됭케르크 해변 기록사진, 1940년 5월.
됭케르크 해변 기록사진, 1940년 5월.





※ 혹시 모를 스포일러 주의. 






총평: 호불호는 갈릴 수 있으나, 누구도 잘 만들었단 사실을 부정할 순 없는 영화. 


만약 이 영화의 단점 몇 개를 비약해서 전체를 평가하는 사람이 있다면, 세상에 파고들면 단점 없는 영화는 없다는 사실을 지적해주고 싶다. <덩케르크>는 영화라는 매체, 영상 매체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모두 보여줬다. 기존의 놀란 영화에 비해서 대사 분량을 눈에 띄게 줄이는 대신, 영상과 음악, 배우들의 신체 연기로 내용을 진행시킨다. 따라서 현재 번역가의 실력을 두고서 논란과 비난이 일고 있긴 하지만, 과장을 보태서 말한다면 대사 한 두 개 정도는 놓쳐도 얼마든지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는 영화다. 단, 됭케르크 철수 작전에 관한 기본 지식-2차 대전 중, 프랑스 전선에 고립된 영국군을 영국 정부가 민간성을 동원해서 구출한 작전-은 알고 가는 것이 좋다. 이는 사건의 결과를 몰라서 다음에 전개될 이야기에만 급급해 하다가 그만 그 순간의 컷을 놓칠까 싶은 염려에서 붙이는 말이다. 마치 사도세자의 결말을 모르고 <사도>를 보러 가거나, 왕자의 난 결말을 모르고 <정도전>, <용의 눈물>을 볼 경우에 끝에 당황하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분명한 전쟁영화임에도 치열한 전투, 영광스런 승리나 패배보다는 생존에 집중한 이야기다. 인격의 탈을 쓴 적군이 아닌,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의미에서의) 전쟁과 포위 상태라는 '재난'에 맞닥뜨린 사람들의 이야기다. 폐쇄 공포증이 있는 사람이라면 관람을 비추하고 싶을 만큼 실감 나는 포위 상황, 넓은 공터에서 갇힌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전율이 돋을 만큼 현실처럼 재현해내는 영상. 그리고 심작 박동에 맞춰서 뛰는, 사운드와 효과음이 구분되지 않는 음악.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덩케르크>는 영화라는 매체로 선보일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선보인 셈이다.


역사적 고증에 관해 짧게 적자면, 2차 대전 당시 폭격전 경험이 있는 병사들의 회고를 종이에서 화면으로 그대로 옮긴 것 같은 현실감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영화 초반부에 나오는 해변 폭격 장면에서, 멀리서부터 엔진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자 30만 인파가 순간적으로 철모를 부여잡고 그 자리에 죽은 듯이 엎어지는 장면은, 마치 한 편의 연출 같지만 (참전자들이 남긴 기록에 따르면) 모두 실제 상황이다. 흔히 전쟁 영상물에서 재현되는 것과 달리, 2차 대전의 폭격전에서 살아남는 가장 효과적이자 유일한 대처법은 무조건 땅에 엎드리는 것이었다고 한다. 비행기의 엔진 소리만 듣고 적기와 아군기를 판별해내는 장면도 영화적 과장이 아닌 실제 증언과 일치하는 일화다. 영화 후반부에서 연료가 떨어진 스핏파이어의 프로펠러가 공중에서 그대로 멈춰진 후, 활강 비행하는 장면은 지금 생각해도 긴장으로 심장이 뛴다.


최근 <홈커밍>을 본 뒤에 이 영화를 보려니까 일종의 경건함마저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이때 경건함이라 함은 영웅적 전투나 승리에 대한 경외가 아닌, 거대한 재난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를 볼 때 느끼는 종류의 경건함이다. 그러나 돌이켜 보건대, 대체 무엇이 (전쟁에서의) 승리란 말인가? 살아남고, 살리는 것이야말로 궁극적인 의미의 승리가 아닌가? 이렇게 생각해보면, '살아남음에 대한 경외'라는 내 표현도 그리 틀려 보이지만은 않는다. 적군과의 치열한 전투 대신, '재난으로서의 전쟁과 포위'에 주목함으로써 전쟁영화의 또 다른 경지를 성취한 영화. 세 가지 시점에서 진행되는 복잡한 사건을 단일 플롯으로 풀어내는 감독의 재주와 (이번 각본은 감독이 혼자 썼다고 한다), 긴 울림에 대한 여운이 남는다. 조연까지 잘생긴 (사실 이 영화는 특성상 주조연의 구분이 그리 뚜렷하진 않다) 캐스팅은 덤이다. 



덧붙임) 영화에 묘사된 작전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개인보다 공동체의 유익함을 홍보하는 영화인가 싶어 잠시 어색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게 역사적 사실인 걸 어떡하겠나. 1940년 프랑스 북쪽, 벨기에의 한 해변에서 사람들은 정말로, 설명하기 힘든 어떤 연민과 용기에 이끌려서 30만 명의 군인을 구했던 것이다. 이처럼 공동체의 의지라는 것은 회의로 가득한 우리 개인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종종 위대한 유익을 실현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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