들 챙기지도 못하게 될 것 아닌가.”

“우와.” 샘이 못 믿겠다는 듯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 소리에 스티브는 들고 있던 쌍안경을 내려놓으며 다시 샘을 쳐다봤다. 그러나 샘 역시 고개 한 번 까딱하지 않고 뚫어져라 스티브의 시선을 받아쳐냈다.

“내 생각에, 캡한테는 휴식이 좀 필요한 것 같은데.”

“자네로부터의 휴식 말이지.” 스티브가 한껏 눈살을 찌푸리며 맞받아쳤다. 그러나 샘은 스티브의 말대꾸는 전혀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도 않고서 코웃음을 칠뿐이었다.


“아니면 가서 애인이라도 좀 사귀어 보던가.”

스티브는 고개를 홱 돌렸다. 이 주제는 이미 얘기할 만큼 충분히 얘기한 주제였다.

“기지에 연락 좀 할게.” 그가 부러 무전기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며 알렸다.

“암초 다이버들이 어디로 갔는지는 몰라도, 안 돌아오고 있는지 오래야.”

“알았어, 알았다고.” 샘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다가 곧 목소리를 낮춰 노래하듯 스티브를 놀리기 시작했다.

“아마 그 사람들도 지금쯤 토니 요트 위에서 신나게 즐기는 중일 걸?”


스티브는 샘을 무시하며 무전기를 집어 들었다.

“기지 본부, 여기는 1번 스카라베다. 잘 들리나? 오버.”

“잘 들립니다, 스카라베 1번.” 필 콜슨의 목소리가 무전 너머로 지지직거렸다.

“새 소식이라도 있습니까? 오버.”

“아니, 아무것도 없다.” 스티브가 말했다.

“이쪽으로 들어온 정보와 일치하는 보트도 없고, 다이버들도 보이지 않는다. 계속 이 지역을 순찰하길 바라나? 오버.”

“괜찮습니다, 스카라베 1번. 이쪽에서 직접 해안경비대 쪽에 알리겠습니다. 기지로 돌아오십시오. 오버.”

“알았다.” 스티브가 대답하며 다시 무전기를 내려놓았다. 그때였다. 무전기가 다시 치직거리는 소리를 내며 바다 건너편의 목소리를 전송하기 시작했다.

“아, 그리고 스타크가 파티를 여는 모양이더군요. 재미있게 즐기고 오시길 바랍니다, 캡틴.” 콜슨이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스티브의 입이 꾹 다물리며 완고한 호선을 그렸다. 그는 필시 지금쯤 스타크의 지나치게 화려한 요트가 정박해 있을 해안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서 인상을 잔뜩 구겼다. 옆에 있던 샘은 그 모습이 재밌어 죽겠다는 듯이 낄낄대고 있었다.






스티브가 토니 스타크라는 사람 자체를 싫어한다는 뜻은 결코 아니었다. 그 남자가 아주 귀찮은 골칫덩어리라는 부분은 분명한 사실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따뜻한 심성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 정도 귀찮음이라면 기꺼이 인내해줄 아량이 스티브에게는 있었다. 게다가 스타크의 사업 파트너이자 약혼녀인 페퍼 포츠는 굉장히 좋은 사람이었다.


나타샤가 예전부터 페퍼를 알고 있었던 것처럼, 스티브 역시 스타크의 부친인 하워드와 잘 아는 사이였다. 하워드는 스티브가 다니던 대학에서 해양 생물학 강의를 담당한 적이 있었고, 그런 인연이 결국 스티브와 토니 두 사람을 만나게 했다.


토니는 스티브와 마찬가지로 외동아들이었고 둘 다 해양 생물학을 전공했지만, 두 사람의 유사성은 그 정도에서 끝났다. 토니 스타크 같은 사람들이 공부를 계속해서 스무 살이 채 되기도 전에 혁신적인 해양 기술들을 끊임없이 발명해내고 그 명성을 널리 알린 것에 반해, 얼마 안 가 학문 자체에 대한 호기심을 잃어버린 스티브는 중퇴를 선언했고 그 대신 육군과 해병대에서 번갈아 복무했다. 그러나 그러한 선택의 결과는 대학 시절에 느꼈던 것보다 더 큰 환멸을 안겨준 제대뿐이었다. 그는 다시 새로 시작하기 위해 캘리포니아로 거처를 옮긴 다음, 수상 스포츠 관련 자격증을 취득하고 난 후에는 LA 카운티의 해상 안전경비대에 합류했다.


그렇게 해서 매일을 바다 가까이에서 지낼 수 있게 되고 나서야 비로소 부유(浮游)하던 마음에 안정 비슷한 것이나마 찾아오기 시작했다. 이곳 LA 수상경비대에서 일을 하는 동안은 운동도 마음껏 할 수 있었고, 사람들을 도와주거나 그들을 안전하게 돌보는 일에 헌신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가 이 같은 수상경비대의 생활을 선택한 것이 늦은 밤에 홀로 누워 카타리나 섬에서 보트 항해를 하던 날을 떠올릴 때면 찾아오고는 하는 바다로의 기묘한 이끌림과 어떤 특별한 관련이 있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었다. 바다 근처를 서성일 때마다 마음 한 구석에서 은밀하게 어느 사람의 흔적—그때 그 다이버의 흔적을 발견하게 되기를 바란 적이 없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더 이상 어떤 말을 할 수 있으랴. 그때 본 것은 단지 겁먹고 외로움에 사무친 어린 소년의 환각이었을 뿐이다. 어쨌든 사람들은 어린 스티브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래서 이후 스티브는 더 이상 그 일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기로 했다. 다른 심리치료사들을 만나러 다니지도 않았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그에게 이러이러한 것을 하고 저러저러한 방향으로 생각해보라고 끊임없이 지적하는 데 진절머리가 났다.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해?” 옆에서 곁눈질을 하던 나타샤가 물었다. 스티브는 나타샤가 보트를 정박지로 몰고 가는 동안 뱃머리에 서 있었다.

“응? 아무것도 아냐.”

“정신이 백만 마일쯤은 저 멀리 떠나가 있던데, 로저스.”

스티브는 억지 미소를 지으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그냥 피곤해서 그래.” 그는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사실 단 하룻밤도 편히 잠든 적이 없었지만, 나타샤에게까지 굳이 그 사실을 알릴 필요는 없었다.


“캡한테 필요한 건 화끈한 밤이라니까.” 샘이 뒤에서 불쑥 끼어들었다. 스티브는 또 그 소리냐는 듯 눈을 굴렸다. 나타샤가 씨익 웃었다.

“긴장 좀 풀고 살아, 스티브.”

“무슨 뜻이야? 충분히 긴장 풀면서 살고 있다고.” 스티브가 그녀에게 말했다.

“너야말로 경계 좀 내려놓지 그래, 로마노프.”

그 말에 나타샤가 어디 한 번 해보자는 듯한 눈초리를 던졌다.

“나중에 나한테 술 사. 누가 먼저 풀어지는지 한 번 보자고.”

둘의 대화를 듣던 샘이 낄낄대며 한 마디를 보탰다.

“완전 걸려들었네, 캡!”




스타크가 연 요트 파티에는 시중드는 웨이터들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검은 타이에 조끼를 갖춰 입고서, 카나페와 거품 이는 샴페인 잔을 쟁반 위에 올린 채 잽싸게 손님들 사이를 이리저리 헤치고 다니는 진짜 웨이터들 말이다.


스티브는 샴페인을 즐기는 편은 아니었다. 그는 가능한 한 샘과 로디 곁에만 붙어 다니려고 했고, 두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에 붙들린 동안에는 차가운 맥주만 홀짝였다.


장내에 울리는 음악소리는 너무 컸고, 파티에는 그가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다. 클린트는 토르와 함께 스티브는 잘 모르는 술 게임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스콧과 완다, 피에트로는 임시로 설치된 댄스 플로어에서 열심히 몸을 흔들고 있었다. 무대 위에는 흔들리는 조명과 돌아가는 랜턴까지 달려 있었다.


나타샤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토니는 옆에 페퍼를 끼고서 불규칙적으로 요트 위를 돌아다니며 손님들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평소 술이 들어갔을 때보다 훨씬 공손하고 멀쩡한 태도였다. 그는 이미 한참 전에 스티브에게 다가와 얼굴을 비치고 간 터였다. 쾌활하고 유려하게 시작한 그의 인사는 결국 스티브의 직업 선택에 관한 신랄하고 가시 돋친 비난으로 끝났지만, 대화가 막장으로 치달으리라는 걸 알아챈 페퍼가 재빨리 말허리를 잘라낸 덕분에 심각한 분위기로까지 흐르지는 않았다. 그녀는 스티브를 향해 다시 만날 수 있어서 반갑다고 인사를 건네면서 토니가 저지른 난장판을 수습했다.


스티브는 그런 그녀에게 반가운 인사로 대답한 뒤, 두 사람이 언제 식을 올릴 계획인지 물었다. 내심 그는 페퍼를 위해서라도 부디 토니 스타크가 적어도 사적인 자리에서는 조금 더 어울리기 편한 사람이기를 몰래 기도해주었다.


토니와 페퍼는 한 눈에 보기에도 서로에게 깊은 애정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파티장을 가로질러 가며 샴페인 잔을 나누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스티브는 그렇게 생각했다.


“캡, 저쪽에 오락실 있는 것 같아.” 샘이 생각에 빠져있던 스티브의 옆을 쿡쿡 찌르며 말을 걸었다.

“한 번 가볼까 하는데, 같이 갈 거야?”

“오락실?” 스티브는 약간 흥미가 생겼다. 지금으로서는 조용히 당구 게임을 하는 편이 차라리 나은 선택일 것 같았다.

“당구가 아니라 비디오 게임이야.” 그런 스티브의 착각을 로디가 대신 정정해줬다.

“물론 빈티지 핀볼 머신도 있기는 해. 토니 외의 다른 사람은 못 만지는 걸로 한 대.”

“어…… 아니, 괜찮은 것 같네. 나는 나중에 다시 오도록 하지.” 스티브가 말했다. 시끄러울 것이 뻔한 비디오 게임방에서 시간을 보낼 기분은 아니었다.

“난 여기서 좀 있다가 가는 게 낫겠어.”

“그래, 그럼 그렇게 해.” 샘이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너무 오래 있진 말고. 운 좋게 한 명 낚는 게 아니라면 말이야.” 그가 과장되게 한쪽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알았다니까.”


그렇게 한 손에 맥주잔을 꼭 든 채로, 스티브는 혼자 남겨졌다. 그는 벽에 등을 기대고 서 있었다. 그러나 곧 쿵쿵거리는 베이스 소리가 고막을 울려대지 않는 보다 조용한 곳을 찾아 한 발자국씩 옆으로 자리를 피하기 시작했다. 도피는 거의 일 분에 한 번꼴로 계속되었다. 아무리 바다 위라고 해도 이 정도면 규정 소음 수준을 훨씬 웃도는 정도라고, 스티브는 홀로 투덜댔다.


그는 여전히 사람들이 춤추고 있는 무대 위를 바라보며 맥주를 홀짝였다. 옆 테이블에서는 사람들이 바텐더가 갓 내놓은 칵테일 잔을 들고 건배를 외치는 모습이 흘낏 보였다. 이번에는 칵테일을 마셔보는 것도 괜찮을 듯 했다.


인파를 비집고 나타난 나타샤가 미끄러지듯 움직여 그의 옆에 나타난 것은 그때였다.

“안녕, 스티브.”

“어, 안녕, 냇.”

“파티는 잘 즐기고 있었어?” 나타샤가 물었다.

“괜찮았어.”

“괜찮기만?”

스티브는 나타샤를 노려봤다.

“그렇다니까.”

“재미는 좀 봤고?”

“아, 물론이지.” 비꼬는 대답이었다. 나타샤가 얄궂게 웃었다.

“그럴 줄 알았어. 이리 와 봐, 칵테일이라도 한 잔 살 테니까. 올드 패션 어때?”

“허, 그것 참 고맙네.”


스티브는 나타샤가 자신을 이끌고서 마음대로 방금 전까지 자신이 구경하고 있던 테이블로 데려가도 가만히 내버려뒀다. 둘은 주문을 넣은 다음, 바텐더의 손에서 색색의 칵테일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구경했다. 한사코 술잔을 거부하던 스티브는 결국 나타샤가 건넨 올드 패션을 받아들이면서 나중에 모스크바 뮬 한 잔이라도 답례로 사야겠다고 기억 한 구석에 잘 메모해뒀다.


“로저스를 위하여.” 나타샤가 웃으면서 잔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로마노프를 위하여.” 스티브는 조심스레 잔을 부딪친 다음 한 모금 들이켰다.

“윽, 확실히 맥주보다 많이 세네.” 그가 손에 든 증류주를 내려다보며 다른 의미로 감탄했다.


“마지막으로 진짜 파티에 가본 적이 대체 언제야?” 나타샤가 물었다.

“‘진짜’ 파티?” 스티브가 작게 웃었다.

“글쎄, 기억이 잘 안 나네. 요즘에 많이 바빠서.”

“데이트 할 시간도 없을 만큼?”

스티브가 어색하게 시선을 돌렸다.

“꼭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지난달에 내가 그 귀여운 서퍼랑 연결해주려고 했을 때도 똑같은 말 했던 거 기억나?” 나타샤가 그에게 상기시켰다.

“그 남자는 내 타입은 아니었어, 나타샤.”

“그럼 어떤 타입을 선호하는데?”

그렇지만 스티브는 또 다시 이런 대화를 나눌 기분은 아니었다.

“우리 다른 얘기 하면 안 될까?” 그가 간청했다. 나타샤는 손가락으로 술잔 위를 덧그리며 술만 홀짝일 뿐이었다.

“어떤 다른 얘기?”

“글쎄……” 스티브는 다른 화제를 찾아보려고 머리를 굴리다가,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내 사생활 말고 아무거나?”

“알았어.” 나타샤는 1초 정도 머리를 굴리더니 입을 열었다.

“토르가 요새 싱글이라던데.”

“나타샤.”

“왜? 금발은 별로야?” 그녀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만 해.”

“알았어, 알았어.” 나타샤가 손 사레를 쳤다.

“네 연애 사업 얘기에는 그만 신경 끌게. 대신 술이나 마시자고.”

“좋은 생각이야.”






밤은 점점 깊어가고 있었다. 스티브는 잠깐 선실 밖으로 나갔다. 다른 취한 사람들은 아직 갑판 아래 남아 있었다. 아래쪽에서는 여전히 큰 소리로 음악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는 갑판 위를 거닐다가 난간에 몸을 기대고서 별들을 올려다봤다.


조금씩 두통이 몰려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토니가 대기시켜 놓은 모터보트라도 잡아타고 그만 돌아가야 할 듯싶었다. 당연히, 고속 엔진을 단 모터보트를 모는 운전자들 역시 토니가 사전에 준비해놓은 고용인들이었다.


토니는 얼마나 많은 직원을 데리고 있는 걸까? 그중에 단순 아르바이트생도 몇몇 섞여있다는 것만 알 뿐이었다. 토니의 막대한 부가 부럽다는 뜻은 아니다. 스티브는 해상안전요원이라는 자신의 직업을 사랑했다. 정말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토니, 아니, 자기만의 특별한 사람을 찾아낸 사람이라면 그게 누가 되었건 간에 약간의 질투를 느꼈다.


오년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외로움을 느끼는 빈도가 늘었다. 특별히 얼굴을 비칠 친지도 없고 군 시절의 기억은 모두 과거 한 편에 밀어놓은 그에게 남은 것은 오로지 친구들뿐이었다. 행복한 커플이나 짧은 만남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을 때면 그는 약간 어색함을 느꼈다. 사실, 꽤 많이 거북했다.


“앞으로 로마노프랑 대작하는 건 안 되겠어.” 

스티브가 바다를 내려다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그는 술에 취하면 항상 기분이 침울해졌다. 바다는 어둡고 고요했다. 출렁이는 수면이 달과 별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그는 문득 호화로운 요트 위가 아니라 아무도 없는 해변에 홀로 앉아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 말대로 파티에 어울리는 타입도 아닌데, 대체 뭘 하자고 여기에 왔던 걸까?


이렇게 늦은 시간에 혼자 떠나겠다고 고속 보트를 빌려달라고 부탁하기에는 어쩐지 한심하게 느껴졌다. ‘야단법석을 떠는 건 싫어.’ 술에 전 뇌가 덧붙였다. 다른 손님들보다 일찍 집에 돌아가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나타샤나 토니, 혹은 다른 누구한테 들키는 건 죽기보다 싫었다. 다만 해변으로 돌아가거나 침대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었다…….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인식하기도 전에, 발이 먼저 난간을 넘었다.


뭍까지 헤엄쳐서 돌아가면 되지! 1마일 정도 밖에 안 되는 거리니까 충분히 수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한 스티브는 귀를 막고서 발부터 내밀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일단 한 번 물장구를 치기 시작하자 뼛속까지 훈련된 팔다리가 알아서 움직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물이 더 차갑고 어둠 속에서 헤엄치는 기분이 이상하기는 했다.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니었을지도……’


물살을 가로지르며 앞으로 나아갈수록 젖은 옷이 더욱 무거워졌다. 피곤에 지쳐 몇 번인가 깜빡 졸기도 했다. 스티브는 점차 방향을 잃고 허둥대기 시작했다. 너무 취한 바람에 어디에 있는 건지 다시 길을 잡기도 힘들었고, 전신이 노곤해진 탓에 거친 해류가 몰려와 그를 먼 바다로 쓸어가는 것도 깨닫지 못했다.






스티브는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과 바다에서 불어오는 축축하고 짠 내음을 맡으며 게슴츠레 눈을 떴다. 그는 황금빛 모래사장 위에 누워 있었다. 머리 위에서는 태양이 뜨겁게 내리쬐고 있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주위를 둘러보기 전까지, 잠깐 동안 스티브는 자신이 계획했던 대로 베니스 해변까지 헤엄쳐 오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해변은 텅 비어 있었다.


그는 당황스런 심경으로 낯선 주변 환경을 멍하니 응시했다. 모래와 암초, 여전히 부딪쳐 오는 파도와 밀물에 떠밀려오는 작은 바다 생물들이 보였다. 다행히, 이 부근 바다는 이전에 몇 번 순찰한 적이 있으니 충분히 기지까지 찾아갈 수 있었다.


스티브는 천천히 고개를 들며 일어나 앉았다. 두통약, 커피 한 잔, 그리고 생수 한 통만 있으면 살 것 같았다. 갈증으로 목이 탔다.


두 번 다시 그 러시아 출신 여자하고는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그는 속으로 다짐했다. 특히 요트 위에서는 더더욱 말이다.

주머니를 툭툭 두드려봤다. 지갑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멋지군.’


다행히 휴대폰은 아직 주머니 안에 남아 있었다. 그는 덮개를 열고 배터리를 꺼내 조심스레 허벅지 위에 분해한 부품들을 올려놓았다. 부품들이 햇빛에 잘 마르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는 돌아갈 일에 대한 걱정은 특별히 하지 않고서 한동안 조용히 앉아 있었다. 직접 길을 찾아 돌아가든지 아니면 그가 사라진 것을 알아챈 다른 사람들이 배를 보내 찾으러 오든지, 어떤 방식이 되었건 간에 잘 해결될 터였다. 단지 시간문제일 뿐이다. 게다가 그리 멀리까지 떠밀려온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까 혼자서 스티브 로저스 주연의 <캐스트 어웨이>를 찍게 될 상황에 처한 건 아니라는 뜻이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가만히 주저앉아 하릴없이 낮 시간을 낭비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정작 혼자 있기를 원한 사람은 바로 스티브 그 자신이 아니었던가? 바라던 대로 그는 이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숙취와 함께.


휴대폰을 미처 다 조립하기도 전에 멀리서 모터보트의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수신호를 보내기 위해 얼른 일어나서 물 쪽으로 걸어갔다. 배는 해상경비대의 구조용 스카라베 선 중 하나였다. 스카라베 호는 가시범위에 스티브의 형체가 들어오자마자 놓치지 않고 그를 포착했다. 그는 배가 점점 가까워지면서 그 위에 탄 샘과 클린트를 발견하고서는 안도해서, 두 팔을 들어 크게 흔들었다.


“세상에, 로저스. 너 때문에 심장마비 올 뻔 했어!” 샘이 물을 헤치고 다가오는 스티브를 반기며 말했다. 묵묵히 배 위로 오르는 스티브를 두 사람이 힘겹게 끌어 올렸다.


“맞아. 대체 어쩌다 여기까지 떠내려온 거야?” 어디 다친 곳이 없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던 클린트가 물었다. 스티브는 그런 그를 손짓으로 물렸다.

“난 괜찮아. 걱정시켜서 미안.”

샘이 생수 한 통을 건넸다. 

“우린 네가 언제 떠났는지도 몰랐어. 만나는 사람 있을 때마다 원래 그렇게 몰래 사라져? 닌자냐?”

꿀꺽꿀꺽 물을 삼키던 스티브가 샘을 향해 눈살을 찌푸렸다.

“뭐?”

클린트가 미심쩍은 시선으로 스티브를 빤히 쳐다봤다.

“그래서 그 비밀 애인은 지금 어디에 뒀어? 혹시 말리부로 가는 차 필요하대?”

스티브가 되물었다. “뭐?”

샘이 그와 클린트가 스티브를 발견한 섬을 가리켰다.

“여기서는 안 보이네. 아마 아직 물 안에 있나봐. 스쿠버다이빙 같은 거 하는 사람이야? 계속 사라지더라.”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스티브는 두 사람의 대화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근처에 그들 세 사람 외에 토니가 초대한 손님들이 더 있기라도 하다는 말일까?

“난 아무도 못 봤어.”

“그럼 널 우리한테 데려온 그 사람은 누군데?” 클린트가 물었다.

“물속에서 우리한테 손을 흔들면서 계속 고개를 내밀었다가 사라졌다가 했다고. 그거 보고 따라온 거야.”

“젠장, 그 사람도 건지러 가야겠네. 이 부근은 혼자 돌아다니면 안 되는 지역이라고.”


스티브의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 사람— 어, 어떻게 생겼어?”

샘과 클린트는 시선을 교환했다.

“분명히 남자였지.” 샘이 말했다.

“머리는 짙은 색이었고.” 클린트가 말했다.

“그런데 가까이 오진 않았어. 우리 쪽에서 헤엄쳐 가기에도 너무 먼 거리였고.”


“누군지 모른다는 거야?” 샘이 면밀히 스티브의 표정을 관찰하며 물었다. 그렇지만 스티브는 이미 머릿속에서 정리를 끝낸 상태였다. 떠올릴 수 있는 얼굴은 아주 오래 전 만났던 그 아름다운 사람의 얼굴이었다. 짙은 고동색의 머리와 창백한 청회색 눈을 가졌던 사람.


“세상에.” 숨이 턱 막힌 스티브가 다시 보트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곧바로 샘과 클린트에 의해 막히고 말았다.


“그 남자를 찾아야 돼!” 스티브가 패닉에 빠져 소리쳤다. 두 눈은 벌써 넓은 바다 위를 샅샅이 뒤지고 있었다.


“제발! 그 사람 좀 찾아줘!”


“스티브, 이봐, 스티브.” 샘이 스티브의 어깨 위에 손을 올리며 그를 진정시켰다.

“괜찮을 테니까 진정 좀 해. 이미 무전으로 지원 요청 해놨어. 수색 범위 넓히고 스쿠버 장비 도착하면 네 친구 찾을 거야.”

“넌 이해 못해.” 좌절에 찬 우울한 목소리로 스티브가 말했다.

“반드시 그 남자를 만나야 해.”

“스티브, 너 지금 탈수 증세 왔어. 내 말 알아들어? 그 상태로 당장 직접 찾으러 나갈 수는 없다고.”

“알겠어.” 스티브가 두 손으로 초조하게 얼굴을 쓸어내리며 답했다. 그러나 그는 전혀 괜찮지 않았다. 어떻게 괜찮을 수 있단 말인가? 정말로 지금 저 바다 너머 누군가가—그 소년, 그 다이버가 있는 걸까? 정말 존재하는 사람이었던 것일까?


내리쬐는 태양과 부족한 물 때문에 머리가 맑지 못했다.


“그 사람 꼭 찾을 거야, 스티브.” 샘이 약속했다.




그러나 인근 바다에서 발견된 다른 사람은 없었다. 스티브는 이미 반쯤 그럴 것이라고 예상한 참이었다. 결국 18년 전 카타리나 섬에서의 기억과 똑같았다. 난리를 쳐서 남은 것이라고는 그의 동료들에게 괜한 걱정을 안겨준 것뿐이었다. 동료들은 어쩐지 아직도 스티브가 그들 몰래 정체 모를 남자와 만나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스티브는 그런 동료들에게 그가 물에 빠지기를 기다렸다가 기적적으로 잡아채서 혼자서 해변에서 멀리 떨어진 섬까지 데려다놓는 미스터리한 능력을 가진 애인 따위는 없다고 몇 번이나 해명하려 했지만, 전혀 통하지 않았다.


그는 남은 하루를 오지 않는 잠을 청하려 애쓰면서 집에서 보냈다. 잠드는 데 실패한 후에는 대신 밀린 집안일을 하거나 대장용 매뉴얼을 읽으면서 신경을 분산시키려고 시도해봤다. 둘 중 어느 것도 효과가 없자, 가장 최근에 만들어놓은 해저 사진과 서핑 사진이 담긴 스크랩북을 꺼내왔다. 보고 있으면 마음이 안정되는 사진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가 직접 노트북에 모아둔 사진들이었다. 때때로 그 사진들을 보고 간단한 스케치를 시도해본 적도 있지만, 대개는 완성하기 전에 인내심이 바닥나고는 했다. 그의 인생이란 늘 그런 식이었다.


저녁 식사를 좀 깨작인 다음에는 해가 질 때 즈음 해변 길을 따라 산책을 나섰다. 그는 산책하는 내내 해안을 따라 설치돼 있는 해상구조대의 망루를 최대한 피해서 다녔다. 그러고도 남아있던 인파가 모두 떠나고 안전요원들이 철수를 하고 기지로 복귀하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신발을 벗고서 맨발로 물가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는 바다를 내다보면서 잔잔하게 몰아치는 저녁 파도 사이로 느리게 노를 저어 갔다. 가슴이 제멋대로 짙은 머릿결을 가진 누군가가 물결 사이로 고개를 내밀기를 고대할 때마다, 머리가 터무니없는 생각 말라며 주인을 타박했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설명이 있어야 했다. 오늘 일은 실력 좋은 다이버 한 명이 혼자 먼 바다에서 유영을 즐기다가 우연히 그를 도와준 것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어쩌면 해상경비대에서 지난 몇 달 동안 잡으려고 애를 써온 보존구역에서 수영하는 무모한 암초 다이버들 중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오직 그것만이 말이 되는 설명이었다. 카타리나 섬에서 있었던 일은 모두 환각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스티브 자신조차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네가 그날 본 광경이 무엇인지 알고 있잖아. 그 사람이 진짜였다는 것도 알고 있어.’ 그의 육감이 속삭였다.


스티브는 눈앞에 펼쳐진 너른 대양을 바라보며 홀로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정말 존재한다면, 지금은 어디 있는 거야?”






하루가 저물고 있었다. 석양이 질 때 즈음이 되어서야 버키는 천천히 물 밖으로 나와 두 다리로 땅을 지탱하고 일어섰다. 모래사장 근처, 수심이 얕아지는 부근에 이르렀을 때부터 그는 이미 꼬리는 다리로 바꾸고 창백한 비늘은 말끔한 피부로 바꿔놓은 참이었다. 인간을 면밀히 관찰하는 동안, 그는 그들의 피부가 물속에서나 뭍에서나 자신의 것처럼 진주 빛으로 빛나지 않는다는 것을 익히 보아왔다. 게다가 그는 인간들 세계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도록 단단히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젖은 머릿결을 뒤로 젖힌 그는 자신 있게 물살을 가르고 앞으로 나아갔다. 한 손에는 만나고픈 그 사람의 지갑과 사진 달린 신분증을 꼭 움켜쥔 채였다. 그 고집스런 인간이 결국 스스로 물속에 뛰어드는 멍청한 짓을 저지르고 말았으니, 이제 자신이 직접 뭍으로 올라가 그가 허튼 행동 하지 않도록 단단히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이제는 그 인간을 찾을 방법이 있었다.


버키는 모래 위로 한 발자국씩 걸어 나와서 인간들이 점점이 모여 있는 해변으로 향했다.


“이봐요.” 버키보다 어려보이는 인간 남자 하나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그의 몸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했다.


“그렇게 하고 다니면 여기 경찰들한테 걸려요. 여기 애들도 있는 거 몰라요?”

한 무리의 처녀들이 대놓고 버키를 구경하고 있었다. 그들 중 한 명은 입을 떡 벌리기까지 했다.


버키는 자신이 무언가 실수를 저질렀다는 건 눈치 챘지만,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잘못한 것인지는 도통 알 수 없었다. 혹시나 싶어 주위를 쓱 둘러봤다. 다른 인간들도 모두 자신처럼 맨살을 드러내고 다니고 있었다. 비록 여기저기에 조그만 장식 같은 물건을 달고 다니기는 했지만.


“이거라도 받아요.”

남자가 물건 하나를 건네줬다. 부드럽고 햇빛에 잘 마른 감촉이 났다.


“빨리 허리라도 둘러요.” 버키가 움직이지 않자, 남자가 재촉했다.

“서둘러요. 지금 경찰들 바로 저기 있다니까요?”



해변을 순찰하던 트찰라는 모래사장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는 전라의 남성 하나를 발견했다.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남자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나마 어두워지기 시작한 때라 다행이었다. 어린 아이들을 데려온 사람들은 대부분 벌써 집에 돌아간 뒤였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런 뒤치다꺼리까지 하기에는 연봉이 너무 적은 것 같다고, 그는 남몰래 한탄했다.






해는 벌써 뒤로 넘어가고 있었으나, 시야를 밝힐 정도의 빛은 아직 충분히 남아 있었다. 스티브와 클린트, 나타샤는 한창 신입 대원을 훈련시킬 훈련장을 설치하고 있는 중이었다. 피에트로와 완다가 거들었고 클린트가 두 사람에게 신입들이 도착하기 전에 준비해야 할 사항들을 일일이 일러주고 있었다.


스티브와 나타샤는 장비를 확인한 다음, 구명보트의 돛을 내렸다. 나타샤는 여전히 스타크의 선상 파티에서 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건지 캐묻기 위해 시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는 중이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자신의 드라마틱한 탈출기가 너무 멍청한 내용이었기 때문에, 스티브는 차라리 기이한 이동수단을 가진 정체불명의 데이트 상대와 밀회를 나누고 있었다고 생각하는 다른 동료들의 믿음을 가만히 내버려두기로 했다. 진창 취해서 배에서 1마일이나 떨어진 섬까지 혼자 헤엄쳐 갔다는 진실이 알려지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곧 수상경비대장이라는 직책을 맡게 될 사람치고는 너무 무책임한 행동이었다. 비록 그가 거짓말하는 것을 아주 싫어하는 사람이기는 했지만, 역시 데이트 상대와 놀다가 길을 잃었다는 오해를 사는 편이 차라리 나았다.


그러나 나타샤는 스티브의 침묵조차도 점점 의심하고 있었다. 아니면 그날 밤 스티브가 만취하도록 일조한 데 대한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는 걸지도 몰랐다. 어느 쪽이 되었든, 그는 가능한 한 나타샤의 날카로운 질문들을 비껴가려고 용을 쓰면서 장비 확인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에게 맡겨진 부품은 스쿠버 장비들이었다. 그리고 나타샤 로마노프의 예리한 눈초리를 피하는 것도.


“그 사람이 대체 어떻게 널 요트에서 빼냈는지만 알려달라니까.” 나타샤가 무거운 산소 탱크를 들어 스티브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로맨틱 했어? 나룻배로 직접 데리러 오기라도 한 거야?”

“저기, 냇.” 스티브가 그녀의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

“그때 나는 꽤 취한 상태였고, 밤도 어두워서……”

“알아.” 나타샤가 끼어들며 말했다.

“그다지 이상적인 상황은 아니었다는 말이지?”

스티브는 한숨을 내쉬었다.

“제발, 이제 그만. 나도 엄청 후회하는 중이라니까? 두 번 다시 그런 실수는 없을 거야.”

“엄청 섹시한 사람이 와서 꼬셔내도?”

그 질문에 스티브가 웃음을 터뜨렸다.

“응. 엄청 섹시한 사람이 와서 꼬셔내도.” 그가 맹세했다. 비록 나타샤가 말하는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매우 적어보였지만 말이다.


그때였다. 스티브의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물에 젖어 망가진 전화 대신 가져온 보조 휴대폰은 벨소리가 달라서 처음에는 못 알아들을 뻔 했다. 화면을 확인해보니 해안경찰인 트찰라였다.

“트찰라, 무슨 일인가?”

“스티브.” 트찰라의 목소리가 그를 반갑게 맞이했다.

“아직 27번 망루에 있나?”

“그래, 방금 내려온 참이네. 아직 훈련은 시작 안 했어. 무슨 일인가?”

“자네 지갑을 갖고 있는 사람을 발견했는데 말이야.”

“뭐라고?” 스티브는 놀랐다. 지갑은 바다에 빠졌을 때 이미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참이었다. 아마 어떤 다이버가 우연히 주운 모양이었다.

“그거 잘됐군. 주운 사람이 가져다 줬나?”

아마 보상금을 바라고 한 행동이었으리라.

“그런 것 같네.” 트찰라가 대답했다.

“직접 그렇다고 말한 건 아니고, 신분증에 있는 자네 사진을 가리키던데. 아는 사이야?”

“나를?” 스티브는 어리둥절했다.

“그것 말고 다른 얘기는 없던가?”

“한 마디도 없었네. 그리고 한 가지 더 있는데……”

트찰라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 사람, 우리가 해변에서 발견했을 때 맨몸으로 돌아다니고 있었네.”

“맨 몸으로?” 스티브가 멍하니 되물었다. 옆에 있던 나타샤가 호기심을 가득 담은 눈으로 홱 돌아다봤다.

“그래.” 트찰라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왜 그런 짓을……?” 스티브가 말끝을 흐렸다. 


순간, 그의 머릿속으로 카타리나 섬의 창백하고 미끈한 피부를 지닌 그 완벽했던 소년의 모습이 스쳤다.

“자네가 말하는 그 남자, 혹시……” 스티브는 힘겹게 침을 삼켰다.

“그 사람 혹시 머리색이 갈색이던가?”

“그렇네.” 트찰라가 대답했다.

“어깨까지 오는 길이에 짙은 고동색일세.”

“젠장!” 스티브가 낮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자네 지금 어딘가? 그 사람 아직 같이 있지?”

“일단 본부로 데리고 왔네. 아마 자네 기다리고 있을 거야.”

“알았어, 알겠네. 잠깐만 기다려줘.” 스티브가 다급하게 말했다.

“지금 출발하니까, 절대 떠나게 두면 안 되네! 고마워!”


전화를 끊는 그를 나타샤가 물끄러미 쳐다봤다.

“무슨 일이야?” 나타샤가 물었다.

“지금 당장 가봐야겠어.” 스티브는 벌써 발걸음을 돌린 상태였다.

“훈련은 자네랑 클린트가 먼저 시작하고 있어. 도와줄 사람 필요하면 스콧 부르고!”

말을 마치자마자 그는 주차돼있던 지프차 위로 뛰어가 시동을 걸었다. 해변에 남아있던 그의 동료들이 급히 사라지는 그의 지프차 뒤꽁무니를 쳐다봤다.


“중요한 일이라도 생긴 거야?” 클린트가 물었다.

“누가 로저스 지갑을 가지고 있대.” 나타샤가 대신 설명했다.

“들은 내용으로는, 발가벗은 남자라던데?”

클린트가 와락 웃음을 터뜨렸다.

“스타크네 파티에서 만난 그 수영친구라는 데 가진 돈 다 걸게.”






해변이 텅 비어있는 게 다행이었다. 스티브는 쿵쾅대는 심장을 간신히 억누르며 빠르게 차를 몰았다. 그의 지프는 모래사장 위를 거의 폭격하듯이 거칠게 내달리며, 신기록을 세우며 기지에 도착했다. 시동을 끈 스티브는 지프에서 뛰어내려 성큼성큼 계단을 달려 올라갔다. 가슴 속에서 기대감이 불꽃처럼 불타올랐다. 그렇지만,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섣불리 믿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건물 안으로 뛰어갔을 때, 사무실은 고요했다. 프론트 데스크에 샘과 트찰라가 나란히 앉아있었다. 스티브는 둘에게 다가가 다그쳤다.


“그 사람 갔어? 어디로 갔어? 지금은 어디에 있어?”

“워워, 진정해.” 샘이 일어나서 사무실 맞은편을 가리켰다.

“네 남친 저기 있거든?”


그 말을 들은 스티브가 몸을 휙 돌렸다. 샘의 말대로, 작은 대기실에 앉아 체구보다 훨씬 큰 LA 해상경비대 티셔츠를 입고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그의 또래로 보이는 젊은 청년이었다. 어깨 길이의 갈색 머리카락과 창백하고 흠 하나 없는 완벽한 피부를 지닌 바로 그 사람. 그는 스티브를 발견하자마자 아무것도 입지 않은 긴 다리를 뻗어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스티브를 마주보며 환하게 웃었다.


스티브는 홀린 사람처럼 그를 향해 걸어갔다. 두 눈으로 보고 있는 장면을 믿을 수 없었다. 이 남자는…… 그 남자는 마치 스티브 자신의 꿈이 빚어낸 환상 같았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점점 줄어들었다. 닿을 만치 가까이 다가서자, 비로소 뼛속 깊이 새겨져 있던 기억이 솟아올랐다. 스티브는 남자의 시선을 피하지도, 얼굴 위로 저절로 떠오르는 바보 같은 웃음을 막지도 못했다.


“어……, 안녕.”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어조로 스티브가 인사를 건넸다.


“너랑 나랑, 그러니까……”


갈색머리의 남자가 먼저 손을 뻗었다. 그는 한손으로 조심스럽게 스티브의 얼굴을 붙들고서 자기 쪽으로 가까이 끌어당겼다. 무의식중에 스티브가 그 손을 향해 몸을 기울였고, 곧 두 사람의 입술이 맞물렸다. 스티브는 두 눈을 감은 채로 얌전히 키스에 몸을 맡겼다. 그의 두 팔이 남자를 꽉 끌어안았다. 수년 만에 처음으로, 다시 그때의 평안과 안정감이 밀려왔다.


키스에 빠져 허우적대던 스티브는 뒤에서 헛기침을 하는 샘의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겨우 붙어있던 몸을 떼어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이 그 정체불명의 애인?”


스티브는 대답 대신 씩 웃었다. 두 손으로는 여전히 그의 새 친구를 꼭 붙들고 시선은 남자의 푸른 눈동자에 고정시킨 채였다.


“나도 제발 그러기를 바라네.” 그는 기쁨에 가득 찬 음성으로 속삭였다.








으으.... 일단 힘들어서 1편의 1/3까지만 하고 올립니다. 현재 작가님이 업뎃한 1편까지는 번역 마칠 계획입니다. 뒤로 갈수록 엄청 섹시하고 귀여운 인어버키가 나와요! 영고샘도.... (._.)


격려의 말과 피드백, 오역 수정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8_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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