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답장이 없던 존잘님께 드디어 번역 허락 메일이 왔습니다. Lavender는 저도 재미있게 읽고 번역했던 글이라서, 연관된 글인 이 단편을 보자마자 번역을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짧지만 달달한 글입니다. 

!! 늘 그렇듯이 오역 및 윤문 주의.



원글 링크: http://archiveofourown.org/works/8083876

원제: All the Time We Need

번역 허락글: 


본문에서 버키가 언급한 선 드레스 이미지.
본문에서 버키가 언급한 선 드레스 이미지.




줄거리: “우리 결혼할 작정이었지.”
       “그랬지.”

혹은 버키가 두 사람의 과거에서 어떤 중요한 일을 기억해내는 이야기.

작가의 말: 이 작품은 ms4815162342의 <Lavender>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본 작품을 착안하도록 아이디어를 제공해준 <Lavender>와 본 작품이 직접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만, (<Lavender>에 등장하는) “우리 결혼할 작정이었지?”라는 (버키의) 대사가 너무 마음이 아팠고 그 이후로 두 사람의 결혼식에 관한 생각이 멈추질 않았어요. 거기에다 제가 사랑하는 젠더스왑 버키와 선드레스를 끼얹으니 이런 결과물이 나왔스빈다. 부디 재미있게 읽어주시기를.
글을 안 쓴지 4년 정도 돼서 솜씨가 많이 녹슬었는데, 다시 펜대를 잡도록 영감을 준 마블에 감사합니다.



“응, 그랬지.”

그는 그녀의 머리를 땋아주던 참이었다. 잠자리에 들기 전, 매일 밤 의식처럼 하는 행위였다. 먼저 기억해낸 쪽은 버키였다. 그녀가 먼저 그 이야기를 꺼냈다.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다시 그 단어를 입에 올리게 됐을 때 스티브는 거의 울음을 터뜨릴 뻔했다.  

버키가 속삭이듯이 말을 이었다.
“기억이 나. 네가 반지랑 다른 선물들을 줬고, 나는 하겠다고 대답했었어.”
머리를 땋아주던 스티브의 손길이 살짝 느려지는 듯했으나, 금세 제 속도를 되찾았다.
“맞아, 그랬었지. 화려한 식을 올리기로 했었어. 적어도 우리 형편에서 할 수 있는 한 가장 멋진 식을 올리기로. 그때 너는 길고 치렁치렁한 드레스 말고 다른 걸 입고 싶다고 줄곧 말했었는데, 그게─”
“선 드레스(sun dress)였어. 넌 너희 아버지가 물려주신 턱시도를 입기로 했고. 비록 너무 품이 넓어서 네가 입으면 그 안에서 헤엄칠 수도 있을 것 같긴 했지만.”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입술 끝이 살포시 올라갔다. 그 호선이 미소를 닮아 있었다. 한 번 떠오른 기억은 계속해서 되풀이되었다. 지금보다 훨씬 작았던 스티브가 한쪽 무릎을 꿇고서 ‘내가 가진 것도 별로 없는 사람이라는 건 잘 알고 있어. 그렇지만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한 쌍이 될 수 있을 거야’라며 청혼하던 모습과, 승낙과, 기쁨에 겨워 흘러내리던 눈물을 기억한다.
“미안해, 그때 준 반지 잃어버렸어. 떨어질 때 손에 끼고 있었는데,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어.”
스티브가 머리 땋기를 마친지는 이미 한참 전이었다. 그러나 그는 버키의 뒷자리를 그대로 지키고 있었다. 과연 지금 울지 않고서 버키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버키를 불안하게 만드는 일만큼은 절대 사절이었다.
“괜찮아. 네가 원한다면 새로 하나 사오면 되지.”
“그거 지금 나한테 청혼하는 거야, 스티비?”
버키의 대답에 스티브는 하마터면 헛기침으로 목이 막힐 뻔 했다.
“그게 아니라, 그러니까, 저─ 당연히 나는 너랑 결혼하고 싶지, 벅. 다만 아직 우리가 그럴 준비가 됐는지 확신이 서질 않아서─”
“하자, 결혼. 나도 알아. 내 상태 아직 거지같다는 거.”
그녀는 바닥에 기대고 있던 손을 들어 스티브의 손을 끌어당겼다. 두 개의 손이 작은 틈 하나 두지 않고 친밀하게 얽혀들었다.
“그래도 그 반지 받고 싶어. 아, 무릎 꿇고서 프로포즈하는 건 또 안 해도 괜찮아. 그냥 네가 준 반지만 다시 낄 수 있으면 난 그걸로 충분해.”
“좋아, 그럼 같이 가서 네 마음에 드는 걸로 고르자. 무릎 꿇고 바치는 건 또 하진 않을게. 네 말대로 이미 한 번 했으니까. 그래도 네 손에 내가 직접 끼워주는 것만은 꼭 하게 해줘.”
스티브는 옛날 자신이 선물했던 반지, 얇은 은빛 띠 위에 작은 다이아몬드가 놓아진 그 오래된 반지가 버키의 손 위에 얼마나 잘 어울렸는지를 떠올리며 엄지로 그녀의 검지를 슬며시 쓸어내렸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반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버키는 자신이 준 그 반지를 참 많이 아꼈더랬다.
“응, 네가 직접 끼워줘.”
버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입 꼬리가 눈가에 닿을 만큼 크고 환한 미소였다.
“어떤 반지라도 괜찮아. 크든 작든 상관없어. 뭐가 되더라도 분명 내 마음에 들 테니까.”
아마 스티브가 짚으로 만든 반지를 그 손에 끼워줘도 버키는 여전히 그걸 아낄 터였다.
“진짜 식은 나중에 올려도 좋아. 이젠 우리 앞에도 시간은 충분하니까, 그렇지? 천천히, 조금씩 걸어도 돼.”
“작은 결혼식을 치러도 멋지겠다. 너랑 나랑 우리 친구들만 모이는 거야. 샘이 내 베스트맨을 해주고. 이 집에서 그대로 식을 올려도 아름다울 거야. 넌 네 선 드레스를 입고서 그렇게……”
굳이 소매로 눈가를 훔쳐보지 않아도 스티브는 자신이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 애써 참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기쁨의 눈물이었다. 수십 년 전 그때 버키를 놓친 이후로 그는 두 번 다시 누군가를 찾아 함께할 수 있으리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과 함께 정착한다는 생각은 머릿속에서 깨끗하게 지워버렸다. 그러나 말 그대로 ‘미래에서’ 다시 버키를 되찾자마자, 그동안 마음 한켠 깊숙이 묻어두었던 오랜 꿈과 소망이 다시금 울렁이며 되살아났다.
“내 들러리는 냇이 서주면 되겠다. 내 구두랑 짝이 맞는 색으로 같이 신자고 할 거야, 어때? 넌 네 유니폼이나, 근사한 정장이나, 아니면 네가 마음에 드는 걸로 무엇이든 입으면 돼.”
버키가 자유로운 한 손으로 스티브의 턱을 동그랗게 모아 쥐었다. 스티브가 꼭 솜사탕 먹은 강아지처럼 행복한 표정으로 그 손길에 기대오는 것을 느끼고서 그녀는 작게 키득거렸다.
“부디 나와 결혼해줘, 버키. 진심으로 너를 원해.”
“마찬가지야.”
그리고 두 사람의 입술이 겹쳐졌다. 그러나 예전의 키스와는 달랐다. 급한 임무로 호출 받은 스티브가 몇 주씩 집을 비우기 직전 나눴던 성급한 키스도, 어두운 밤 둘만의 침실에서 교환하는 질척하고 느리고 정욕에 휩싸여 떠밀리는 키스도 아니었다. 마치 온전한 사랑 그 자체여서, 자신의 영혼을 바치고 그녀는 또 그녀의 영혼을 건네주는, 영원한 한 몸의 서원을 세우는 입맞춤 같았다.
두 사람은 결혼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만큼은, 오로지 이 순간만큼은 조금 더 기다려도 괜찮았다.



<끝> 




덧) 후반부에 "부디 나와 결혼해줘, 버키."라고 번역한 부분의 원문은 "I'm gonna make a honest woman out of you, Doll."입니다. make a honest woman out of sbd는 남성이 현재 성관계 이상의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여성과 법적인 혼인을 올리겠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관용구입니다. 혼전 성관계가 불법적인 것으로 간주되던 시절, 연인 사이의 두 남녀가 구설수를 막기 위해 호텔 등을 출입할 때 남자의 성을 공유해서 쓰던 관례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아마 사실혼적인 관계 뿐만 아니라 법적으로도 상대방을 정당한 파트너로 맞아들이겠다는 의미에서 honest라는 표현을 쓰지 않나 추측해봅니다. 

이러한 맥락을 고려한 적절한 한국어 번역을 찾지 못해서 아쉬운대로 위와 같이 번역했습니다만, 더 좋은 의견이 있으신 분은 언제든지 댓글로 피드백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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