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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로 방문한 뉴욕은 여전히 친숙해지지 않는 도시였다. 격자로 나뉜 거리, 높이 솟은 빌딩들, 그 사이로 바늘 틈처럼 길고 가느다랗게 보이는 하늘. 너무 커서 도무지 '내 자리'를 찾기 어려운 곳. 여행은 본래 이방인이 되기 위해 떠나는 것이라지만, 마음 편히 앉아서 쉴 공간이 부족하다는 사실은 역시 외롭다. 어떤 사람들은 도시적 삶의 완벽한 견본인 이곳에서 몇 달씩 머무르면서 숨겨진 곳도 탐험하고 작은 거리 하나까지 만끽하기도 하던데, 왜 나는 이리 낯선지 모를 일이다. 짐을 푼 직후 아직 피곤한 상태였을 때는 '깊이 없는 도시'라고 생각하면서 살짝 경비를 아쉬워했던 기억도 있다. 

   출발하기 전에 미리 독서를 통해서 나름 환상을 채우고 방문한 밤의 타임스퀘어에서마저 실망했을 때, 처음으로 뉴욕 맨해튼에서 행복한 곳을 만났다. 엘드리지 가에 위치한 유대교 회당이었다. 소위 '부촌'으로 불리는 5번가의 웅장하고 새하얀 임마누엘 회당(E-Manuel Temple)에 비하면 작고 평범한 외관이다. 여행 사이트를 구경하다가 끌려서 오긴 했는데, 다닥다닥 붙은 건물 사이에 솟은 전면 파사드는 그리 높지도 않고 새하얗지도 않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면서도 전부 둘러보는 데 30분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본당으로 올라가기 전까지는. 





   본당으로 올라가자마자 보이는, 정면에 뚫린 푸른 스테인드 글라스를 마주하는 순간 불만은 사라졌다. 꽤 화려한 예단이며 꽃 모양 조명도 바다처럼 파란 빛을 투과시키는 커다란 창 아래서는 색이 바랬다. 처음 이곳으로 발을 옮기게 한 어느 여행자의 사진보다 짙고 선명한 파랑, 파랑, 파랑. 30분으로 끝내려 했던 여정은 장장 세 시간으로 늘어났다. 빈 회중석에 앉아서 하염없이 창의 물결을 올려다 보고 있으면 어느새 시간도 파도처럼 밀려왔다 다시 흘러갔다. 



   런던 국회의사당에서 처음 본 장미창 이후로 참 많은 스테인드 글라스를 보러 다녔다. 가끔은 오직 스테인드 글라스만을 노리고 떠난 경우도 있다. 단 한 가지 색으로만 장식한 빛 바랜 중세의 창부터 교회 벽을 캔버스 삼아 서사시를 그린 무하의 창까지. 그런데 그 중에 이런 창도 있었나. 이 창은 분명 젊은 창이다. 아니나 다를까, 근 반세기 동안 폐허로 버려져 있던 회당을 다시 복원하면서 그 마무리 단계로 2010년에 새로 공모한 디자인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이제 만 여섯 해를 꽉 채운 셈이다. 

   그렇지만 나이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앞으로 또 여건이 닿아줄 때마다 얼마나 많은 유리창을 찾아 다닐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오래된 유서 깊은 창에서도 이 창의 빛을 발견하진 못할 것 같다. 파란 물결 사이사이 노란 별이 떠 있는 회화 같은 창. 바다와 하늘이 혼동되기 시작한다. 



작은 친구.
작은 친구.
검은 공동 위에 매달린 파란 진자. 그 뒤로 흐릿하고 높은 아치가 가물거렸다.
검은 공동 위에 매달린 파란 진자. 그 뒤로 흐릿하고 높은 아치가 가물거렸다.

 

   추라고 하니, 하나 더 떠오르는 사진이 있다. 천장이 뚫린 돔과 그 아래 매달린 커다란 전등, 그리고 그 둘을 연결하는 쇠로 된 매듭줄이 푸코의 진자처럼 늘어져 있다. 에코의 책에서 카소봉이 하루 종일 관찰한 세계의 진자가 이런 모양이었을까. 좌우로 진동하지는 않지만, 하늘의 고정점으로 뻗어있다는 점만은 푸코의 추와 똑같다. 단 하나의, 불변하는 고정점을 향해 뻗은 줄.  



 

  둥근 파도가 회오리를 둘러싼 모양의 스테인드 글라스가 가장 유명하긴 하지만, 엘드리지 회당에 있는 유리창이 이 뿐만은 아니다. 2층으로 가는 좁은 계단, 회중석 끄트머리에 숨어 있는 작은 창문, 건물 양 측면의 기다란 장식창, 그리고 EXIT 표지판이 붙은 비상구에도, 다윗의 별이나 동그란 원형의 문양은 어디에나 있었다. 서유럽 기독교회의 문양도 아니고, 그렇다고 낯익은 유대의 문양도 아닌, 겹겹이 꼬인 매듭 문양은 어디서 온 것인지 모르겠다. 기원이 어디든 어떠랴. 묽게 푼 물감처럼 섞여 드는 색색의 빛이 있는데. 



정교한 매듭,
정교한 매듭,
그리고 매듭.
그리고 매듭.
빛의 삼원.
빛의 삼원.


어느 복도의 장미창.
어느 복도의 장미창.





   사실 내가 그토록 스테인드 글라스라는 장식 양식에 끌리는 이유를 비로소 알게 된 것이 이 엘드리지 회당에서였다. 어두운 복도나 좁은 계단 틈에 숨은 스테인드 글라스가 자연스럽게 주변 사물을 액자화 시키면서 한 폭의 정제된 정경을 만들어낸다는 점이야 오래전부터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교회 건축이라는 맥락을 떠나 스테인드 글라스 자체가 갖는 매력에 관해서는 오랫동안 그 이유를 모르고 그저 좇아다니기만 했는데, 2층 회중석 어느 판넬 앞에 붙은 설명에서 그 이유를 비로소 발견했다. 스테인드 글라스의 빛은 확실히 특별하다. 평소에는 볼 수 없는 다색 빛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 빛의 종류를 가려서 투과시키기 때문에 특별하다. 

   이곳 엘드리지 회당을 포함해서 대부분의 서구 종교 건축물은 단단하고 차가운 석재를 경계로 외부 세계와 차단되는 구조다. 일단 성소 안으로 들어가고 나면 바깥 세계와 교회 안을 이어주는 유일한 매개체는 유리창을 통과해서 들어오는 빛 뿐이다. 그런데 이때 투명한 창 대신 스테인드 글라스를 달면 건물 내부로는 두텁게 칠한 물감에 의해서 변형되고 선별 된 빛깔만 들어오게 된다. 하얀 유리창을 달 경우에 필연적으로 목격할 수 밖에 없는 현실 세계의 번잡함과 소란이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아마 동양의 발이 하는 역할도 비슷할 테다. 

   그렇기 때문에 색 유리창을 단 건물은 "스테인드 글라스를 통해서 빛이 들어오는 동시에 (...) 바깥 세상의 번잡함과 고통을 잊게 한다." 스테인드 글라스를 통해서 접하는 빛은 여전히 세상과 이어주는 빛이되, 바깥 세상의 괴로움은 걸러낸 빛이다. 세상에 지쳐 도망치려는 사람, 그러나 완전한 고독 속으로 은둔하기엔 차마 용기가 나지 않는 사람. 망설이는 망명자에게 스테인드 글라스는 완벽한 도피처다. 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서 세상으로부터 멀어질 장소가 생기며, 그곳에서 나를 바깥과 이어주는 것은 오로지 빛과 색 뿐이다. 그렇게 형성된 장소에서 '세상의 소란은 잊혀지고 오직 빛만이 찾아 든다.' 


타협자를 위한 정적의 장소. 







빛 01
빛 01


빛 02
빛 02


빛 03
빛 03



빛 04
빛 04







액자가 된 계단과 복도.
액자가 된 계단과 복도.



2층 계단에서.
2층 계단에서.



회중석에서.
회중석에서.



창과 천장: 브룩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
창과 천장: 브룩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






여기부터는 B컷. 




동측 장미창 전경
동측 장미창 전경



궁륭.
궁륭.



궁륭 세부. 기둥을 타고 오르는 매듭 모양에서 무슬림 양식이 엿보인다.
궁륭 세부. 기둥을 타고 오르는 매듭 모양에서 무슬림 양식이 엿보인다.




양초를 사용하던 회당에도 이젠 전기가 들어온다.
양초를 사용하던 회당에도 이젠 전기가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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