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의 도시(Le livre de la cité des dames), 1405
여성들의 도시(Le livre de la cité des dames), 1405





자그마치 사백 페이지가 넘는 책을 재미있게 탐독했더니 메모한 포스트잇이 가득하다. 정리하면서 고생스러웠지만, 덕분에 시간이 흘러도 기억에 남으리라고 생각하니까 끝 없던 필사의 고통도 꽤 좋은 추억으로만 남는다. 나는 책에 관한 글은 대부분 노트에 먼저 적은 다음 블로그에 옮겨 적기 때문에 이 포스트 또한 상당히 긴 길이가 될 것 같다. 읽고 정리하면서 떠오른 생각들과 인용문을 두서 없이 늘어놓은 글이나마 혹시 관심 있는 사람이 읽고서 피장의 책을 찾아보게 된다면, 참 기쁠 것 같다. 



0. 들어가기에 앞서 역자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할 것 같다.

 

저자 크리스틴 드 피장에 관한 정보를 재확인하려고 <세상은 한 권의 책이었다(소피 카사뉴, 2006)>를 다시 꺼내보았는데, 공교롭게도 이 책과 같은 역자였다. 이로써 한 역자의 책을 세 번이나 마주치게 된 셈이다. (나머지 하나는 <연옥의 탄생>.) 출판사 소개에 따르면, 역자 최애리는 중세 불문학 전공자로, 번역한 책 중에는 문학이나 책을 매개로 한 역사서가 많은 것 같아 보였다. 꼼꼼한 주석과 세세한 개념 및 용어 번역, 해설을 읽으면서 당연히 서양사 전공자가 번역했을 거라고 짐작했는데, 섣부른 넘겨짚기였다. 미셸 파스투르의 색 시리즈도 그렇고, 프랑스 산 역사서의 번역에 관해서는 역사학 전공자보다 문학 전공자들이 더 꾸준한 활약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기억하기로는 <지중해의 기억> 역자도 불문학 전공 및 통번역 전공자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덕분에 그 책의 역자 후기에는 책에 관한 소개보다도 원 저자를 향한 원망과 쓰라린 고통의 흔적이 더 많이 남아 있다.) 하나의 학술서를 번역하기 위해 마치 해당 분야의 전공자처럼 '공부'하고 책 마무리에는 해제를 달 수 있는 전문 번역가. 멋지다. 번역자가 세심한 정성을 들여준 덕분에 모처럼 독해하기 수월한 책을 만날 수 있었다. 





1. 저자 크리스틴 드 피장(Christine de Pizan)에 관해. 


<세상은 한 권의 책이었다>에서 스쳐가며 본 기억으로는 직업 채식(彩飾)사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전업 작가이자 필경(筆耕)사였다. 단 한 권의 책을 만들 때라도 글을 옮겨 적는 필사가와 장식 무늬를 그리는 채식사가 반드시 한 팀이 되어 작업했던 중세였던 만큼, 아마 <한 권의 책>에 나열된 수많은 채식사와 필경사의 이름들 사이에서 기억을 헷갈렸던 것 같다. 다만, 중세 특유의 기다란 고깔 모자를 쓰고서 서재에 앉아 종이에 글을 쓰고 있던 한 여자의 삽화만은 똑똑히 기억에 남았다. 귀족 남성 중에서도 문해자가 낮았던 시대에, 쓰든 그리든 어쨌든 책 만들기를 업으로 삼고 살았던 여성이라니, 자연스레 한 번 더 눈길이 갔던 것이다. 


 

서재에서 글을 쓰는 크리스틴과 주문자들.
서재에서 글을 쓰는 크리스틴과 주문자들.


그러나 필경업을 시작해야 했던 크리스틴에게는 나름 동시대 여성들과 다른 고달픔이 있었으니, 스물 다섯 살에 남편과 사별 후 집안의 유일한 가장이 되면서 생계비를 벌기 위해 필경 일을 시작했던 것이다. 평민 출신이었으나 궁정 문사(文師)였던 아버지로부터 프랑스어, 라틴어, 이탈리아어를 배운 덕에 얻을 수 있는 일거리였다. 이처럼 오랜 기간의 필사 경력은 이후 피장이 펴낸 저서 여러 권의 책 중에서 직접 수서(手書)한 책이 많았던 이유가 되었다. 중세 서책이라고 하면 으레 떠올리는 화려한 고딕 글자, 글줄 사이를 수놓은 세밀한 장식 무늬들은 주로 채식사의 작품이다. 그러나 채식사가 아니라 여성 필경사라고 해도 대단한 것은 마찬가지이다. 게다가 크리스틴은 직접 궁정의 장서관을 드나들면서 역사, 철학, 문학, 수사학 등의 학문을 독학하여 전문 작가로서의 커리어를 쌓은 셈이니, 지금 돌아봐도 놀랍고 굉장할 뿐이다. 성별을 막론하고 인권이라는 말조차 존재하지 않았던 중세 말, 여성 필경사이자 전업 작가, 학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내 흥분이 어땠을지는 길게 쓰지 않아도 짐작되리라 생각한다. 


(샛길) 잠시 필경(筆耕)이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해본다. '붓으로 밭을 갈다'. 멋진 말이다. 한 권의 책을 만들려면 손으로 일일이 필사해야 했던 시대, 그 일을 맡은 수도원의 수사들이나 도시의 학생들, 그리고 직업 필사가들에게 있어서 글쓰기란 말 그대로 농부가 밭을 가는 것과도 비슷한 강도의 육체 노동이었으리라. 편하게 인쇄로 책을 찍어내는 시대에 살고 있는 나는, 스크립토리움(필사실)에 틀어박혀 곱은 손으로 책을 베끼는 필경사를 떠올릴 때면 묘한 매료를 느낀다. 당장 나 역시 이 노트를 정리하면서 필사의 육체적 고통을 절실히 느끼지 않았나. 힘을 준 팔뚝은 저리고, 상체를 수그리느라 어깨 근육은 뭉쳐서 통증을 호소한다. 돌처럼 근육이 딱딱하게 굳어가는데 글은 끝날 길이 보이지 않고, 눈이 침침해지며 점차 글씨가 꾸물거리기 시작하니, 확실히 필사는 노역이다. 


여성의 문필활동, 특히 전업 문필 활동은 더욱 흔치 않았던 시대에 학문을 한 만큼, 과연 크리스틴의 책과 사상에는 다른 남성 문사들과는 차별화된 경험이 담겨 있다. 특히 남성 작가들로부터 폄하당하거나 왜곡되기 마련인 여성관에 대해서 본인 및 주변 인물의 경험을 제시해 가며 생생하게 반론한다. 당장 저자 해제의 절반을 차지하는 분량인 '장미 논쟁'부터가 크리스틴이 남성 작가들의 유치하고 찌질한(정말 이 단어로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원색적 비난, 성적 모욕에 맞서서 어떻게 논박했는지를 길게 서술하고 있다. 읽으면서 그때나 지금이나 남성 작가들의 비이성적이고 치졸한 질투에 헛웃음이 나왔다. ('장미 논쟁' 해제에 관해서는 pp.447~452, pp.460~462. 참조.) 


(샛길) 독학자 크리스틴.  (p.449) (그녀는 왕의 장서관에 드나들며) "ABC를 배우는 아이처럼, 세상 처음부터의 역사를 공부하기 시작하여 차츰 철학과 시문학에까지 이르렀고, 그런 배움을 바탕으로 좀 더 진지한 저술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처럼 수년 간 다량의 책을 독파한 크리스틴은 백년전쟁 및 프랑스 왕위 계승 전쟁 중에는 자국의 정치, 군사에 관한 책을 다수 저술하기도 했다. 역자는 해제에서 크리스틴의 이러한 박식을 예로 들어, 궁정풍 연애시로 처음 작가의 길에 입성했지만 위기 상황에서 지식인으로서의 책임을 다 하려 한 만큼, 그녀를 단순한 규방작가로 규정해서는 안 된다고 적고 있다.  


(샛길2) 유일한 선은 진리의 길. (p.449) "(...) 그 고독 속에서 기억을 반추하는 가운데 아버지와 남편으로부터 들었던 라틴어의 기초와 학문의 아름다운 언어와 다양한 경구들, 우아한 수사학이 되살아났다. (...) 온통 위태로운 함정 투성이인 세상에서 (...) 유일한 선은 진리의 길임을 깨닫고, 타고난 기질인 학문에 대한 사랑을 따르기로 했다." 



장서관에서 공부 중인 크리스틴. 뒤쪽 서가에 도난 방지를 위해 사슬로 묶어놓은 책이 보인다.
장서관에서 공부 중인 크리스틴. 뒤쪽 서가에 도난 방지를 위해 사슬로 묶어놓은 책이 보인다.





2. 중세의 글쓰기 방식, 편작(扁鵲)에 관하여. 


<여성들의 도시>에서 크리스틴이 소개하는 일화의 대다수는 기존 책에 발췌, 요약한 것이다. 특히 보카치오의 <유명한 여성들에 관하여>를 많이 인용했으며, 그 밖에 <변신이야기(오비디우스)>, <역사보감>, <카이사르까지의 고대사>, <프랑스 대연대기> (이상 중세 역사서), <황금전설>(성인전)을 참고하고 있다. 


이처럼 기존의 텍스트를 차용하되, 구성과 순서를 재배열하여 논지를 전개하는 방법을 편작(compilation)이라고 하는데, 작가의 창조성보다 권위 있는 문헌의 인용으로부터의 인용 능력을 더 중시했던 중세 글쓰기 관행에서는 흔한 방식이었다. 이처럼 '차용 후 재배열'을 골자로 하는 편작 방식을 통해서 중세의 창작 개념은 오늘날과 사뭇 달랐다는 점, 그리고 중세의 텍스트들은 끊임없이 서로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3. '장미 논쟁' 간략.


그렇다면 크리스틴으로 하여금 이 책을 쓰게 된 심리적, 실질적 계기를 제공한 '장미 논쟁'은 대체 어떤 논쟁이었을까? 이 일련의 문학 논쟁은, 13세기 궁정풍 운문소설인 <장미 이야기(Le roman de la rose)>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게 되면서 시작된다. 1230년 기욤 드 로리스가 쓴 소설의 전반부는 당시의 통상적인 궁정 로맨스(즉, 궁정 여성에 대한 이상화와 기사의 구애)를 답습하고 있으나, 약 오십 년 뒤에 장 드 묑이 이를 조롱하고 희화화하는 내용의 후반부를 덧붙여서 책을 덧붙여서 소설을 완성했다. 장 드 묑은 특히 궁정풍 소설에 자주 나오는 클리셰인 여성에 대한 이상화, 그에 따른 플라토닉적 사랑을 조롱하면서 '여성은 간사하여 변덕스러운 존재니, 그런 여성에게 구애하는 궁정풍 사랑은 어리석은 짓'이라는 논조의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한다. 이른바 '사랑할 때는 장미, 거절할 땐 변덕스럽고 경박한 존재'라는 남성 중심의 여성 이미지를 형성, 유통하는 데 일조한 것이다. 




연인을 장미에, 사랑을 변덕에 비유한 중세 소설 <장미 이야기>.
연인을 장미에, 사랑을 변덕에 비유한 중세 소설 <장미 이야기>.


구애 대상인 여인을 고고하고 변덕스런 장미에 비유한다.
구애 대상인 여인을 고고하고 변덕스런 장미에 비유한다.


동시대 소설치고 욕망에 충실한 묘사와 삽화를 덧붙여서 도덕주의자들의 비판을 사기도 했다.
동시대 소설치고 욕망에 충실한 묘사와 삽화를 덧붙여서 도덕주의자들의 비판을 사기도 했다.


이 같은 <장미 이야기>의 후반부 내용을 두고서 일부 남성 인문주의자들이 "천재적"이라며 찬사를 바친 반면, 크리스틴은 일련의 편지 및 서신을 통해서 해당 소설에 묘사된 편파적인 여성상을 비판하고 이를 논박했다. 특히 크리스틴은 장 드 묑이 덧붙인 후반부 내용을 경계로 내용이 뒤바뀌어버린 이 소설의 모순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p.456) "(...) 오로지 한 여성을 정복하기 위해 온갖 술수와 모략을 동원하는 이야기인데, 그러면서 여성의 경박함과 지조 없음을 비판하고 있으니 (...) 여성이 그렇게 허술하고 헤프다면 그녀를 정복하기 위해 그 많은 전략이 왜 필요했겠는가?"


"여성을 그토록 악하고 비루한 존재로 비하하면서 한편으론 여성을 쟁취할 것을 부추기다니 모순이 아닌가." 


위의 비판을 읽자마자, 일명 열등감과 패배의식 때문에 여성을 폄하한다는 '한남론', 신포도 증후군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논리와 이성으로 공박하는 크리스틴을 향해서 대필 혐의는 기본, 고매한 철학자에게 대드는 건방진 창녀에 비유한 당대 남성 문사들의 행태를 보면서 실소를 금치 못했다. 강약약강의 비열한 행태를 답습하는 그들의 태도가, 오늘날 많은 여성 학자나 여성 작가들이 흔히 부딪치게 되는 편파적 상황과 별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신이 직접 겪어야 했던 차별에 근거해서 썼기 때문일까? <여성들의 도시>에 등장하는 일화와 크리스틴의 첨언은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가령, 학문에 대한 여성들의 기여를 지워버리는 풍조나, 가정폭력을 행사하는 가장, 꾸미는 여성을 사치스럽고 남자를 유혹하려고 한다며 폄훼하는 주장 등에 관한 기록은 오늘날의 여성이 살면서 경험하는 차별들과 별반 다를 바 없어, 씁쓸하면서도 속이 시원했다. 크리스틴이 이 책을 쓴지 자그마치 오백 년 이상이 흘렀는데, 여성들이 겪는 혐오와 폭력은 여전히 유사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니. 가부장제야말로 인류 최초, 최대, 최장의 억압제도이며 가부장제의 소멸 없이 진정한 여성해방은 없다던 거다 러너의 경고를 다시 떠올리게 되는 밤이었다. 이 같은 역사적 공감은 내가 늘 역사가 재미있다고 이르는 요소 중 하나이기도 한데, 다만 이번 경우에는 신기함과 동시에 씁쓸함을 같이 느꼈다. 










4. <여성들의 도시>: 구성의 은유, 발췌와 감상. 




<여성들의 도시>는 책의 구성에서부터 크리스틴이 준비한 탄탄한 논박 태세를 엿볼 수 있다. 


어느 날 고대 저작이나 당대의 문필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여성을 비하하는 것을 깨닫고 상심해 있던 크리스틴 앞에, 하나님이 보낸 세 명의 부인: 이성(Raison), 공정(Droiture), 정의(Justice)가 나타난다. 세 부인은 우선 크리스틴이 읽고 있던 책들의 여성 비하가 얼마나 터무니 없고 근거가 없는 것인지 일일이 논박하여 깨우쳐준다. 그런 다음, 더 이상 여성들이 그러한 모함으로 공격받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오직 여성들을 위한 도시를 지으려고 하니, 크리스틴에게 자신들을 도와줄 것을 부탁한다. 요청을 받은 크리스틴은 세 부인을 따라서 도성을 짓기 시작하는데, 사실 '여성들의 도시'란 논리와 근거로 무장한 여성 옹호론 그 자체를 비유한 것이며, 그 옹호론을 다져나가는 과정이 각각 성을 건축하는 세 단계로 비유된다. 


가령, 제 1부에서 이성 부인이 '흙을 다지고 성벽을 쌓는다'고 표현된 부분은 기실 기존 여성 폄하론의 허황됨을 세세하게 공박하고, 여성 역시 이성으로 판단, 분별, 학문, 계도할 수 있는 존재임을 열거하는 부분이다. 즉, 이 장에서는 여성의 지적 능력이 남성과 아무런 차이가 없음을 증명하는 일화들이 펼쳐진다. 다음으로, 제 2부에서는 공정 부인이 '성의 건물과 해루를 쌓는' 과정을 통해 여성들의 윤리관과 도덕관에 대한 옹호를 펼친다. 마지막으로 제 3부에서는 정의 부인이 성녀나 복녀의 행적과 기적을 자세히 소개하면서, 그들이 남성에 비해 신앙적으로 열등하지 않음을 증명하는데, 이 과정은 '성의 지붕과 첨탑을 올리는 것'으로 은유되어 있다. 이러한 구성 상의 독특함을 대표적으로 엿볼 수 있는 부분으로 1부의 다음 표현들이 있다. "문예의 들판"(=기존 문적)으로 나가 "지성의 곡괭이와 질문의 곡괭이"(=논리와 이성)로 "자갈을 파내고 흙을 다지는 것"(=여성 비하 이론을 반박하는 것). 사실상 이 과정을 세 번 반복하면서 차례대로 여성의 이성, 도덕관, 신앙을 증명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자 전개라고 할 수 있겠다. 




크리스틴을 위해 직접 벽돌을 옮겨주는 이성 부인.
크리스틴을 위해 직접 벽돌을 옮겨주는 이성 부인.



백여 가지 이상의 일화로 구성된 이 책의 모든 내용을 정리하는 것은 시간적으로, 물리적으로 어려운 일일 것이다. 다만 이 노트에서는 그중에서도 흥미롭게 읽거나 크게 공감한 일부 내용을 발췌해서 정리하려고 한다. 특히 여성의 이성과 지성을 다룬 제 1부 내용을 중점적으로 읽은 것은, 단연 그 부분이 가장 희귀한 사례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보통 (중근세는 물론이고 근대까지도) 서양 역사에서 발견되는 여성 옹호 담론 중에는 여성의 우월한 도덕성이나 다정함, 신실함에 관해 소개하는 텍스트가 주를 차지하고, 반대로 남성의 전유물이어야만 하는 '이성'에 관해서는 언급하거나 인정하는 텍스트가 드문 편이다. 이는 현대에도 마찬가지여서, 당장 크리스틴의 저작만 하더라도 1970년대에 여성사 연구의 저변이 확장되면서 재발견될 때까지 수백 년을 철저하게 잊혀져 있었다. 


이런 상황이니, 여성의 이성을 간과하고 더 나아가 질타하기까지 하는 동시대 문필들을 비판했던 제 1부에 더 관심을 가진 것도 필연적인 결과일 것이다. 그중 꼭 기억하고 싶거나 새로 알게 된 중요한 내용 일부를 아래 적어 놓는다. 





1) 남자는 왜 여자를 중상하는가? 크리스틴은 네 가지 유형의 사례를 든다. (pp.47~48.)


첫번째 이유는 늙은 남성의 노욕이다. "여러 여자와 관계를 가지고 방탕한 행실로 젊음을 허비한 자들 (...) 그런데 그들도 어쩔 수 없이 늙게 되니, 무력한 욕망이 원하는 것을 마음껏 실행에 옮길 힘이 없는 터라 (...) 심정을 풀 길이라고는 여자를 공격하여 남들도 여자들에게 정나미가 떨어지게 하는 것뿐이지." 


두 번째 이유는 성적 능력 결여에서 오는 열등감이다. "자신의 신체적 결함 때문에 여자를 공격하는 남자들은 성교 불능이요 지체 불구들인데, 생각이 악의적으로 꼬여있어."

(어딘가 익숙한 주장이라는 느낌이 든다면, 맞다. 일명 한남 불구론의 핵심이다.) 


세 번째 이유는 뛰어난 여자를 질투하기 때문이다. "시기심에서 여성을 헐뜯는 자들은 졸렬한 남자들로, 자기보다 더 뛰어난 지성과 훌륭한 품행을 갖춘 여성을 만나보고 앙심을 품어 (...)" 


네 번째 이유는 허영심이 혐오를 재생산하기 때문이다. "(...) 자기도 남들처럼 글줄깨나 써보겠다는 이들도 많지. 이런 자들은 자기가 하는 말을 남들이 이미 책에서 말했다면 틀림이 없다고 믿어. 여성을 비판하는 것도 그래서이고." 

(여성의 월경에 관해 어처구니 없으리만치 무식한 환상을 퍼뜨리는 김훈의 소설과, 그것을 곧이곧대로 믿는 남자들의 행태가 이에 해당될 것이다. 이 같은 '중세의 김훈'에 관한 비판은 다음 장에서도 계속해서 이어진다.)


(p.53) "부인, 저는 또 라틴어로 된 작은 책도 보았는데, <여성의 비밀>이란 제목의 이 책은 (...)"

"너는 달리 증명할 필요도 없이 네 스스로 알 수 있을 게다. 그 책은 짐짓 꾸며내 만들어졌다는 걸 말이다. 네가 그 책을 읽었다면, 그것이 온통 거짓투성이라는 사실을 명백히 알 수 있겠지. (...) 여자들은 그 책이 말하는 어떤 것들이 사실무근의 헛소리임을 분명히 알 수 있으니 (...)"

 

주석에 따르면, <여성의 비밀>이란 여성의학에 관한 유사과학적 논저로, 아마 아리스토텔레스나 갈레노스 류의 여성 신체 결함론을 답습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이 책의 저술 근저에 남자들의 편견 재생산, 강화 욕구가 도사리고 있다는 점은, 책 말미에 '여자는 읽지 말 것'이라는 경고문이 항상 붙어있었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는데, 어이가 없을 뿐이다. 





2) 아담과 이브 신화를 여성 차별의 근거로 보는 해석에 관해: 특히 이 해석은 오늘날 한국 개신교회에서도 수없이 반복되는 주장인 만큼, 그 억지성을 알아둘 필요가 있으리라 본다.)


(p.55) "하느님께서는 아담을 잠들게 하시고 그의 갈빗대 하나로 여자를 만드셨으니, 그것은 여자가 그의 곁에서 반려가 되라는 뜻이지 그의 바리에서 하녀가 되라는 뜻이 아니란다."


특히 이 구절에 달린 주석에 상세한 해석이 제시되어 있어 옮긴다. 12세기 수사 피에르 롱바르의 말이다. 

"만일 여자가 남자의 머리로부터 만들어졌다면, 그것은 그녀가 그를 다스려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만일 여자가 남자의 다리로부터 만들어졌다면, 이것은 그녀가 그를 섬겨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종도 주인도 아니므로 그의 갈비뼈로부터 만들어졌으니 (...) 두 사람 사이의 유대가 사랑에 기초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3) 여자는 식탐이 강하다? 


(pp.58~59.) "부인, 여자가 본래 식탐이 있어 먹을 것을 밝힌다는 말은 사실인 가요?" 

"딸아, 너는 이런 속담을 누누이 들어보았겠지. (...) 만일 여성들이 그런 천성을 타고났다면, 온갖 진미와 별미를 파는 주점이나 그 비슷한 장소에서 여자들을 구경하기 어렵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구나."

 

여자는 식욕, 남자는 성욕이라는 헛소리가 이 년 전까지만 해도 횡행한 우리 사회에서 새기고 담아 들을 답변이다. 도리어 크리스틴은 남편이 술을 마신 값어지만큼 생활비를 아껴야 해서 자기가 절주를 하는 이웃집 부인 이야기를 들기도 한다. 





4) 로마 시가로 신구약 찬시를 만든 로마 여성, 프로바. (pp.124~126.)


라틴어의 cento(찬시)란, 조각헝겊을 이어만든 외투, 즉 시작(詩作)에서 기존 작품의 부분 부분을 이어 만든 작품을 가리킨다. 프로바가 이런 유형의 cento를 지었다는 이야기로, 그 아이디어와 영감이 기발하다. 


"그(베르길리우스)의 시가를 가지고서 성서의 구약 및 신약의 이야기를 (...) 운문으로 옮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 (...) 때로는 <목가>를, 때로는 <농경시>를, 때로는 <아이네이스>를 참조해 가며, 여기서는 시행 전체를, 저기서는 일부를 가져다가 놀라운 재간으로 그것을 완벽한 운문으로 만들었다. (...) 그러면서도 시가의 운율과 시작법의 관행을 완벽하게 지켜 작은 실수도 범하지 않았지. (...) 창조에서부터 시작하여 구약과 신약의 이야기들로 이어지다가 성령이 사도들에게 임하는 데서 끝나는데, 베르길리우스의 작품들이 이 모든 것에 너무 완벽하게 들어맞았기 때문에, 그 작품이 만들어진 과정을 알지 못했다면 베르길리우스가 예언자요 복음 전도자였다고까지 믿을 만했단다." 


읽으면서 가장 충격을 받은 일화 중 하나이다. 서로 다른 종교의 저작을 분할, 재구성해서 완벽한 한 편의 시로 완성할 수 있는 영감과, 그것을 실행할 능력이 있었다니, 부럽고 놀라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어째서 이런 여인의 설화를 다른 책에서는 언급조차 찾아볼 수 없던 것일까? 여성사 연구가 진행되어서, 그래서 크리스틴의 책이 재발굴 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그리고 여기 또 한 명의 놀라운 여성이 있다. 






5) 로마 문자와 로마법의 창안자, 카르멘타. (pp.134~137.) 


이 부분은 '여성이 새로운 학문이나 기술을 창조해서 인류의 유익에 기여한 바' 중 한 예로 제시된다. 카르멘타 외의 사례로 크리스틴은 농사를 발명한 케레스(데메테르) 여왕, 양모와 수레를 발명한 미네르바, 직조법을 발명한 아라크네 등을 들고 있다. 


참고로 여기서 크리스틴은 '에우헤메로스주의'를 따라 신화 속 영웅이나 신을 역사 인물처럼 소개하는데, 주석의 자세한 설명을 참고하자면 다음과 같다. 에우헤메로스주의란 실제 역사 속의 인물이 신화화되었다는 신화 해석법으로, 원래 숭배받을만했던 영웅이나 정복자들이 신격화된 것이 신화라고 파악한다. 이러한 에우헤메로스주의는 그리스도교 초기부터 이교 신화(그리스 신화나 중근동 신화)들을 인간이 지어낸 이야기로 설명하기 위해 도입되었다. 크리스틴이 작중에서 이집트의 이시스, 근동의 니카울라, 스키타이의 아마조네스 등을 역사적 인물로 상정하는 것도 이 신화 해석법을 따른 견해이다. (p.84 참조.) 


"고귀한 니코트라스타에 대해 말해볼까. 이탈리아 사람들은 그녀를 카르멘타라 부르지. (...) 그곳에서 그녀는 노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팔라티누스 언덕이라 불렀지. 로마 시는 바로 이 언덕 위에 건설되었단다. 그 고장 사람들이 짐승처럼 무지한 것을 보고는 그들의 정의에 따라 법을 제정했단다. 그러니까 그녀는 장차 모든 법의 원천지로 유명해질 그 나라에서 최초로 법을 반포한 셈이지. (...)

   그녀는 다른 나라들과는 완전히 다른 글자들을 발명했어. 그게 오늘날 우리가 쓰는 a, b, c, 라틴어의 글자들이지. 그녀는 글자의 배열, 모음과 자음의 구별, 문법이라는 학문의 모든 기초를 놓았어."

(p.147) "(...) 덕분에 남자들은 (...) 무지의 상태에서 벗어나 개명하게 되었으니 (...) 그렇게 해서 과거와 현재를, 때로는 미래까지도 아는 것이란다."

(p.150) "존귀한 카르멘타가 드높은 지성으로 그들의 스승이 되어 그들이 그처럼 자고하는 학식을, 즉 고상한 라틴 어문을 가르쳐주었으니 말입니다."


처음 이 장을 읽었을 때는 놀랄 수밖에 없었고, 믿지 않기도 했다. 로마법과 로마문자를 창안한 사람에 관한 전설이 서양 문화에서조차 그리 드물게 언급되다니? 사실이라면 정말 굉장한 일이다. 





6) 15세기의 채식사 아나스타지. (p.158)


"저도 아나스타지라는 여성을 아는데, 그녀는 채색 삽화와 작은 풍경화를 그리는 데 재주가 있어서 (...) 파리에도 그녀를 능가하는 이가 하나도 없답니다. 책의 꽃 장식이며 세밀한 장식을 그녀보다 더 잘 그리는 이는 아무도 없지요. (...) 이 일은 제가 경험을 통해 잘 알지요. 그녀는 저를 위해서도 책 가장자리를 그려주었는데, 다른 장인들이 그린 것들 가운데서 단연 돋보인다고들 했답니다."


중세 여성 채식사에 관한 추가 자료를 읽어보고 싶다. 시공디스커버리 시리즈의 <책> 중에서 여성들의 채식업 종사에 관한 언급을 짧게 본 것도 같은데, 정확한 확인이 필요하다.     키워드: 여성과 채식(illuminator)





7) 중세의 이상적 여성상은 여장부였다?


166쪽 역자 주석에 나오는 언급이다. 중세의 이상적 여성상이 여장부였다는 말이 사실인지, 그렇다면 '집안의 천사'라는 근대 부르주아지 여성상의 등장 전에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 전혀 다른 여성상이 존재했던 것인지, 추가 자료를 읽어보고 싶다. 중세 귀족들이 친모에게 육아의 의무를 강하게 떠맡기지 않았다는 것은 유력한 이론이나, 그것이 '여장부 여성상'과 관련이 있는지는 또 다른 이야기다.  





8) 결혼은 고역이라는 남자들의 말에 대하여. 


크리스틴 자신의 목격에서 우러나오는, 너무나 생생한 묘사이기 때문에 길지만 전문을 싣는다. 중세 여성들이 흔히 겪던 가정폭력의 장면이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반대로 말해, 오늘날이 오백 년 전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해야 할까. 


(p.217) "아, 친애하는 크리스틴! 너도 알지 않느냐.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가혹한 남편 때문에 사라센인들의 노예보다 더 핍박을 당하며 결혼이라는 족쇄에 묶여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지 말이다. 맙소사! 선량하고 정숙한 여인들이 까닭도 이유도 없이 얼마나 매질을 당하고, 부당한 일을 당하며, 치욕과 모욕을 당하는지! 아무런 항의조차 하지 못하고 예속과 학대를 견뎌내는지! 어디 그뿐이냐. 아내들은 아이들로 가득한 집 안에서 굶주리고 헐벗어 죽어가는데, 남편들은 방탕한 곳에서 게으름을 부리며 온 시내의 술집에서 바람을 피우지! 그러다가 집에 들어오면 마누라를 패니, 그게 그녀의 저녁밥인 셈이야. 어디 내 말이 거짓말인지 말해보렴. 네 이웃 여자들도 그런 신세인 것을 보지 않았느냐?" 

"(결혼이 남자의 고역이라는) 그 모든 어리석은 이야기들은 진실을 무시하고 지어낸 헛소리에 지나지 않아. 왜냐하면 여자들이 남자들을 다스리는 게 아니라 남자들이 여자들을 다스리기 때문이지!" (p.218)


얼마나 예리한 통찰인가. 같은 권력관계가 21세기에도 현재진행형으로 지속된다는 현실이 허무할 뿐이다. 






5. 나가며


지금까지 본 바와 같이, 크리스틴의 여성 옹호론이 현대적 의미의 페미니즘과 완벽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가령, 그녀는 여성의 약한 체력에는 법정 일이 맞지 않는다는 등의 전통적 차이론을 답습하기도 한다. (단, 이 부분은 중세의 법정 일이 오늘날 같은 독립된 사법이 아니라 실제로 체포 및 처벌을 집행하는 과정까지 포함하고 잇었음을 인지하고 이해되어야 한다)


그러나 당시에는 도달할 수 없었던 현재의 잣대로 과거를 재단, 평가하는 것은 학문적 엄밀함이라기보단 시대착오적 태도에 가깝다. 따라서 현대 페미니즘의 보다 비판적이고 진보적인 형태를 띠고 있지 않다고 해서 크리스틴의 저작을 '反 페미니즘'이라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500년 전, 15세기 중세 말이라는 시점에서 본격적인 여성 옹호론을 펼치고, 사회에 만연해 있던 여성 비하 담론을 격파하는 책을 저술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서양 페미니즘 역사의 중요한 지표이자 효시라고 평가하는 것이 더 타당하지 않을까. 


책 말미에서 부인의 입을 빌려 크리스틴 자신을 위로하는 대화에서도 그녀의 뜻과 아쉬움이 느껴진다. 


"장차 사람들은 네 저작에 대해 네가 살았을 때보다 더 많이 말하게 될 게다. 왜냐하면, 다시 말하지만, 너는 때를 못 만났거든. (...) 하지만 네가 죽은 후에는 지혜롭고 훌륭한 군주가 나타나서, 네 책들을 보고는 네가 자기 시대에 살았기를 바라고 너를 만나보고 싶어할 게야." (p.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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