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링크: http://archiveofourown.org/works/8987740/chapters/20539438


번역 허락글 캡쳐
번역 허락글 캡쳐


퍼벤AU로 이웃집 알파 럼로우와 오메가 버키가 썸타는 이야기입니다. 완전...완전 좋고 너무 취향 저격이고 이건 진짜 다함께 읽고 럼벜을 파야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부족한 실력이지만, 조금씩 번역 하고 있습니다. 

현재 챕터 1까지 올라와 있는 상태이고, 작가님 코멘트로는 같은 시리즈로 몇 편 더 쓸 수도 있다고 합니다 (기쁨의 딴스)

다만 제 실력이 일천한데 게으르기까지 해서(._.) 챕터 1을 셋으로 나누어 올립니다. 


모두 위의 원문 링크로 들어가서 작가님께 꼭 응원의 댓글 부탁드려요8_8 뒷편 보고 싶습니다 8_8 



오역, 오타, 비문 및 윤문 주의. (역주 표시된 부분은 끝에서 따로 설명). 




Something About the New Fella  

Ch. 1-1 

by s-o-l-d-a-t




    아파트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부드러운 장뇌향(역주1)이 꿈결처럼 버키의 코끝을 반겼다. 향의 근원지를 찾았을 때는 벌써 반쯤 층계를 올라가던 참이었다. 키가 크고 머리색이 짙은, 모로 보나 알파가 분명한 사람이 커다란 크기의 체리목 옷장을 혼자서 힘겹게 들어 올리고 있었다. 입고 있는 차림새로 봐서는 우아한 사무실에나 앉아있을 법한 사람이었다. 남자는, 고생스럽기는 해도, 혼자서 이삿짐을 옮길 정도의 힘은 있어보였다. 그러나 버키는 두 손 멀쩡히 달려있는데도 가만히 서서 그 꼴을 구경만 할 위인이 아니었다. 그는 층계를 성큼성큼 뛰어 올라가서 옷장 반대편을 잡아들었다. 그리고 고개를 기웃거리며 물었다.

    “도와줄 이삿짐센터 안 불렀어요?”

    “당연히 불렀죠.”

    알파가 달뜬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는 조금이라도 부담이 줄어든 것에 감사해 보였다.

    “그렇다고 하루 종일 앉아서 남들 일하는 거 구경만 할 수는 없잖소.”

    대답을 들은 버키가 빙그레 웃었다. 그는 팔을 좀 더 아래로 집어넣어 비틀거리는 가구를 단단히 받쳐 들었다.

    “그나저나 어디로 옮기면 되죠?”

    “309호요.”

    “아~ 언제쯤 누가 거기 들어올지 궁금하던 참이었는데.”

   마지막 층계참을 올라가던 버키가 낑낑대며 말했다. 평지에 도착하고 나서야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남자의 집은 3층 가장 끝에 위치한 집이었다.

   “여기다 두면 돼요.”

   실내로 들어선 남자가 조심스럽게 발을 옮기며 말했다. 버키는 남자를 도와서 바닥에 옷장을 내려놓았다. 그렇게 일 하나를 끝낸 알파는, 방금 옮긴 옷장 위에 한쪽 팔을 걸치고는 숨을 몰아쉬었다. 드디어 제대로 얼굴을 관찰할 기회가 생기자, 버키는 남자가 그보다 열 살은 더 많아 보인다는 점을 깨달았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는 남자의 손가락을 따라 버키의 시선도 함께 움직였다. 정수리 쪽이 땀에 흠뻑 젖긴 했어도, 거칠게 쓸어 올려 고정시킨 남자의 머리카락은 어느 정도 모양을 유지하고 있었다. 남자는 옷장에 기대던 몸을 일으키면서 버키를 향해 손을 뻗었다.

   “브록 럼로우요.”

   눈앞에 들이밀어진 손을 버키가 맞잡았다.

   “버키라고 부르세요. 친구 스티브랑 302호에 살고 있어요.”

   브록한테서 반응이 돌아올 때까지―정확히는 그가 버키의 손을 놓아주기까지―묘하게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언뜻 보면 천천히 냄새를 맡듯 킁킁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버키는 어쩐지 모를 불편함으로 뱃속이 뒤틀렸다.

   “그럼 나중에 또 봅시다.”

   마침내 브록이 버키의 손을 놓아주며 말했다. 버키는 방금 전 남자와 자기 사이에서 느낀 짧은 정적이 자신만의 착각인 것인지, 아니면 현실인지 혼돈스러웠다. 그러나 그는 어색한 일 따위 일어난 적 없다는 듯 부러 의연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이죠. 이사 온 걸 환영해요.”

   슬쩍 머리를 매만지던 버키는, 곧 짧게 고갯짓을 하고 돌아섰다. 아니, 돌아서려던 참이었다.

   “도와줘서 고마웠소.”

   뒤에서 브록이 소리쳤다.

   “별 일 아닌데요, 뭘.”


   자기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버키는 현관문을 걸어 잠그고 그 위에 기대섰다. 그리고 재킷을 벗어 코를 처박은 다음 깊이 냄새를 들이 맡았다. 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자기 몸에서 나는 냄새를 자기가 구분하기란 까다로운 법이다. 순간 그 남자한테 향을 들킨 줄 알고 심장이 덜컹했지만, 그저 자신이 지레 착각한 걸 수도 있다. 아니면 브록의 코가 킁킁댄다고 본 것 자체가 자신의 환각이던가.

   넓게 펼쳐진 신문지 위로 작은 금발머리가 쏙 고개를 쳐들었다.

   “냄새 때문에 걱정하는 거라면, 네가 문 열고 들어오자마자 인공 페로몬이 풀풀 풍길 정도니까 걱정 마. 오히려 너무 많이 뿌려서 문제지.”

   힘겹게 발걸음을 떼던 버키의 입에서 그때서야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는 어깨 위에 걸쳐 있던 재킷을 벗어서 옷걸이에 건 다음, 거실로 가서 스티브 맞은편 소파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렇게 심해? 가짜인 거, 사람들이 알아챌까?”

   스티브는 보고 있던 신문을 곱게 접어 내려놓은 다음, 그의 친구에게 주의를 돌렸다. 작은 알파는 작게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

   “왜 갑자기 그렇게 걱정하는데? 전에도 말했지만, 사람들은 언제나 자기들이 보고 싶은 걸 본다니까. 널 보자마자 아주 매력적이고 열심히 일하는 남자, 그리고 더할 나위 없는 알파라고 생각할 걸. 아무도 의심 안 할 거야.”

버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자신이 너무 심각하게 생각한 것 같았다. 남자의 몸짓은 아무리 봐도 악의 없는 평범한 제스쳐였을 뿐이다. 그런데 왜 그렇게 신경이 쓰이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여러 번 말하는 거지만,”

   스티브가 말을 이었다. 그의 얼굴 위에는 벌써 어떤 반박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그 알파 페로몬을 계속 뿌리는 건 좋지 않아. 네가 남자 오메가라고 해서 잘못된 건 없어. 넌 그냥 너일 뿐이지. 잘못된 건 네가 아니라―”

   “사회라는 거지, 나도 알아.”

   버키가 웃으며 대답했다. 이전에도 스티브로부터 같은 잔소리를 몇 번이나 들었는지 모른다. 지금 대사는 버키가 말리지 않으면 앞으로 몇 시간이고 이어질 게 분명한 장광설의 시작일 뿐이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벅.”

   그러나 스티브는 물러나지 않고 주장했다. 읽고 있던 신문은 어느 새 잊힌 채 그의 무릎 위에 가만히 놓인 채였다.

   “넌 정말로 멋진 사람이고, 오메가라고 해서 그걸 숨길 필요 따위 전혀 없어.”

   “안다니까, 스티브.”

   약간 짜증이 치밀어 오르려는 것을 억누르며 버키는 애써 웃었다. 그는 무거운 다리를 억지로 일으켰다. 그리고 친구의 어깨를 한 번 단단히 움켜쥔 다음, 부엌으로 걸음을 옮겼다.

   “경제라도 좀 나아지면 ‘나 오메가요’ 하고 알리고 다닐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지금은 그럴 여유도 없는 것 같다.”

   “왜 네가 기다려야 하는 건데.”

   스티브는 숨죽여 투덜댔다. 내팽개쳤던 신문을 툭툭 털어내는 손길이 평소보다 더 거칠었다.

   “309호에 새 가족 이사 왔더라.”

   버키가 저녁을 차릴 재료를 집어 들며 무심히 화제를 돌렸다.

   “그래?”

   스티브가 신문 너머로 흘낏 눈알을 굴렸다.

   “가족 전부랑 얘기해본 거야?”

   “그냥 짧게 한 명하고만.”

   버키는 어깨를 한 번 으쓱였다.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놓은 팬이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괜찮은 사람 같더라.”

   

   부두로 출근하기 위해 막 현관문을 열고 나가려던 참이었다. 버키는 스티브가 장기를 뱉어낼 것처럼 심하게 콜록 거리면서도 일하러 나갈 채비를 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끊임없이 터지는 기침은 만약 그가 스티브의 사정을 잘 몰랐다면 겁먹을 만큼 심각한 수준이었다. 버키는 단호히 문 앞을 막아섰다.

   “난 괜찮아, 벅.”

   스티브가 고집을 부렸다. 그러더니 증명이라도 하려는 건지, 발작적으로 튀어나오는 기침을 막아보려고 두 손으로는 가슴을 부여잡고 턱에 힘을 주어 입을 꽉 다물었다. 순전히 의지력으로만 병을 물리치는 게 가능한 일이었다면, 이 작은 금발 녀석은 그 분야에서 세계선수권 챔피언도 능히 딸 놈이었다. 공교롭게도, 그럴 수 없다는 게 문제였지만.

   버키는 눈살을 찌푸리며 뚫어져라 친구 놈을 쳐다봤다. 그 눈빛만으로도 버키의 의지는 충분히 전달되었다.

   스티브가 먼저 갈색 소파 위에 풀썩 주저앉았다. 녀석은 칼칼한 목으로 헛기침을 하며 소리 죽여 가래를 삼켰다. 그러나 들키지 않으려던 녀석의 미묘한 노력은 오히려 역효과만 불러올 뿐이었다.

   “그러니까, 난 괜―”

   미처 말을 끝맺기도 전에 발작적인 기침이 다시 녀석의 전신을 덮쳤고, 버키의 코앞에서 그 작은 몸이 맥없이 비틀거렸다.

   버키는 콧잔등을 꾹 누르며 중얼거렸다.

   “제길, 스티브……”

   한숨 소리와 함께 그의 양 팔이 힘없이 아래로 툭 떨어졌다. 그는 얼른 부엌으로 가서 물을 떠와 스티브에게 건넸다. 순순히 물을 받아 마신 녀석은 힘없이 작게 고맙다고 중얼거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버키는 녀석이 고집부리는 이유가 갑자기 짐작되기 시작했다. 이유를 깨닫자마자 두 눈이 전등만 하게 커졌다.

   “너 지금 돈 때문에 이러는 거지? 스티브, 그 걱정은 안 해도 된다고 대체 몇 번이나 말해야―”

   스티브의 두 눈이 잽싸게 희번덕거렸다.

   “그만해, 벅. 처음 이 집에 이사 오던 날에 내가 말했었지. 내 몫은 내가 감당할 수 있다고.”

   버키는 스티브 옆에 나란히 주저앉았다.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스르르 풀리는 표정까지 막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내가 대답했었잖아. 너 나한테 빚진 거 아무것도 없다고. 난 너한테 같이 살자고 제안한 거지, 세입자가 돼달라고 부탁한 게 아니란 말이다.”

   “벅……”

   급격한 피로가 스티브의 작은 몸을 덮치면서 그의 전의도 함께 흩어져버렸다. 녀석의 상태가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는 신호였다.

   “넌 진료비 낼 것만 걱정해. 집세 걱정은 내가 할 테니까. 그럼 아무것도 문제될 거 없다고.”

   버키가 의연하게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는 부러 늘어지게 소파에 등을 기대고 앉아서는, 스티브 뒤로 팔을 돌려 허물없이 작은 등을 두드렸다. 스티브 녀석이 자기한테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실제로도 전혀 빚 따위 지고 있는 게 아니고 말이다.

   “대신 다음 달에는 네가 집세 내면 되지, 뭐.”

   스티브는 계속 끓어오르는 가래를 가라앉히기 위해 작게 주먹 쥔 손으로 가슴을 쳐대며 한숨을 쉬었다.

   “고마워, 벅.”

   “푹 쉬기나 해.”

   버키가 그런 그를 향해 손가락을 콕 집어 가리키며 못을 박았다.

   “출근하자마자 회사 전화로 네 직장에 전화해서 상황 다 설명할 거야. 가다가 데이비스 부인 만나게 되면 수프라도 좀 만들어 주시라고 부탁해 놓을게.”

   그렇게 몇 번을 당부하고 나서야 버키는 집을 나섰다. 급히 발걸음을 서두르던 그는 하마터면 복도에서 이웃집 브록과 부딪칠 뻔 했다. 몇 번을 봐도, 이런 낡은 아파트에서 살기에는 너무 세련되게 입고 다니는 사람이었다.

   “미안해요.”

   버키가 한 발짝 물러서며 슬쩍 웃었다.

   “아뇨. 먼저 가도록 해요.”

   브록이 몸을 뒤로 물리며 말했다. 잘 빠진 턱선 덕에 희미한 미소가 더욱 돋보였다. 이쯤 되니 버키는 확신이 들었다. 이 사람은 혼자 사는 게 분명했다. 부인도 없고 자식도 없는 독신.

   감사의 표시로 고개를 숙인 다음, 버키는 계단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웃집 남자가 돌아가지 않고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단 사실을 알아챈 것은, 그의 구두 굽 소리 때문도 아니고, 오로지 코끝을 맴도는 남자의 부드러운 장뇌향 덕이었다. 브루클린에 쌔고 쌘 게 알파지만, 이렇게 누군가의 향이 오랫동안 코끝을 맴도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이따 낮에는 하늘 좀 개면 좋겠네.”

   브록이 툭 던졌다.

   스티브 말대로 그저 새 이웃과 말을 터보려고 던지는 흔한 인사말일 터였다. 그러나 버키의 머릿속은 무의식적으로 습관처럼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분명 겉보기에는 예의 바른 인사와 의미 없는 수다일 뿐이다. 그러나 그 아래에는 대체 뭘 숨기고 있을까?

   불현듯 버키는 날씨 얘기 말고 다른 흥미로운 얘깃거리가 있었으면 하고 바랐다. 사실 찾으려면 찾을 수도 있었지만, 그 중 어느 것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는 그저 짧게 대답했다.

   “그러게요. 구름 좀 걷히면 햇빛이라도 쐬러 갈 수 있을 텐데요.”



   ‘아무것도 문제 될 거 없다고.’ 분명 스티브에게 그렇게 말했더랬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아, 제발! 그냥 농담하는 거죠?”

   “정말 미안해, 버키, 하지만 나도 손쓸 도리가 없다고.”

   약사는 넓은 콧잔등 위로 안경을 끌어 올리며 설명했다.

   “자네도 잘 알잖아, 거, 수요랑 공급 말이야. 게다가 요즘 같은 불황에는 어떻겠어? 억제제 구하기가 금값이라고.”

   그 말을 들은 버키는 고개를 앞으로 뚝 떨구며 천천히 머리를 뒤로 쓸어 넘겼다. 입에서는 낮게 끙 하는 신음 소리가 흘렀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는 숫자가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기록부(역주2)를 다시 한 번 들여다봤다.

   “약 떨어지는 속도로 봐서는 차라리 집에서 노는 게 나을 정도네요. 그거 알아요? 딱 억제제가 허락해주는 일수만큼만 일하러 나가는 것 같아요. 그렇게 나가서 번 돈은 다시 억제제 사는 데 써야 하고요.”

   약사가 동정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기다리는 동안 집에서 쉬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지. 상사한테 연락해서 휴가를 당겨달라고 부탁하는 건 어때.”

   “못해요.”

   버키는 지갑을 찾아 코트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약사한테 차마 ‘날 고용한 사장은 내가 억제제가 필요한 직원이란 사실 따위 전혀 모른다’는 자세한 설명까지는 할 수 없었다.

   “일 때문에만 필요한 게 아니라고요.”

   그는 엄지로 지갑 속 지폐 수를 쓱 세어봤다. 생기 없는 목소리가 홀로 약값을 계산해보며 숫자를 세었다. 곧 그의 얼굴이 지독하게 구겨졌다.

   “다음 급료일까지 제 몫 좀 남겨놔 줄 수 있겠어요?”

   “물론이지, 벅.”

   약사는 매우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버키의 눈앞까지 내밀어졌던 처방전은 다시 판매대 뒤로 사라져야 했다.

   “그동안 몸조리 잘 하고. 알았지?”


   단지로 돌아오는 길에 이웃집 알파가 계단을 오르는 것이 보였다. 그는 연로한 데이비스 부인의 짐을 대신 들어주고 있었다. 버키는 그런 그와 말없이 짧게 눈인사만 교환했다.

   집에 들어가니, 스티브가 여전히 코를 훌쩍이며 이따금씩 콜록거리고 있었다. 그래도 나가기 전에 비하면 훨씬 양호한 편이었다. 작은 알파는 라디오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지지직거리고 웅얼거리는 앵커의 말을 귀까지 붙여가며 열심히 듣고 있는 중이었다. 어떻게 그런 엉망인 소리를 알아듣는지는 상상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버키는 그대로 욕실로 직진했다. 대화를 계속 할 수 있도록 문은 일부러 열어두었다.

   “럼로우 씨가 데이비스 부인 도와주는 걸 봤어.”

   “그래?”

   밖에서 스티브의 대답이 들려왔다.

   “그 사람, 볼 때마다 정장 입고 있더라. 항상 정중하고.”

   약장 손잡이를 잡아당긴 버키는 남아있는 약병을 모두 꺼냈다.

   “아무도 안 보는 데서는 무슨 짓을 하나 몰라.”

   “그냥 친절한 사람일 수도 있단 생각은 전혀 안 하는구나?”

   “글쎄다.”

   뚜껑을 연 버키가 약통 바닥에 몇 개 남지 않은 알약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남한테는 밝힐 수 없는 이유 때문에 몸을 숨기는 중인지도 모르지. 턱밑까지 돈을 쌓아놓고 살 것처럼 생겨서는 이런 낡은 아파트에 살다니, 이상하잖아.”

   그 말을 들은 스티브가 웃었다.

   “할머니 도와드리는 거 하나 보고 프로파일링까지 끝내다니, 대단한데?”

   버키도 따라 웃었지만, 웃는 게 차마 웃는 게 아니었다. 그는 속이 뒤틀리는 것을 느끼며 들리지 않도록 욕설을 삼켰다. 그리고 하나씩 하나씩, 알약을 반으로 쪼개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서든 수를 늘려놔야 했다.



   부두에 간 버키는 겨우 용기를 짜내서 상사에게 혹시 봉급을 올려줄 수 없을지 물었다. 돌아온 반응은 예상한 그대로여서 놀랍지도 않았다.

   “미안하네, 벅. 자네가 성실한 직원인 건 나도 잘 알고 있고, 자네 부탁대로 해주고 싶다네. 하지만 방법이 없어. 적어도 요즘 같은 불경기에는 힘들다고. 그래도 전쟁이 끝나면 상황이 좀 나아질 테니 기다려보게나.”

버키는 스티브를 떠올렸다. 아침에 얼마나 자신만만하게 이번 달 방세는 자기가 냈다고 으스대며 녀석을 안심시켰던가. 그 방세를 내려고 자기 친구가 빚까지 졌다는 걸 알면 녀석은 까무러칠 게 분명했다. 두 사람이 항상 이렇게까지 돈이 쪼들린 건 아니었다. 그러나 전쟁이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근무를 마친 버키는 집까지 걸어서 귀가하기로 했다. 겨우 기력을 회복한 스티브 녀석의 기운을 북돋아주기 위해, 같이 놀러 나가서 재미도 보고 여자애들도 만나러 가자고 할 참이었다. 집 근처 거리에 다다랐을 때, 그는 택시를 타지 않은 자신의 선택에 안도했다. 건물과 건물 사이, 좁은 골목길 옆을 지나가는데, 친숙한 목소리가 씩씩거리는 것이 귀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아, 진짜……”

   아니나 다를까, 버키는 그곳에서 덩치 커다란 알파한테 붙잡혀서 헤드록을 당하고 있는 스티브 로저스를 발견할 수 있었다. 자기 몸집의 반밖에 안 오는 녀석을 괴롭히는 알파가 대체 누구인진 몰라도, 아주 쓰레기 같은 놈이란 것 하난 확실했다.

   “어이, 거기 너!”

   골목 안으로 척척 걸어 들어간 버키가 크게 소리쳤다. 커다란 알파는 그를 발견하자마자 스스럼없이 스티브를 무슨 넝마 인형마냥 바닥에 툭 던져버렸다. 버키를 쏘아보던 놈은 어깨를 넓게 벌리고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주먹 휘두를 상대가 필요하냐? 그럼 나랑 한 판 하지 그래.”

   녀석을 물리치는 데는 얼굴에 주먹 한 방, 배에 한 방이면 충분했다. 버키는 놈이 꽁지가 빠지도록 도망치는 것을 확인한 다음, 몸을 돌려 땅에 엎어진 스티브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가느다란 팔 한 짝을 자기 뒷목에 둘러매면서 말했다.

   “아이고 샌님아, 그렇게 피 잔뜩 묻힌 얼굴로는 여자들 꾀기도 어렵겠다. 이제 어쩔 거야.”

   “그놈이 여자를 강제로 붙잡았어.”

   스티브가 입에 묻은 피를 손등으로 문지르며 으르렁거렸다.

   “붙잡힌 여자가 저리 비키라고 했더니, 감히 화까지 내면서 위협했단 말이야.”

   “있지, 스티브.”

   버키는 남은 빈 손으로 친구의 어깨를 부드럽게 문지르며 말했다.

   “이런 세상에서 살기에 넌 너무 아까운 사람인 것 같다.”


   아파트로 돌아오는 내내 스티브는 계속 고집을 부렸다.

   “내가 혼자 처리하게 내버려 뒀어야지!”

   “응, 그래서 처리하게 내버려 뒀잖아.”

   버키는 스티브가 계단을 올라가는 것을 도와주며 말했다.

   “덕분에 일주일은 눈이 퉁퉁 붓게 생겼고 말이야. 자, 이제 입 좀 다물어 줄래? 데이비스 부인 놀라서 깨시겠다.”

   “좋은 저녁입니다.”

   보통 같았으면 마주치기 한 마일 전부터 미리 그 부드러운 장뇌 향을 알아차렸을 터였다. 그만큼 지금 버키는 스티브에게 온 정신이 쏠려 있었다. 어쨌든, 고개를 든 버키가 이웃집 알파를 올려다보자 브록이 두 사람이 올라갈 수 있도록 계단 한쪽으로 비켜섰다. 스티브의 얼굴을 확인한 그의 눈썹이 의아하게 꿈틀거렸다. 그는 버키를 돌아보며 물었다.

   “당신 친구, 괜찮은 거요?”

   버키는 그저 웃어 넘겼다.

   “그럼요. 제가 돌볼 거니까요. 이 녀석, 자기 주먹보다 정의감이 더 큰 놈이라서 말이죠.”

   옆에서 스티브가 투덜거렸다.

   버키의 말을 들은 브록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쾌유를 빕니다. 그럼.”

   ‘쾌유를 빕니다’란 말이지. 이 광경을 보고서 이토록 아무렇지 않게 넘기는 사람은 브록이 처음이었다. 특히 지금처럼 스티브가 굉장히 시끄러운 신음을 내는데도 불평 하나 하지 않는 경우는 더더욱.

   그렇게 새 이웃은 두 사람 곁을 무심히 스쳐갔다. 그 잠깐 사이에 버키는 슬쩍 남자를 곁눈질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목깃 부분에 그을린 자국이 남아있는 것을 분명히 볼 수 있었다.



   그 다음에 브록과 다시 마주쳤을 때, 알파는 정장 위에 긴 트렌치코트를 걸치고 평소 하고 다니던 리젠트 스타일(역주3)의 머리 위에는 중절모를 쓰고 있었다. 한쪽 손에는 일반적인 트렁크보다 큰 크기의 짐 가방을 들고 있었다.

   “휴가 가시나 봐요?”

   버키가 무심하게 물었다.

   “출장이에요.”

   브록이 웃으며 대답했다. 계단을 내려가려던 그는 잠깐 멈칫하더니 뒤를 돌아봤다.

   “몇 주 동안 비울 건데, 나 없는 동안 집 좀 봐줄 수 있죠?”

   그가 윙크를 하며 덧붙였다.

   “예에. 잘 다녀오세요.”

   버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집으로 돌아왔더니 스티브는 이번에도 신문에 머리를 파묻은 채, 기사를 탐독하는 중이었다.

   “럼로우 씨가 몇 주 동안 집을 비운대.”

   겉옷을 옷걸이에 걸며 버키가 말했다.

   “그래서 대신 집 봐주기로 했어.”

   듣고 있다는 의미의 낮은 허밍이 들려왔지만, 스티브의 시선은 여전히 신문에 고정되어 있었다. 거실 소파에 털썩 앉은 버키는 뒤로 편하게 드러누웠다. 그는 초점 없이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말인즉, 그 사람은 혼자 산다는 거지. 그런 알파라면 당연히 부인이랑 애가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면 예전에 있었던 걸까? 그 남자 이혼한 것 같아, 스티브?”

   신문지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돌아오는 스티브의 어조로 봐서는 여전히 신문에 정신이 팔려 있는 게 분명했다.

   “우리가 신경 쓸 일은 아니잖아.”

   말을 들은 버키는 그저 실실 웃으며 두 손을 머리 뒤로 가져갔다.

   “에구, 우리 고지식한 로저스 씨 같으니라고.”

   그러더니 뭐가 재밌는지 혼자 킥킥거렸다.

   “맞아, 우리가 신경 쓸 일은 아니지. 그냥 궁금해서 물어봤어. 그거 알아? 거의 매일 마주치는데 두 마디 이상 말을 이어본 적이 없어. 왜 혼자 사는 거지? 일은 또 뭘 하고?”

   마침내 스티브가 신문을 접었다. 그의 입매 위에는 희미한 장난기가 어려 있었다.

   “반하기라도 한 거야, 벅?”

   그 말에 버키가 비로소 펄쩍 뛰었다. 느긋하게 풀어져 있던 표정이 깜빡거리는 스티브의 눈과 마주치자마자 사정없이 흔들렸다.

   “뭐라고?”

   “새로 온 그 이웃한테 좀 심하게 집착하고 있잖아.”

   “아니거든.”

   버키가 늘어져 있던 몸을 바로 세우며 발끈했다.

   “하지만 항상 그 사람 얘기만 하는 걸.”

   그는 격렬하게 고개를 저으며 반박했다.

   “아냐. 안 그랬어. 특별히 그 사람 얘기만 더 많이 한 것도 아니라고.”

   스티브는 아무 말 않고 미소만 지었다. 잠시 후, 그는 ‘흐음’하는 소리를 내며 다시 신문을 펼쳐들었다.


   이후 이웃집 남자가 집을 비운 그 몇 주 동안, 버키는 두 번 다시 스티브 앞에서 럼로우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계속) 



역주1) 장뇌(樟腦,Camphor): 한반도, 일본, 타이완, 베트남 등지에서 자라는 상록수인 녹나무에서 얻을 수 있는 흰색의 고체 향료. 녹나무의 둥치나 뿌리를 증류시켜 얻은 기름을 굳힌 다음, 방향/방충/약재 용도로 사용한다. 일찍이 페르시아에서는 동아시아에서 생산된 장뇌를 목재의 방충을 위한 제재 등으로 사용하였으며, 페르시아를 통해 유럽으로 전파되었다. 박하를 만들 때 향을 강화시키기 위해서 30% 가량 첨부하기도 한다. 

(출처: http://www.iranicaonline.org/articles/camphor-npers)

녹나무(Camphor) 도해
녹나무(Camphor) 도해


역주2) 해당 문장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With a sigh, he looks back at the mechanical register, numbers flipped to his total." 

여기서 mechanical register는 알약, 지폐 등의 갯수를 세는 기계식 계수기를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편의상 기록부로 번역하였다. 


역주3) 리젠트 헤어(Regent Hair): 루이 15세의 정부였던 마담 드 퐁파두르의 머리에서 유래한 헤어스타일. 따라서 퐁파두르(Pompadour) 스타일이라고도 불리운다. 18세기에 유럽 귀족 여성 사이에서 처음 유행한 이후, 몇 차례의 변화를 거듭하며 시대를 풍미했다. 기본적으로 앞머리 부분의 볼륨을 크게 넣은 다음, 뒤로 단정히 빗어 넘기는 스타일이다. 

남성의 경우, 1910년대에 런던의 젊은 신사들 사이에서 리젠트 헤어라는 명칭으로 다시 유행하기 시작했으며, 이 스타일은 1차대전기까지 유럽과 미 대륙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전후 주춤하던 리젠트 헤어의 인기는 1950년대 엘비스 프레슬리의 등장과 함께 다시 치솟았다. 그 후 디스코와 히피 열풍에 밀려 한동안 잊혀졌다가, 2010년대부터 현대적 감각을 가미한 새로운 스타일로 인기를 얻고 있다.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Pompadour_(hairstyle)#Men.27s_styles)

1950년대 엘비스 프레슬리의 리젠트 헤어.
1950년대 엘비스 프레슬리의 리젠트 헤어.


현대의 리젠트 헤어.
현대의 리젠트 헤어.



   본문의 시간적 배경이 되는 1941년~1942년에 리젠트 헤어가 실제로 미국 사회에서 어떤 문화적 위상을 지니고 있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으나, 원 저자의 뜻을 존중하여 그대로 옮겼다. 

  본문에서는 Regent Hair 대신 "a poof of hair"이라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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