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그대로, 취미 번역을 위해 번역의 문화사를 읽어보았다. 사실 책 소개글에는 번역의 문화사라고 쓰여 있었지만, 역사책이라기보단 언어와 번역 일반에 관한 흥미로운 인문서에 더 가까웠다. 언어학에 문외한인 사람이 읽으려다 보니까 이해가 어려운 부분도 많고 진도가 더딘 부분도 잦았다. 그중에서 간신히 이해한, 기록해놓고 싶은 내용을 발췌해서 요약한다. 





덧) 제목의 '바벨 피시'는 <우주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에 나오는 꿈의 동시통역기다. 노란 물고기가 귓속에서 여러 언어를 즉시 통역해준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뤄지는 동시통역은 이 책의 24장에서 길게 서술한 것처럼, 인간의 뇌를 극한으로 소모하며 매우 고된 작업이었다... 





1. 바벨 신화 깨트리기: 원시 언어는 단일어 세계였다? 


'본래 태초의 인간은 하나의 언어를 사용했으나, 벌을 받아 민족마다 서로 다른 언어를 쓰게 되었다'는 바벨 신화는 오랫동안 서구 언어학의 기본 가정이었다. 인도유럽어 연구를 필두로 해서 세계 언어의 공통 조상을 찾으려는 어족 연구 역시 그 사례다.  이처럼 19세기에 서구가 식민지 언어와 유럽어의 관계를 연구하기 시작한 이래로, 인류 언어의 발전 모형은 종종 '단일어에서 다양화 모형'으로 상상되어 왔다. 


그러나 저자는 영장류 무리의 몸짓 언어 및 발화 시 동반되는 제스쳐 등을 근거로 들면서 인류의 언어는 처음부터 다양화된 형태였을 것이라고 추론한다. 동물이 일정한 규모로 구성된 무리 내에서 공통 행위(이 고르기, 그루밍)를 통해 소속을 표시하고 정체성을 나타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원시 인류 역시 무리마다 다른 음성(언어)을 냄으로써 '나는 너와 같지 않다', '나는 너와 다른 무리 소속이다' 따위를 알렸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따라서 언어는 처음 고안되었을 때부터 계층, 출신, 지위를 드러내는 동시에 자기 정체성을 내세우는 "차별화 수단"으로 이해될 수 있다. 


원시 언어에 관한 위의 해석은 인류 언어의 방향이 '단일어에서 점차 다양화되는 모형'이 아니라 '태초에도 다양했으며 지금도 다양한' 모형으로 전개되어 왔음을 암시한다. 상류에서 하나였던 폭포수가 구렁, 계곡 따위를 지나면서 여러 갈래의 시내로 갈라지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서로 다른 지형 위에서 서로 다른 물줄기가 각자 흘렀으리라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영어가 중개 언어로 격상되면서 점차 각 언어가 유사해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으나, 저자는 그렇다고 영어가 다른 물줄기를 모조리 먹어 치우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언어란 "차별화라는 원시적 기제의 결과물"인 만큼, 최소한 자기 집단의 정체성을 경고할 수 있는 수준의 차별성은 유지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때때로 한 집단이 다른 집단의 개인과 교역이나 전쟁을 할 필요가 발생했을 때 바로 번역이 등장했다. 즉, 번역은 인간이 다양한 언어를 사용했던 바로 그때, 바벨 이전 시대부터 존재했던 활동이다. 


덧) 그렇다면 저자는 무엇을 근거로 원시 언어가 단일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가?  

-> '단일한 원시어'를 상상하기 위해서는 모든 언어 속에 일말의 공통적 요소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바벨 신화를 지지하는 이론들에서는 대개 모든 언어는 문법(규칙)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그 공통요소로 지적한다. 

그러나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모든 언어에 문법이 있는 것은 맞으나, 언어마다 그 형태가 상이할 정도로 다르다. 관사의 유무, 성별 및 단복수 구분, 시제 유무, 심지어 방향을 나타내는 규칙까지 언어마다 다르다. (폴리네시아의 한 언어에서는 왼쪽/오른쪽 개념 대신 화자를 중심으로 동, 서, 남, 북을 구분하는 개념만 존재한다) 

게다가 문법은 가변적이다. 같은 언어라고 해도 구어 생활에서는 개인마다 문법을 파괴하기도 하고 변형하기도 한다. 문법은 구성원이 사용하는 방식에 따라 얼마든지 유동적이다. 이렇게 가변적인 문법을 언어 공통성의 근거로 삼기는 어렵다. 




2. 직역이 좋은 번역이다?: 직역이라는 허구


직역 대 의역 논란에 대해서 저자는 다음의 단호한 결론을 내린다. "직역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아니라 직역은 번역이 아니라는 것" (옥타비오 파스를 인용). 


직역(literal translation)의 의미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자면, 출발어의 단어 하나하나에 상응하는 도착어 단어를 찾아서 똑같은 순서로 나열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영어-한국어처럼 문장 구성의 순서가 전혀 일치하지 않을 경우에, 출발어의 순서를 따라서 단어를 똑같이 나열하는 것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 같은 일대일 대응의 무용함은 영어-프랑스어처럼 비교적 유사한 서유럽어에서도 관찰할 수 있다. 저자는 마크 트웨인이 자기 책의 프랑스어본을 조롱하려는 의도에서 프랑스어본을 다시 영어로 역번역한 사례를 든다. 마크 트웨인이 프랑스어본에 나열된 단어 순서를 그대로 따라서 영어로 역번역한 결과물을 보면, 원래 영어본과는 전혀 다른 결과물이 되어버린다. (이건 직접 영어 원본-프랑스어본-영어 역번역본 비교해놓은 것을 봐야 한다!) 구글 번역기에서 한국어->영어->한국어로 재번역 할 때 왜곡된 문장이 나오는 것과 같은 이치다. 

번역이란 '의미의 번역, 출발어를 모르는 사람도 텍스트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행위'라는 점을 고려할 때, 출발어 순서에 따라서 단어만 나열하는 직역은 번역이라고 할 수 없다. 이 같은 '직역'은 외국어를 학습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도구 정도로 역할이 국한된다. 


"말하자면 직역이라고 말할 때 그것이 진짜로 의미하는 것은 도착어에 적합한 문법 형태로 의미를 보존하는 번역을 말하는 것이다. 직역 따위는 없다는 옥타비오 파스의 말은 옳았다. 그냥 번역만 있을 뿐이다."  결국 사람들이 말하는 '직역'이란 '도착어 문법에 맞게 원문을 세심하고 꼼꼼하게 옮긴 번역'을 가리킨다. 모든 번역은 의역(의미를 의미로 번역하기)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3. 번역에는 오차가 있으면 안 될까? 

"번역은 말하자면 유화로 그린 초상화다. 화가는 초상화 속 인물에 진주 귀걸이를 달거나 볼을 더 발그레하게 하거나, 구렛나루에 난 새치를 미처 그리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 눈에는 실제 인물을 꼭 닮은 그림으로 보인다." 



4. 100% 같은 번역은 없다: 미뇽 실험


"100명의 유능한 번역자들에게 한 페이지를 번역하라고 했을 때, 똑같은 번역이 하나라도 나올 확률은 0에 가깝다." 이는 번역이 일대일로 대응하는 암호 해독이 아니기 때문이다. 코드마다 상응하는 의미가 정해진 암호해독과 달리, 현실에서 쓰는 언어는 사람마다 서로 다른 기억 저장소에서 꺼내 쓰는 형태에 가깝다. 새로운 어구를 학습할 때마다 사람은 그것을 기억해 두었다가 훗날 필요해질 때 다시 저장소에서 꺼내 쓴다. 저마다 다른 100인은 저마다 다른 100개의 저장소를 갖고 있기 때문에, 동일한 원문에 대해서 100개의 서로 다른 번역물이 나올 수밖에 없다. 


같은 이유로, 구글의 기계번역이 성공한 이유는 이전 세대 개발자들과 달리, 번역을 일대일 대응의 암호 해독이 아닌 필요에 따라 꺼내 쓰는 기억 저장소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구글 번역은 (인간이 작성한) 방대한 기존 번역물을 데이터베이스로 삼아서 주어진 과제에 가장 적절한 번역물을 '검색', '통계', '골라낸다'. 즉, "구글 번역은 기존에 작성된 방대한 양의 번역문이 없으면 불가능"하며, 이때 기존 번역물의 규모는 적절한 문장을 골라낼 수 있을 만큼의 규모가 보장되어야 한다. "따라서 구글 번역은 인간 번역자들이 수백만 시간 공을 들여 만들어낸 기존 번역물에 의존하는 시스템이다." 

인간이 만든 기존 번역물 데이터에 의존하기 때문에, 구글 번역기가 주된 출발어(영어)와 기타 언어 사이의 번역은 수월하게 해내지만, 이디쉬어-힌디어처럼 기존에 해놓은 번역물이 적은 언어 간 번역의 경우, 번역의 정확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영어->이디쉬어, 영어->힌디어 간의 번역물은 많다는 점을 이용해서 영어를 매개로 하는 중역을 거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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