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쓰는가?' 


위 질문에 대해서 사무엘 베케트는 "그것밖에 잘 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카프카는 "내 안의 심장이 시키기 때문에"라고 답했다. 진솔한 아우라가 넘치는 거장들의 답변 사이에 조심스럽게 내 이유를 추가해본다. "이대로 기억을 흘려보낼 수 없다는, 기록을 향한 강한 집념 때문에". 


나는 기억력이 나쁜 편인데, 그런 탓에 습관적으로 기록하는 버릇이 들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강렬하게 끌리는 대상이 생기면 일단 어떻게든 그 순간을 영원히 붙잡아 두고싶은 애타는 욕구가 먼저 떠오른다. 그래서 처음 여행을 다닐 때는 내가 본 아름다운 사진 속에 남겨두느라 용을 쓰기도 했더랬다. 그러나 아무리 이리저리 수를 써봐도 내 시신경이 인식하는 색감과 빛을 100% 똑같이 저장할 수 있는 매체는 없더라. 나중에는 재현율 100%라는 불가능한 목표를 포기하는 대신, 일기와 공책에 그 순간 느낀 감정이나 생각을 적어두는 것으로 기록하고픈 욕구를 대체했다. 어떠한 가공이나 미화도 없이, 특정 순간에 내가 인식한 대상의 일면을 영원히 포착해두고픈 욕심. 그래서 그리워질 때 언제라도 다시 꺼내 보고픈 욕심. 어떻게 보면 참 오만한 욕심이다. 


대체 기억이란 게 무엇이길래 그렇게 집착할까? 몇 년 동안 곰곰이 생각을 해봤지만, 아직 해답은 구하지 못했다. 다만 인간의 여러 본능 중에는 분명 '기록하려는 욕구'도 있을 거라고 어렴풋이 짐작해본다. 인류의 유전자 속에 기록을 향한 집념이 있기에 텍스트가 만들어졌고, 그림과, 사진과, 기보법과, 도서관의 서가를 채우는 수만의 장서들이 제작되지 않았나? 이 욕심은 때때로 무의식적으로 발동되어서, 어떤 것을 보자마자 자동적으로 카메라와 노트부터 들고 보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기록한 것을 실제로 다시 꺼내볼지 아닐지는 미지수다. 다만 책과, 사진과, 그림과, 악보와, 그밖의 모든 텍스트를 등장케 한,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본성을 따라서 기록할 뿐이다. 


이 글도 마찬가지다. 12월 겨울 어느 날에 혼자 광화문을 돌아다니다가 어느 미술관의 표를 샀다. 잘 알지 못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전시였을지라도 나름 마음을 스쳐간 생각들이 있었다. 얼개도, 일관성도 결여한 글이지만 어떻게든 기록으로 남겨두려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아무리 단순해 보이더라도, 생각과 느낌을 기록하는 작업은 그 자체로 자기 정체성을 확증하는 통로가 된다. 




전시장 초입 판넬: 생전 훈데르트바서의 인터뷰 중에서. 
전시장 초입 판넬: 생전 훈데르트바서의 인터뷰 중에서. 

전시장 입구에 걸려있는 이 판넬의 글귀는 미술관에 걸린 어떤 그림이나 모형들보다도 마음에 더 깊은 파동을 남겼다. 작가의 환경주의 사상에는 공감이 잘 안 가더라도, 죽어서 자연 속에 묻히고 싶다는 생각은 십분 공감할 수 있었다. 아마 유독 외로움을 심하게 탈 때 봐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고독이 심할 때면 꼭 사람이 아니더라도, 자연속에 파묻히고 싶은 마음이 일기 마련이니까. 부식토가 되어서 행복한 죽은 이들의 정원에 다시 태어나고 싶다고 말한 작가는 2012년, 자신이 기른 밤나무 나무 아래 묻혔다. 그가 앉아있던 자리에 또 다른 나무가 자란 풍경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저는 부엽토가 되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관 없이 나체로 아오 테이어 로아의 제 땅에 

제가 직접 심은 밤나무 아래 묻히고 싶습니다. 

(...)

죽은 이는 그의 무덤 위에, 그리고 그를 통해 자라나는 나무의 형태로

환생할 권리가 있습니다. 

이로써 영원한 삶을 사는 이들의 신성한 숲이 탄생합니다.

행복한 죽은 이들의 정원


직접 기른 밤나무 아래에서.
직접 기른 밤나무 아래에서.
그리고 나무가 되다.
그리고 나무가 되다.




내보내기(The Expulsion, 1967), 석판화
내보내기(The Expulsion, 1967), 석판화

본래 훈데르트바서는 곡선과 자연에서 따온 모티프를 사용하는, 환경주의 건축가로 유명하다. 전시를 보러 가기 전에 내가 알고 있던 그의 프로필도 '직선과 효율성을 강조하는 모더니즘 건축에 반대하는, 자연주의 건축가' 정도였다. 그런데 실제로 전시에 가보니 더 눈길을 끄는 것은 건축 모형이 아닌, 그가 직접 제작한 수많은 동판화와 석판화, 실크스크린이었다. 불규칙하게 뻗어가는 곡선과 아동의 그림처럼 원색적인 색채들은 세밀하게 파낸 동판화와 석판화에서 더 빛을 발했다. 제목을 모를 때는 주제를 몰라서 고민하고, 제목을 알고 나서는 어지러운 형태 속에서 주제에 부합하는 형태를 찾아내느라 골머리를 앓았다. 끝내 의미를 모르고 지나간 그림이 더 많았으나, 강렬하면서도 어딘지 온화함이 느껴지는 원색의 색채만은 전시실을 나온 뒤에도 오랜 잔상을 남겼다.  


    

도시 속의 도시(Ville en Ville, 1979), 석판화
도시 속의 도시(Ville en Ville, 1979), 석판화

우키요에나 알퐁스 무하의 판화를 볼 때부터 익히 느낀 점이지만, 판화-그 중에서도 석판화와 동판화는 굉장하다. 컴퓨터 프로그램도 없던 시절에 어떻게 수작업으로 이토록 세밀하고 정교한 선을 새길 수 있었을까? 그렇게 원판을 제작한 후에는 마찬가지로 절묘한 다단계의 염색을 거쳐서 자연스러운 그라데이션을 찍어낸다. 차가운 금속판이 만들어낸 색채는 붓으로 그린 수채화만큼이나 맑고 자연스럽다. 이처럼 자연을 본뜬 그라데이션을 만들기까지 몇 번의 염색 과정을 거쳐야 했을까? 그 지난한 노고가 경탄스럽다. 



밤의 열차(Train de Nuit, 1955-1978), 석판화, Var 1. 
밤의 열차(Train de Nuit, 1955-1978), 석판화, Var 1. 

훈데르트바서는 판화라는 대량생산 매체를 사용해서 예술의 유일성을 성취한 영리한 작가다. 판화란 본래 원판 위에 밑그림을 그리고 나면 몇 번이고 같은 패턴을 재사용할 수 있는 효율적인 인쇄 방법이다. 그렇다면 우키요에나 아르누보 시대의 인쇄 예술가들처럼 같은 배색을 사용한 그림을 연쇄적으로 찍어낼 수도 있었을 텐데, 그는 자신이 제작한 판본마다 배색을 달리하거나 다양한 부가 재료를 사용함으로써 단 한 가지도 겹치는 판본이 없는 유일한 판화를 제작했다. 그렇기 때문에 훈데르트바서의 판화에는 반드시 판본 번호와 사용한 색채, 재료가 자세하게 명시되어 있는데, 이게 참 재미있다. 대량생산을 위해 발명된 수단으로 순수예술의 특징인 유일성을 획득하다니, 어찌 흥미로운 모순이 아닐 수 있으랴. 


 

초원 위를 걸을 때는 조심하세요(1976), 동판화
초원 위를 걸을 때는 조심하세요(1976), 동판화
초원 위를 걸을 때는 조심하세요 전문
초원 위를 걸을 때는 조심하세요 전문

훈데르트바서의 동판화 역시 은은한 그라데이션과 동화 삽화 같은 모호한 형태가 인상적이다. 굳이 차이점을 꼽자면, 석판화보다 더 세밀한 선이 돋보인다는 점 정도. 제목만 보고서는 쉽게 주제를 유추하기 어려운 은유도 여전하다. 

처음 <초원 위를 걸을 때는 조심하세요(1976)>라는 제목을 봤을 때는, 초원에 사는 괴물을 조심하라는 뜻인 줄 알았다. 언덕 아래 있는 길게 찢어진 눈이 모로 보나 땅 속에 숨어 있는 괴물 같아 보여서였다. 그런데 막상 그림 옆에 걸린 시를 보고 나니, 조심하라는 대상은 초원이 아니라 초원을 밟는 우리의 발이었다. "풀잎이 꺾이지 않도록, 초원을 걸을 때는 조심하세요." 사람 상상이라는 게 참 우습다. 



음울한 보라색이 밝은 노랑을 만나서 묘한 따스함을 만든다. 비 내리는 교회. 동판화.
음울한 보라색이 밝은 노랑을 만나서 묘한 따스함을 만든다. 비 내리는 교회. 동판화.
연분홍빛, 노란빛 원이 사탕일까?
연분홍빛, 노란빛 원이 사탕일까?
아니다. 나무였다. <나무는 아름다운 꽃Les Arbres Sont Les Fleurs du Bien>, 동판화, 1982.
아니다. 나무였다. <나무는 아름다운 꽃Les Arbres Sont Les Fleurs du Bien>, 동판화, 1982.
홍에서 녹으로. 수채화처럼 번지는 그라데이션.
홍에서 녹으로. 수채화처럼 번지는 그라데이션.



사실상 전시의 2/3를 차지하는 기나긴 판화들의 방을 지나고 난 후에야 비로소 그의 본업인 환경주의 건축을 만났다. 풍경과 작은 샘물을 조성해서 물소리가 졸졸 흐르는 전시실 가운데는 그가 설계한 기기묘묘한 모형들이 진열돼 있었다. 실제로 사람이 살 수 있기나 할지, 동화 속 집처럼 어지러운 환상으로 가득한 모형이 눈을 어지럽힌다. 집들은 하나같이 판화만큼이나 밝은 색을 발하고 있었다. 


버려진 발전소 건물을 개조한 공공주택. 지층을 형상화한 독특한 형태와 색채.
버려진 발전소 건물을 개조한 공공주택. 지층을 형상화한 독특한 형태와 색채.
지층형 건물 설계도. 구상 대부분이 모형에 그대로 구현돼 있다.
지층형 건물 설계도. 구상 대부분이 모형에 그대로 구현돼 있다.

자연물에서 형태 모티프와 배색을 따왔다는 점에서 훈데르트바서의 건축은 가우디의 건축과 비슷하다. 카탈루냐 몬세라트 지역의 솔방울과 암반에서 기본형을 빌려온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첨탑처럼, 버려진 발전소를 개조해서 만든 공공주택은 켜켜이 쌓인 지층을 닮아있다. 폐공장이라는 재료와 지층이라는 소재, 언뜻 텁텁하고 흙내 나는 조화일 것 같은데, 막상 완성물은 따스한 기운을 풍긴다. 분홍, 노랑, 다홍의 색들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패스트리 같은 따스함. 그 벽 위를 정원의 나무줄기가 타고 오르면서 구불구불한 정취를 그린다. 곡선이 부리는 마법. 




곡선에 천착하는 훈데르트바서의 특징은 현대건축의 직선 선호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된다. 20세기 초, 모더니즘의 홍수 속에서 실용성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발흥한 현대건축은 직선과 단순한 장식을 내세웠다. 딱 떨어지는 직선과 어떤 모양으로든 조립하기 쉬운 블록 형태야말로 다수 대중에게 평균 이상의 거주 공간을 제공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건축 양식이며, 20세기의 대부분을 휩쓴 모더니즘 건축은 한 마디로 현대건축의 눈부신 승리였다. 그런데 세기 후반에 나타난 이 아마추어 건축가가 직선 위에 세워진 모더니즘 건축을 '메마르며 비정하다'고 비판하면서 그동안 도시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던 곡선을 다시 한 번 꺼내든다. 확실히 자연을 지배하는 선은 곡선이다. 그는 지난 한 세기 동안 선배 예술가들이 이룩한 단순성과 직선의 가치를 외면하는 대신, 도시 한 가운데로 자연을 끌어들였다. 



내 팔이 닿는 거리 모두가 나의 반영.
내 팔이 닿는 거리 모두가 나의 반영.

직선이 만들어내는 구획화를 거부하고, 곡선과 무질서의 가치를 다시 한 번 끌어들이려고 시도한 훈데르트바서의 노력은 '곰팡이 성명서'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서랍처럼 차곡차곡 세들어 사는 아파트 삶일지라도, 창문 만큼은 온전히 나의 공간이라는 자기발악적인 주장. 창을 열고 손을 뻗어, 팔이 닿는 곳까지 내가 원하는대로 꾸밀 자유가 있다던 그의 외침이 어쩐지 기억에 남는다. 똑같은 벽, 똑같은 페인트, 똑같은 창틀, 그 가운데 어떻게든 '내가 여기 살아있다'고 외치는 소리. 그 소리가 들린다. 



아파트 세입자는 자신의 창문 밖으로 팔을 뻫어 

닿는 만큼 칠을 벗겨 내고 긴 붓으로 페인트칠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거리를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그 창문 안에, 표준화된 감옥에 갇혀 

노예처럼 살고 있는 옆집 사람과는 다른

누군가가 살고 있다는 것을 알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게, 반평생 나무와 능선과 빗물의 곡선을 그리며 산 건축가는, 부엽토 아래서 자고 있을까.  



<눈구멍 하우스>, 1974
<눈구멍 하우스>, 1974
주택 단지 내 주유소.
주택 단지 내 주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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