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時깔色: 시대에 따른 색의 역사
때時깔色: 시대에 따른 색의 역사

요즈음, 프랑스의 역사학자이자 고문헌학자인 미셸 파스투로가 쓴 『블루: 색의 역사』를 읽고 있다. 서양 역사 속에서 시대, 장소에 따라 청색의 의미가 변화한 궤적을 좇는 책으로, 제목 그대로 '색의 역사'를 뒤좇는 책이다. '빨강을 뜨거움과 열정, 파랑을 차가움 및 차분함과 연관시키는 관습은 근대에 탄생한 현상이다'라는 도발적인 문구로 시작하는 이 책은,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부터 중세 유럽을 거쳐서 근대 유럽, 현대 미국 사회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마다 청색의 의미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살펴본다. 가령, 대쪽을 제외하면 청색을 낼 염료가 거의 없던(그마저도 탁한 회청색에 가까웠다) 고대 그리스-로마 사회에서 청색은 야만인의 색, 흐릿한 색, 천한 색이었으나, 중동 지역에서 라피스라줄리를 갈아 만든 염료가 수입되고 울트라마린 염료가 발견되면서 중세 유럽 사회의 청색은 '값비싼 색, 성모 마리아의 색, (당시 유럽에서 가장 부유했던) 프랑스 왕실의 색'으로 위상이 변하게 된다. 이후 본격적으로 산업용 기호와 픽토그램이 도입되는 근대에 이르러서 한 광고를 통해 빨강은 불, 파랑은 물이라는 이미지가 새로이 확립됐다는 것이다. 12~14세기까지만 해도 '고귀하고 성스러운 색'이었던 청색이 2차대전 전후에는 리바이스 청바지의 유행과 함께 '젊음, 활기, 반항의 색'으로 변한 것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미셸 파스투로는 '색은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개념이 아니라, 시대문화에 따라 각기 다른 의미를 획득하는 사회적 현상'이라는 주장을 내놓는다. 자연현상으로서의 색이 아닌, 사회가 인식하는 심상으로서의 색을 연구한 굉장히 흥미로운 역사서라고 할 수 있다. 


'동일한 사물이 위치한 사회에 따라 어떻게 그 의미가 변하는가'는 언제나 내 호기심을 자극하는 큰 주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겨울 국립민속박물관에서 '한국사에서 색의 역사'를 주제로 한 전시가 열린다는 광고를 보았을 때 흥분했었다. 이때 '색의 역사'란 단순히 한국 역사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색을 병렬적으로 나열,소개하는 데 지나는 것이 아니며, 그보다는 특정 색(적청백흑황)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각각 어떻게 그 의미가 변하였는지를 뜻할 것이다. <때時깔色>이라는 전시 제목에서부터 이를 암시하고 있지 않은가?  


한국에서도 이 같은 '색의 역사'를 핵심 주제로 내세운 전시가 개최된다는 점이 새삼 감격스러웠다. 미술계나 산업디자인계에서 다루는 단순한 색 현상학이 아니라, 역사학에서 다루는 통시적인 전시라는 점이 무엇보다도 흥미를 끌었다. 그렇기에 비록 규모는 작지만, 알찬 구성을 천천히 즐길 수 있는 전시였다. 이 포스트에서는 전시를 보면서 기록해두고팠던 몇 가지 내용들을 적는다.  




얇은 팸플릿이지만 넓은 지면, 선명한 색이 아름답다. 색을 다루는 전시에 색이 빠질 순 없는 법.
얇은 팸플릿이지만 넓은 지면, 선명한 색이 아름답다. 색을 다루는 전시에 색이 빠질 순 없는 법.


전시장 바닥의 전시실 안내도. 매우 직관적이다.
전시장 바닥의 전시실 안내도. 매우 직관적이다.
자유동선의 전시실 구성. 단색에서 시작해서 배색을 지나, 다색으로.
자유동선의 전시실 구성. 단색에서 시작해서 배색을 지나, 다색으로.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중앙 바닥에 붙어있는 색색의 원 그림과 화살표다. 팜플렛과 함께 비교해보니, 관림 방향을 직관적으로 표시해놓은 지도였다. 입구에는 적,청,흑,백,황 다섯 가지 단색을 배치하고, 두 색깔 전시실이 겹치는 공간에는 흑-백 적-청의 배색을, 마지막으로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넓은 전시실에 다색을 배치해 놓아서 자연스럽게 단색에서 배색으로, 배색에서 다색으로 넘어가는 구성을 취했다. 동시에 중앙 통로에서 원하는 색깔의 전시실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자유동선을 택해서 언제든지 다시 보고 싶은 전시실을 찾아갈 수 있다. 사실 전시 물품 자체보다는 규칙을 겸비한 자유동선과 그 동선을 색원으로 나타낸 아이디어에 더 감탄했다. 



다양한 자연물에서 얻은 색색의 안료들. 생각보다 다양하다.
다양한 자연물에서 얻은 색색의 안료들. 생각보다 다양하다.
치자꽃을 가루 낸 황색, 라피스라줄리를 갈아서 만든 청색 안료.
치자꽃을 가루 낸 황색, 라피스라줄리를 갈아서 만든 청색 안료.
공작석과 뇌록에서 추출한 녹색, 코치닐 유충/꼭두서니/홍화/주토 등 다양한 재료에서 추출한 적색.
공작석과 뇌록에서 추출한 녹색, 코치닐 유충/꼭두서니/홍화/주토 등 다양한 재료에서 추출한 적색.

누가 한국의 전통 색채는 한정적이라 했는가? 적색이라고 다 같은 적색이 아니며 청색이라고 다 같은 청색이 아니다. 다른 여느 지역 사람들처럼,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도 고래로부터 자연에서 채취할 수 있는 다양한 광석, 식물, 흙, 벌레에서 안료를 얻고 있었다. 화학 안료가 만들어진 근대 산업사회에는 못 미칠지 모르지만,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고 농도를 달리함으로써 기본 5색 외에도 잔가지처럼 뻗은 다양한 색채를 사용했다. 


가령, 내가 가장 사랑하는 청색의 경우, 화학 안료가 발명되기 전까지는 청색을 얻을 수 있는 자연물이 한정되어 있었음에도 다양한 출처를 강구해서 미묘한 색채차를 만들어냈다. 동서양을 통틀어서 가장 쉽게 얻을 수 있는 청색 안료였던 쪽(니람)이 출발이다. 쪽의 회색기 도는 청색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중동에서 산출되는 광석 라피스라줄리(청금석)를 갈아 만든 회회청(回回靑)도 있다. 조선 후기에는 청나라를 통해 유럽에서 생산된 양청(洋靑)을 사용하기도 했다. 양청은 흔히 울트라마린이라고 부르는 광물에서 채취한 청색 안료로서, 근대 유럽에서 합성안료 개발이 활발해지면서 처음 사용되었다. 


자연에서 가장 흔하게 채취할 수 있는 색인 적색은 그 변형은 물론, 안료의 출처도 다양했다. 동서양을 통틀어서 적색만큼 권위와 생명력, 힘의 상징으로 사랑받은 색이 또 있을까? 고대 그리스-로마에서는 쪽 특유의 흐릿한 빛깔 때문에 천시받은 청색과 달리, 적색은 일상에서나 제례에서나 상황을 막론하고 애용된 색이었다. 한국을 비롯한 동양 전통색채에서도 적색은 비슷한 위상을 누렸다. 


오늘날 딸기우유 색소의 출처로 유명한 코치닐 연지가 있다. 코치닐이라고 불리는 유충을 말린 다음 가루내서 만드는 적색안료다. 코치닐 연지의 검붉은 적색이 부담스럽다면 꼭두서니, 홍화 등의 붉은 꽃에서 안료를 추출하는 법도 있다. (꽃은 인간이 자연에서 색채를 얻을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출처 중 하나이다). 이 외에도 주토(朱土), 납(연단)에서 추출하는 방법도 사용했다. 이처럼 다양한 출처에 더해서 같은 안료라도 농도를 달리해서 사용하면 검붉은 적색부터 자주색에 가까운 적색, 복숭아색에 가까운 도화색, 연분홍색, 분홍색 등 다양한 그라데이션의 색조를 만드는 것이 가능했다. 같은 빨간색을 나타내는 용어로 착각하기 쉽지만, 적(赤)과 주(朱), 홍(紅)이 서로 다른 계통의 붉은색을 지칭한다는 사실을  당신은 알았는가?


(이 글에서는 흑색에 관한 사진은 싣지 않지만, 본 전시에서는 黑과 玄의 차이에 대해서도 세밀하게 설명해 놓았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검은색'에 대해 떠올리는 배경과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캄캄하고 먹먹한 검은색은 玄이었다.)



청색 전시실의 조선시대 청화백자 세 가지. 유수 박물관의 청화백자만큼 화려하거나 기교가 뛰어나지는 않지만, 청색과 백색의 조화가 아름답다. 
청색 전시실의 조선시대 청화백자 세 가지. 유수 박물관의 청화백자만큼 화려하거나 기교가 뛰어나지는 않지만, 청색과 백색의 조화가 아름답다. 
청화백자 연적. 전체적으로 푸르게 물들인 바탕 위에 마찬가지로 파란 안료로 산맥을 그려넣었다. 매우 아름답다.
청화백자 연적. 전체적으로 푸르게 물들인 바탕 위에 마찬가지로 파란 안료로 산맥을 그려넣었다. 매우 아름답다.
고려시대 청자 유병. 아모레 퍼시픽 박물관 소장.
고려시대 청자 유병. 아모레 퍼시픽 박물관 소장.

역사에 따라 변화한 색의 의미를 추적한다는 주제에 걸맞게, 각각의 전시실에는 유물이라고 부를 만한 옛 공예품, 생활품과 함께 현대 작가들의 작품이 함께 전시되어 있다. 유물의 경우, 민속박물관이라는 한계 때문인지 수집품이 다른 유수 박물관에 비해 다소 덜 화려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만큼 부족한 부분은 국내 타 박물관에서 대여함으로써 보충했다. 바로 윗 사진의고려시대 청자 유병이 그렇다. 둥그런 청자 합 안에 서너 개의 작은 기름병이 들어있는 이 도자기는 일종의 화장품 용기이다. 해당 전시실에는 다양한 크기의 유병이 여럿 전시되어 있었는데, 모두 아모레퍼시픽 박물관 소장품이었다. 꽤 신선했다. 


한눈에 볼 수 있듯, 청자 종류는 흙을 빚은 후에 문양을 파내고 흑토와 백토를 채워서 구운 상감청자. 



사실 해당 전시실의 고문물 중에서 가장 마음을 사로잡은 물건은 3번 청화백자 연적이다. 조선 중기에 등장해서 후기에 꽃을 피운 청화백자는 명칭 그대로 백자 위에 청색 안료로 그림을 그려넣는 방식이다. 이때 주로 사용한 청색 안료는 주로 중동에서 생산되고 중국을 거쳐 수입된 라피스라줄리(회회청)인데, 때문에 두 차례의 호란 이후 청과 무역이 중단되었던 시기에는 일시적으로 청화백자 생산 금지령이 내려진 일화도 있다. 그만큼 청색 안료 구하기가 힘들다는 뜻이며, 왕실 및 부유한 양반가에서 사용하는 귀한 물건이었다. 


이런 조선의 사정과는 다르게, 청나라에서 청화백자는 일상생활 곳곳에서 사용되는 친숙한 도자류인 동시에 중국의 주요 수출품 중 하나를 차지하는 톡톡한 축부 수단이었다. 청색 안료 뿐만 아니라 분홍색, 녹색, 노란색, 보라색 등의 수백가지 안료를 사용해서 그림을 그려넣은 백자류 도자기는 17세기를 기점으로 청나라 곳곳에서 생산되어 네덜란드 상인의 손을 거친 다음 유럽 곳곳의 왕실과 귀족에게 공급되었다. 스페인, 프랑스, 합스부르크 등 17~18세기 유럽의 내로라 하는 왕가에 납품된 도자기 중에 중국제 청화백자가 얼마나 많았는지지는 해당 국가의 박물관 및 유적지를 돌아보면 질릴 정도로 체감할 수 있다. 이렇게 중국제 청화백자(라고 하지만 기실 분홍색, 보라색, 노란색, 초록색 등의 안료를 모두 동원해서 그렸다)가 유럽 중상류층 사회에서 필수품으로 자리잡자, 네덜란드에서는 아예 독자적인 도자기 생산 공장을 세운 다음 중국의 청화백자 기술 및 화풍을 모방해서 자체 도자기를 생산하는 경지에 이른다. 그리고 이렇게 생산된 네덜란드 도자기가 역으로 중국 고객을 겨냥해서 역수출되는 경우도 있었다. 네덜란드에서 생산된 중국인이 그려진 도자기, 중국에서 생산된 성경 일화가 그려진 도자기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흥미진진하다. 도자기만큼 근대 동서양 교역 실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화가 또 있을까?



현대 작품. 물방울을 형상화한 청자.
현대 작품. 물방울을 형상화한 청자.

청색 전시실에 있던 물방울을 형상화한 청자 작품이다. 전시실 중앙에 놓인 이 도자기는 균일한 터키색 색채가 일품이다. 그러나 고질적인 청색의 문제 탓에, 항상 사진으로 촬영하면 고유의 선명한 청색이 날아가버린 것이 아쉽다. 실물로 직접 볼 때 그 색채의 아름다움에 더욱 경탄하게 되는 청색. 왜 다른 색들과 달리, 청색만은 디지털기기로 그 빛깔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는 걸까? 아무리 정교하고 고도의 기술을 집약한 사진기라도 청색만큼은 온전히 잡아내지 못한다. 보정 과정을 거치더라도 타 색채보다 그 방법이 난해하고 결과물도 썩 만족스럽지 못하다. 눈을 찌를듯 선명한 푸른색을 애용한 고흐의 수많은 그림들이 그렇다. 오르세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별이 빛나는 밤>의 밝은 청색은 어떤 사진기로도 인간의 눈이 감지하는 빛깔 그대로를 포착하지 못한다.

가장 아름다운 색을 만나기 위해서는 험난한 과정을 거치라는, 까탈스런 자연의 시험인가보다. 



1930년대 조선총독부에 의해 발행된 색복(사실상 흑의) 착의령. 
1930년대 조선총독부에 의해 발행된 색복(사실상 흑의) 착의령. 

전시에는 적, 청 외에도 다양한 오방색과 배색, 다색 관련 유물이 전시되어 있지만, 다소 편향적으로 관람한 탓에 다른 사진은 많이 찍지 않았다. 다만 흑색 전시실에 전시된 1930년대의 흑의 착의에 관해서는 관심이 일어서 몇 가지 문서를 찍어놓았다. 조선시기 내내 계층을 막론하고 일상복의 주요 색상이 흰색, 혹은 직물에 아무 염색도 가하지 않은 자연색(소색)이었다는 점은 이미 유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조선총독부는 경제 성장과 절약을 이유로 내세워서 백의 착의를 금지하고 새까맣게 물들인 흑의 착의령을 내린다. 구체적으로 흑색 옷 착용과 경제력 향상 간에 어떤 인과관계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기껏해야 '백의는 자주 세탁해야 하니까 인력과 물 낭비가 커서 그랬나' 추측해볼 뿐이다. 


공고문에서 눈에 띄는 점은 단순히 흑의 착용을 권고한 것이 아니라, 백의 착용 자체를 금지했다는 점이다. 

최상단의 "색의를 착용하시오", 최하단의 "백의는 금물이오" 부분이 그렇다. 또한 염색 방법은 각자의 처지와 형편에 따르되, "남녀노유 전부"가 착용해야 하며 염색하지 않은 삼베옷을 입던 상중에도 "색복을 착용하고 상장을 달 것"이라고 명령한 점이 눈에 띈다. 어떤 이유에서인진 몰라도, 조선총독부 입장에서는 나름 강경하게 색복 착의령을 시행하고 싶었던 것 같다. 



색복 착용을 권고하는 홍보물.
색복 착용을 권고하는 홍보물.

영일군에서 발행한 색복 착용 권고문이다. 제목은 <흑의를 입고 백의는 폐지합시다>. 

흑의 착욕이야말로 "우리의 생활 개선에 급선무"이며, "흑의는 우리의 경제상이던지 활동력을 정진케 한다"라는 부분이 눈에 띈다. "백의는 우리 조선인만 입는 고로 세계에서 백의인의 대명사가 되었다"는 비판이 재미있다. 

1930년대 물감 광고.
1930년대 물감 광고.

이렇게 조선총독부에 의해서 흑백 착용이 시행되면서, 국산 물감 회사들도 홍보에 박차를 가했다. 물감이라고는 부르지만, 광고 내용을 읽어보면 사실상 염료에 가까운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도 조선총독부가 광고한 "색의를 입자, 그리하여 우리의 경제를 빛나게 하자"는 문구가 되풀이 되고 있다. 

개인적으로 웃음이 나는 부분은 하단부의 "포목상, 잡화상, 백화점 할 것 업시 다! 팔고 있습니다, (중략) 절대로 에누리는 엄슴니다" 라는 문장이다. 중간의 느낌표가 어쩐지 귀엽다. 



역시, 색은 언제나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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