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의 발단.
모든 일의 발단.




부잣집 서생원 찰스가 어떻게 기지와 아량으로 곳간을 지켜냈는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옛날옛날 한 옛날, 서생원 마을에 찰스라는 이름의 쥐가 살았습니다. 서생원 마을의 생쥐들은 농사짓는 법을 깨우친 문명화된 새앙쥐들이었기 때문에 다른 들쥐처럼 사람의 곳간을 털어먹고 살지 않았습니다. 대신 직접 텃밭을 가꾸어 새앙쥐들만의 곳간을 채워놓고 살았지요. 그 중에서도 마을에서 제일가는 부잣집의 유지는 찰스 쥐였습니다. 근면하고 바지런한 부모님으로부터 넓은 논과 하인을 상속받은 찰쥐의 곳간은 언제나 풍성하고 넉넉했지요. 추수 때가 아니더라도 언제나 통통한 쌀겨, 새콤한 버찌열매, 달콤하고 아삭한 고구마와 머루로 가득한 찰쥐의 곳간을 보고서 다른 동물들이 군침을 흘리기 일쑤였지요. 관대하고 아량 넓은 찰쥐를 좋아하던 동네 어른들은 모두 찰쥐에게 걱정 어린 조언을 하곤 하였습니다.


“이보게, 찰쥐. 자네 곳간 문을 꽁꽁 닫아두게나. 조심하지 않으면 들고양이가 내려와서 훔쳐 먹을지도 모른다네. 다 자네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


그러나 세상 돌아가는 일에 눈이 밝고 식견이 넓었던 찰쥐는 웃으면서 고개를 저을 뿐이었습니다.


“촌장님, 산군님들은 우리처럼 벼 이삭을 먹지 않고 고기를 먹고 삽니다.”


“이 어리석은 사람아, 산군님은 고기를 잡수지만 고양이들은 모름지기 배포가 작아서 우리처럼 작은 동물들이나 곤충을 건드리기도 한다네.”


“어차피 제 곳간은 우리 마을 사람들이 모두 다 먹고도 남을 만큼 넘쳐납니다. 길 가던 배고픈 고양이 나그네에게 조금 나눠준다고 해서 줄지 않아요.”


“쯧쯧, 자네는 너무 세상 물정을 몰라서 탈이야.”


동네 어르신들의 한숨을 들어도 찰쥐는 아랑곳하지 않고 곳간 문을 열어두었습니다. 총명한 찰쥐는 서생원 마을의 곳간을 탐내는 도둑들이 고양이가 아니라 다른 야생 쥐들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지요. 학식이 높아 세상 견문이 넓었던 찰쥐는 야옹 선생들이 서생원 마을을 습격하는 일보다 무시무시한 야생 들쥐를 쫓아다니는 데 더 관심이 많다는 걸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찰 생원네 곳간은 마을 생원들의 염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늘 열려 있었습니다.




하루는 찰쥐가 고개 너머 옆 마을에 마실을 다녀오던 길이었습니다. 코앞에 보이는 마을을 향해 콧소리 신명나게 불면서 걸어가고 있는데, 길가 수풀에 커다란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책에서만 보던 야옹 선생을 가까이서 보게 된 찰쥐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한달음에 달려갔습니다.


“아니, 야옹 선생 아니십니까! 이런 길바닥에 앉아서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우왜옹”


“아아, 우리 생쥐 말을 모르시는군요. 괜찮습니다, 저는 특별한 재주가 있어 선생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으니까요.”


“애옹”


조용하고 근엄하게 우는 야옹 선생을 만난 찰쥐는 몹시 들떠서 누워 있는 고양이 주위를 뱅뱅 돌았습니다. 그러고는 수풀에서 가늘고 기다란 나뭇가지 하나를 주워오더니 야옹 선생 눈앞에서 흔들었습니다.


“야옹 선생께서는 나뭇가지 잡는 놀이를 좋아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위에서 흔들고 있을 테니 마음껏 잡아보시지요!”


찰쥐는 그렇게 말하며 짧은 앞다리로 커다란 나뭇가지를 휙휙 휘둘렀습니다. 그런데 야옹 선생은 자그마한 서생원이 코앞에서 폴짝폴짝 뛰는 것을 보고도 미동도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앞발을 배아래 깔고서 가만히 누워있는 야옹 선생을 보고, 잔뜩 신이 났던 찰쥐도 그만 걱정이 들었습니다.


“어디가 편찮으십니까? 야옹 선생께서 힘없이 누워계신 것을 보니 제 마음도 편치 않습니다.”


쪼끄만 눈썹을 찌푸리면서 올려다보는 찰 선생을 보고, 야옹 선생의 마음도 누그러졌습니다. 야옹 선생은 한참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짧고 낮게 울었습니다.


“……므왜옹”


그 말을 들은 찰쥐는 펄쩍 뛰며 말했습니다.


“아이고, 야옹 선생, 사흘을 내리 굶으셨다니요! 어찌 이리 안타까울 수가! 저희 집으로 모실 테니 마음껏 드시고 기운을 차리소서.”


혼자 사냥하고 혼자 잠자리를 구하는 데 익숙한 야옹 선생은 방금 만난 서생원의 제안에 선뜻 응하지 못하고 망설였습니다. 그렇지만 깔고 앉은 배에서 골골거리며 곯은 소리가 나자 어쩔 수 없었지요. 말수 적고 경계 사납던 야옹 선생은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마음이 놓인 찰스 생원이 야옹 선생을 부축하며 앞장섰습니다.


“자아, 이제 저희 집으로 가셔서 따뜻하고 맛있는 음식들, 흐르는 계곡에서 떠온 시원한 감로주로 목을 축이세요. 그리고 따뜻한 윗목에서 몸을 녹이세요. 힘이 날 때까지 얼마든지 계셔도 괜찮답니다.”


모처럼 늠름하고 아름다운 야옹 선생을 만난 찰쥐는 가슴이 선덕선덕 뛰었지요. 짧고 빳빳한 털은 산군님의 가죽처럼 멋드러졌고, 쭉쭉 뻗은 네 다리와 기다란 꼬리는 금방이라도 땅을 박차고 뛰어오를 것처럼 날렵했습니다. 얄쌍하고 작은 머리통은 또 얼마나 아름답던지요. 부잣집 마나님들이 기르는 짜부된 고양이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비록 지금은 배를 곯아 푸석푸석하지만, 굶주린 배를 채우고 폭신한 이불보에서 푹 쉬면 금방 털에서 윤기가 흐를 것이 분명했습니다. 특히 이마 폭에 큼직하게 그려진 M자 문양은 너무나도 멋있었지요. 홀딱 반한 찰쥐는, 머슴을 시켜서 곳간에서 제일 잘 익은 머루 열매와 실한 고구마와 아삭하고 시원한 수박을 가져오게 시켰습니다.


“여봐라, 우리 집에 귀한 손님이 오셨다. 여기 나그네 선생께 가장 달고 맛있는 열매들을 대접하도록 하여라.”


집안 하인들은 주인어른의 세 배나 되는 덩치에 깜짝 놀라서 야옹 선생 주위를 서성이기만 했습니다. 그러자 찰 생원은 조바심이 나서 퍼뜩 채근을 하였습니다.


“요놈들, 내가 옆 동네 마실을 다녀오던 중에 이 나그네께서 길바닥에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 모셔왔느니라. 불쌍하게도 사흘을 굶주리고도 우리 동네 생원들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으신 참 군자이시다. 이런 분을 제대로 대접하지 않고 돌려보낸다면 내 체면이 어떻게 되겠느냐? 찬모는 어서 시원한 감로주부터 대령하도록 하라.”


그러자 주인의 진심 어린 설교를 듣고 감화된 하인들이 더위를 식혀줄 과실주와, 맛있는 곡식과 열매들을 상다리 휘어지도록 차려왔습니다. 찰 생원의 곳간이 활짝 열리고 일 년 내내 보관해두었던 산해진미들이 모처럼 빛을 발했지요. 귀한 잔칫상을 받아본 적이 처음인 야옹 선생은 깜짝 놀라서 눈을 휘둥그레 떴습니다.


“으와아웅”


“허허, 염려 마세요. 제가 부지런히 일하여 수확한 과실들입니다. 야옹 선생께서 한 가득 배를 채우시고도 남을 만큼 많이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고 어서 드시지요.”


통통하고 낯빛 좋은 찰쥐가 인자하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 푸근한 환대는 과묵한 야옹 선생의 차디찬 심장도 순식간에 녹여버렸습니다. 정말 간만에 맛보는 맛있는 음식과, 그보다 더 따스한 서생원의 친절 앞에서 그 단단하다는 괴 선생의 마음도 뭉클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괴 선생은 동그랗고 커다란 눈덩이를 촉촉이 적시면서 시원하고 달콤한 수박을 아삭아삭 베어 물었습니다. 고소하고 부드러운 쌀떡도 먹고, 말린 정어리도 배가 부를 때까지 마음껏 먹었습니다. 오도독 오도독 씹는 소리가 날 때마다 찰쥐의 배도 같이 부르는 것 같았지요. 맛있게 먹는 야옹 선생을 보고 기분이 들뜬 찰쥐는 오순도순 살갑게 물었습니다.


“야옹 선생께서는 존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이처럼 아름다운 털 무늬를 갖고 계시니, 이름도 분명 늠름하고 멋있으시겠지요?”


야옹 선생은 갑작스런 칭찬에 당황했지만, 곧 경계를 풀고 대답했습니다.


“우왜애애옹”


“아, 참으로 멋진 이름입니다, 에리꾸 선생! 저로 말하자면 이곳 서생원 마을의 찰 생원이로소이다. 앞으로 저희 집에서 편하게 계시지요.”


“이애옹”


그러나 야옹 선생은 머뭇거리며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것을 본 찰 생원은 시무룩하여 작은 고개를 푹 수그렸습니다.


“그렇습니까…… 하지만 기운을 다 회복하실 때까지 만이라도 부디 머물러 주셔요. 이대로 나가셨다가 무더위에 지쳐 쓰러지실까봐 제 마음이 편치 않사옵니다.”


조그만 귀를 팔랑이면서 간절히 부탁하는 찰쥐의 애틋한 설득이 야옹 선생의 마음에까지 전해져서일까요? 야옹 선생은 마지못해 꼬리를 탁탁 치며 ‘애옹’ 울었습니다. 참으로 보기 드물게 너그러운 서생원이 고마웠던 것이지요. 늘 홀로 다니던 야옹 선생이 그렇게 해서 당분간 찰 생원 댁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찰 생원 댁에 군식구가 늘어난 지 며칠 후, 서생원 마을에는 비상이 걸렸습니다. 마을 생원들의 곳간이 하나 둘씩 털리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밤늦게 짚으로 엮은 지붕을 타고 내려와 벼 이삭이며 모아놓은 식량을 털어가는 정체불명의 도둑 때문에 마을 생쥐들의 시름만 늘어갔습니다. 밤새 파수꾼을 세워 지켜보아도 다음 날 아침이면 곳간은 텅텅 비어 있기 일쑤였습니다. 걱정이 되고 분해서 잠도 제대로 못 잔 생원들은 급히 마을 회의를 열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 마을이 전부 털리겠소! 다 같이 힘을 모아 범인을 잡으십시다.”

화끈한 청년 생쥐가 말했습니다.


“한숨도 자지 않고 망을 봐도 어김없이 털어가니, 보통 고약한 도둑이 아니어요.”

두 번이나 털린 아낙 생쥐가 한숨을 쉬며 말을 받았고요.


“우리 집은 남은 여름 내 곡기를 이을 식량까지 모두 털렸다오. 이게 모두 못된 고양이 탓이 분명하오!”

할아버지 생쥐는 울분을 터뜨리며 주먹을 꼭 쥐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동네 생원들이 모두 귀를 쫑긋 세우며 물었습니다.


“아니, 고양이가 범인이란 말입니까? 어르신과 마주쳤단 말입니까?”


“새끼줄로 꽁꽁 이은 지붕 틈새를 뚫고, 벽도 탈 줄 아는 도둑이 고양이 말고 어디 또 있단 말이오? 그 신출귀몰한 솜씨를 보아 괭이놈이 범인이 틀림없지!”


잔뜩 성이 난 할아버지 생쥐의 말을 들은 찰쥐는 온몸의 털이 곤두섰습니다.


“그러고 보니 들에 사는 야생 쥐들은 더러 고양이한테 잡아먹히기도 하더랍니다. 그 포악한 맹수가 아무래도 우리 마을에 들어온 것이 아닐까요?”


아낙 생쥐가 걱정스레 말을 이었습니다. 생쥐들이 웅성웅성 동요하는 것을 보고, 촌장 생쥐가 지팡이를 탁탁 두드려 주의를 끌었지요.


“자자, 다들 진정하시오. 몰래 숨어들어온 괴가 범인이라면, 요 근래 마을에 새로 들어온 이웃부터 조사해봅시다. 수상한 동물이 어슬렁거리지는 않는지, 모두 주의 깊게 살핀 다음에 내주 모임에서 말하도록 해요.”


자리에 모인 생쥐들은 의연하게 박수를 친 다음, 흩어졌습니다.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찰쥐는 몹시 걱정이 되었습니다. 이미 성이 날 대로 난 마을 생쥐들한테 아무리 고양이는 벼를 먹지 않는다고 외쳐본들, 소용없으리란 걸 짐작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최근 마을에 나타난 낯선 동물은 자기 집에 머물고 있는 야옹 선생뿐이었지요. 혹시나 야옹 선생에게 불똥이 튈까봐 몹시 걱정이 되어, 찰쥐는 발을 동동 굴리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사랑방에 들어앉아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빙글빙글 제자리를 돌았지요. 작은 발이 같은 자리를 뱅뱅 돌면서 타닥거리는 것을 듣고서, 아랫목에서 곤히 낮잠을 자고 있던 야옹 선생이 다가왔습니다.


“미야옹”


“아아, 내가 괜히 소동을 부려서 야옹 선생을 염려케 했구려. 선생께서는 아무 걱정 마시오. 별 일 아닙니다.”


그러나 야옹 선생은 물러서지 않고 찰 생원의 작고 통통한 뒤통수를 아프지 않게 꼭 깨물었습니다. ‘아얏!’ 찰 생원은 펄쩍 뛰어올랐다가 근엄한 야옹 선생의 표정을 보고서 고개를 푹 숙였지요. 더 이상 숨길 수 없었던 찰 생원이 결국 사정을 털어놓았습니다.


“……이러저러 하여, 지금 마을 생쥐들이 모두 새로 들어온 이방인을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있더랍니다. 다행히 우리 곳간은 한 번도 털린 적이 없지만, 다른 생쥐들은 모두 원한이 깊어 칼을 갈고 있으니 걱정을 아니 할 수가 있나요.”


한숨을 푹 내쉬면서도 찰쥐는 덧붙였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고양이가 범인이라는 말을 믿을 수 없어요. 세상에 어느 고양이가 우리 서생원들이나 먹는 생쌀을 한 아름씩 훔쳐 간단 말입니까? 다른 신출귀몰한 범인 짓임에 틀림없어요!”


찰쥐가 작은 주먹을 꼭 쥐고서 바르르 떨며 힘차게 소리쳤습니다. 그러다 걱정에 못 이겨 금세 다시 뒤통수가 쭈그러들었지요. 힘없이 떨군 찰 생원의 뒷모습을 내려다보던 야옹 선생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습니다.


“……미애옹”


귀를 쫑긋 세우면서 깊이 생각하던 야옹 선생은, 말없이 한 번 울었습니다. 그리고 기가 죽은 찰 생원의 볼을 싹싹 핥아주었습니다. 야옹 선생의 까끌까끌한 혓바닥 세례를 받은 찰 생원은 감격하여 외쳤습니다.


“아아, 참으로 고맙소, 에리꾸 선생! 선생은 실의에 빠진 선비를 위로할 줄 아는 진정 군자 중의 군자라오. 비록 말뿐이라지만, 내 선생의 위로 덕분에 심려를 떨쳤습니다. 아아, 나는 이만 물러가 보겠소, 선생. 좋은 밤 되시오.”


찰쥐가 코를 훌쩍이며 방 밖으로 나갈 때까지, 야옹 선생은 고로롱대며 생원을 배웅했습니다.






달이 휘영청 밝은 밤이었습니다. 야옹 선생의 위로까지 받았지만, 낮의 대화 때문에 신경이 곤두선 찰 생원은 한 숨도 잠들지 못했습니다. 이불 안에서 뒤척이기를 한참. 결국 엉덩이가 근지러워진 찰쥐는 벌떡 일어나서 혼자 밖으로 나갔습니다. 달빛을 벗 삼아 총총 걸어가던 찰쥐가 도착한 곳은 헛간이었습니다. 지푸라기에 깜냥불을 붙이고서 살금살금 헛간 안으로 들어갔지요.


깜깜하고 서늘한 헛간은 금방이라도 귀신이 튀어나올 것처럼 한적했습니다. 낮에는 그리도 자랑스럽고 넉넉해 보이던 쌀 포대들이 밤에 보니 괴물처럼 커다랗고 무섭기 짝이 없었습니다. 저절로 몸이 바들바들 떨렸지만, 찰쥐는 용기를 내서 보초를 섰습니다. 마을 생쥐들을 괴롭히는 흉악한 범인을 잡아서 야옹 선생의 결백을 밝혀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혼자 깜냥불을 들고서 얼마를 기다렸을까요?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려던 찰쥐의 귀에 바스락 바스락 짚 밟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눈을 부릅뜬 찰쥐는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뛰어가서 외쳤지요.


“누구냣! 정체를 밝혀라, 이 못된 도둑놈! 내 오늘 너를 직접 잡아다가 동네 생원들에게 알려, 무고한 동물의 결백을 만천하에 밝히렷다!”


당차게 외치는 찰쥐의 불호령에, 포대 뒤에 숨어 있던 그림자가 살그머니 앞으로 나왔습니다. 그림자에서 나온 범인의 정체를 본 찰쥐는 깜짝 놀라 튀어 올랐습니다.


“에그머니나! 저게 뭐람!”


맨질맨질한 앞발이 털이 바짝 선 찰쥐의 정수리를 톡톡 쓰다듬어주었습니다. 눈이 잔등만큼 커져서 올려다보고 있는 찰쥐 앞에, 야옹 선생이 물고 있던 검은 놈을 툭 내던졌습니다. 바닥에는 사람 팔뚝만큼 커다란 들쥐가 기절해서 누워 있었습니다.


“아!”


그것을 본 찰 생원은 듣지 않고도 사건의 전말을 깨달았습니다. 손님의 보은을 비로소 알게 된 찰쥐는 두 눈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아, 선생! 선생은 참으로 훌륭한 분이십니다! 그동안 우리 집 곳간이 무사했던 것도 모두 선생 덕이었구려! 세상 어느 짐승이 의심을 무릅쓰면서까지 이렇게 다른 동물을 도우리까? 오직 선생뿐입니다. 에리꾸 선생, 지금은 마을 생쥐들이 무지와 어리석음에 눈이 멀어서 선생을 의심하고 있으나, 내 반드시 선생께 은혜를 갚으리다. 선생께서는 심려 마시고 그저 생원의 말을 믿고 따라 주소서.”


야옹 선생의 보은을 깨달은 찰 생원은 눈물을 닦으며 굳게 맹세했습니다. 머뭇거리며 눈을 피하던 야옹 선생도 찰 생원의 진심어린 포부에 감복하여 얌전히 고개를 숙이고 뒤따랐지요. 집으로 돌아간 찰 생원은 밤새 총명한 머리를 굴려가며 번뜩이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다음 날, 아침이 밝자마자 찰 생원은 하인을 시켜 마을 생쥐들을 모두 불러 모으라고 일렀습니다. 올 때는 혼사 맞은 잔칫집을 방문할 때의 예를 갖추어 오라는 말도 잊지 않았지요. 전갈을 받은 서생원들은 저마다 어리둥절하여 찰쥐의 집으로 삼삼오오 모여들었습니다. 찰 생원에게 혼약 맺은 처자가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급하게 준비한 선물을 들고서 도착한 생쥐들은 그동안 보지 못했던 성대한 환영에 눈이 휘둥그레 해졌습니다. 부잣집인 찰 생원이라지만, 고기와 햅쌀과 말린 정어리와 제철 과일이 한가득 쌓인 잔칫상은 참으로 놀라웠기 때문입니다. 영문도 모르고 차례로 푸짐한 식사를 대접받으면서, 생쥐들은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그렇게 생쥐들이 기분 좋게 취해갈 때 즈음, 비로소 주인이 짐짓 근엄하게 헛기침을 하며 나타났습니다.


“마을 여러분, 모두 잘 오셨습니다. 이렇게 기쁜 날 여러분께 좋은 소식을 알려드리게 되어 실례를 무릅쓰고 급히 여러분을 불렀사옵니다.”


호기심이 동한 생쥐들은 찍찍거리며 찰 생원을 졸랐습니다.


“이보게, 찰 서방, 무슨 일인 겐가? 요즘 같이 흉흉한 세상에 이렇게 큰 잔치를 베풀다니? 자네 집은 곳간이 무사한가?”


“예에, 저희 집은 훌륭한 파수꾼이 있어 도둑의 횡포한 앞발을 무사히 피해갈 수 있었지요. 여기 저의 곳간을 무사히 지켜주어 은혜를 갚은 훌륭한 동물이 있어, 오늘 운우의 연을 맺으려고 합니다.”


찰쥐의 폭탄 발언을 들은 생쥐들은 모두 놀라서 찍찍댔습니다. ‘색시라고?’ ‘너무 급하지 않은가!’ ‘하지만 곳간을 지켜준 고마운 처자라니, 나라도 당장 결혼할 걸세.’ 놀라운 소식에 흥분한 생쥐들은 자기네들끼리 떠들며 이리저리 훈수를 두었습니다. 오직 촌장 생쥐만이 그 소동에 휘말리지 않고 걱정스레 찰 생원을 바라보았습니다. 촌장은 하얗게 샌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걱정스레 물었습니다.


“하지만 흉포한 도둑고양이를 잡은 동물이라면 그만큼 똑같이 크고 사납지 않을 텐가? 그렇게 위험한 짐승을 처로 맞이하다니, 괜찮겠는가 자네?”


촌장의 말에 정신이 돌아온 생쥐들이 그제서야 깜짝 놀라 퍼뜩 꼬리를 세웠습니다.


“맞아 맞아, 세상에 어느 색시 쥐가 고양이를 잡는단 말이야?”


생쥐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하자, 찰쥐는 하인을 시켜 말했습니다.


“여봐라, 안방에 가서 색시를 모셔오도록 하여라.”


그리고 뒷짐을 지고서 묘령의 처자가 나오기를 느긋하게 기다렸지요.


곧 안방 문이 열리고, 어여쁜 오색 원삼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두른 색시가 하인을 따라 마당으로 나왔습니다. 발에는 자수를 놓은 꽃신을 신고 머리에는 산호로 꾸민 비녀와 족두리를 단 호화로운 색시의 차림을 보고서 생쥐들은 모두 넋이 나갔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생쥐들을 놀라게 한 것이 있었는데, 바로 처자의 키와 덩치가 서방의 두 배는 족히 넘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얌전하니 원삼을 뒤집어쓰고 꽃방석 위에 앉은 색시를 바라보며, 생쥐들은 질문 세례를 던졌지요.


“세상에 이렇게 커다란 생쥐 처자는 처음 보오. 정말 우리 동네 사람이 맞는 거요?”


“물론이지요.”


부끄러움을 타는 색시를 대신해서 찰쥐가 대신 대답했습니다.


“진짜 우리 마을 사람이라면 어디 앞발을 내밀어 보오.”


의심 많은 성년 생쥐가 의심했습니다. 그러자 찰쥐가 발꿈치를 한껏 들어 색시 귓가에 속삭이기를,


“색시의 보드랍고 어여쁜 앞발을 보여주오.”


그러자 원삼 밖으로 쏘옥 흰색 발이 튀어나왔습니다. 벚꽃 색으로 물든 보드라운 색시의 발은 흠집 하나 없이 매끈하고 발톱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특히 연분홍색의 말랑말랑한 발바닥이 생쥐들이 보기에 몹시 아름다웠지요. 마을 생쥐의 반이 벌써 그 앞발에 홀딱 넘어갔습니다.


“앞발만으로 확신할 수는 없지. 자, 어디 우리 마을 사람이라면 한 번 울음소리를 내보오.”


아직 의심을 거두지 못한 나머지 쥐들 중 하나가 외쳤습니다. 그러자 찰쥐는 색시의 보송보송한 앞발을 톡톡 쓰다듬으며 부탁했습니다.


“색시의 옥구슬 같은 울음소리를 들려주오.”


그러자 넓은 활옷으로 얼굴을 가린 색시가 아주 가녀린 목소리로, ‘미야앙’ 하고 울었습니다. 그 소리가 활짝 핀 처녀의 애교 섞인 울음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색시의 목소리에 홀딱 넘어간 생쥐들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저마다 칭찬하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야, 정말 예쁜 목소리로군.”

“우리 마을 명창도 저렇게 간드러지고 야들야들하게 울지는 못할 거야.”

“이 색시는 우리 마을 사람인 게 틀림없네, 틀림없어.”


색시를 칭찬하는 마을 생쥐들의 반응에 찰 서방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활짝 피었지요.


그런데 오직 심보가 고약한 노랭이 생쥐 하나만이 끝까지 의심을 버리지 못하고 이렇게 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에이, 생쥐 앞발이나 생쥐 울음소리는 여느 동물이라도 연습만 하면 얼마든지 흉내 낼 수 있다우. 어디 진짜 생쥐인지 아닌지 내가 한 번 시험해보지!”


그러더니 찰 서방이 미처 말릴 틈도 없이, 갈대 하나를 꺾어다가 색시 앞에 대고 휘두르는 것이었습니다.


“자아, 부들부들한 갈대 버들이로다. 어디 한 번 무얼 하는지 보자꾸나. 진짜 생쥐라면 이런 술수에 넘어가지 않겠지?”


그 말에 생쥐들은 당황하고, 찰 생원은 안색이 파랗게 질렸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곱게 원삼을 뒤집어쓰고 있던 색시의 궁둥이가 흔들리는 버들잎을 따라 좌우로 씰룩거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노랭이 쥐가 버들잎을 왼쪽으로 ‘이럇!’ 휘두르면 그쪽으로 꼬리가 쏘옥, 오른쪽으로 ‘이랴압!’ 휘두르면 앞발이 쏘옥 따라갔습니다.


‘옳다구나!’


눈치를 챈 노랭이 쥐가 버들잎을 파르르르 떨어대자, 그만 색시는 참지 못하고서 갈대를 따라 앞으로 튀어나오고 말았습니다. 그 바람에 색시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원삼이 홀라당 뒤집어지고, 야옹 선생의 정체가 마을 생쥐들 앞에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이럴 수가!”

“찰 서방이 고양이를 숨겨주고 있었다니!”

“범인이다! 우리 곳간을 털어 간 범인이야!”


겁먹고 분노한 생쥐들은 저마다 색시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소리쳤습니다. 흥분한 생쥐들한테 휘말려서 야옹 선생이 쫓겨나기 직전이었습니다. 그 광경을 보던 찰쥐는 천하장사 같은 용기가 솟아서, 힘차게 색시 앞을 가로막고 생쥐들에게 호령했습니다.


“이보시오, 동네 사람들! 이렇게 무고한 사람을 몰아가는 법이 어디 있소? 여기 야옹 선생이 내 헛간을 지켜주었다는 이야기는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사실이오. 야옹 선생은 훌륭한 미덕을 지니셔서 우리들의 의심을 받는 와중에도 주인댁에게 의리를 지킨 것이외다.”


찰쥐의 불호령에 당황한 생쥐들이 더듬거리며 대꾸했습니다.


“하, 하지만 고양이가 생쥐를 해치지 않으면, 대체 어느 짐승이 우리 마을을 덮쳤단 말이야?”


그러자 찰쥐는 품속에 감추고 있던 커다란 들쥐의 꼬리를 보란 듯이 바닥에 집어던졌습니다.


“아니 이럴 수가!”


통통하게 살 오른 밧줄만한 들쥐의 꼬리를 목격한 생쥐들은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그 광경을 목도한 찰쥐가 짐짓 근엄하게 훈계했습니다.


“바로 이 못된 들쥐가 그동안 우리들의 곳간을 털어갔던 거요. 들쥐는 고양이 못지않게 덩치가 크고 날렵해서 벽도 잘 타고 꽁꽁 묶은 포대도 쉽게 끊어버리지요. 게다가 고양이는 먹지 않는 벼와 보리를 주식으로 삼으니, 그놈 눈에 우리들 헛간이 얼마나 먹음직한 진수성찬으로 보였겠습니까? 여기 계신 야옹 선생께서 바로 그 들쥐를 잡아주셨다는 내 말에는 한 치의 거짓도 없었습니다. 나와 여러분은 야옹 선생께 큰 빚을 진 것입니다.”


찰쥐의 설명을 들은 마을 생쥐들은 모두 부끄러워 할 말을 잃었습니다. 드디어 거추장스러운 옷가지를 벗어던진 야옹 선생만이 새초롬하니 안장서 앞발을 할짝였지요.


“우리와 피를 나누지도 않은 동물이 우리의 쌀을 지켜줬으니, 얼마나 신통하고 감사한 일입니까? 에리꾸 선생은 도둑이 아니라 우리의 쌀지킴이어요, 쌀지킴이.”


찰쥐가 당차게 선언하자, 감복한 마을 생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환호하며 외쳤습니다.


“야옹 선생 만세! 쌀지킴이 만세! 의리를 아는 진정한 군자요, 용감한 색시로다!”


“애오옹”


누명을 벗은 야옹 선생은 만족스럽게 울었습니다.


이후로 서생원 마을의 생쥐들은 고양이를 보면 쌀지킴이라 하여 깊이 받들고 다정하게 지냈습니다. 오랜 시간이 흘러 쌀지킴이가 살찐이로 살짝 변해서 전해질 때까지 말입니다.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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