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의 창경궁.
낮의 창경궁.

아직 더위가 찾아오기 전의 일이다. 5월 막바지에 모처럼 미세먼지 없이 굉장히 맑은 날이 있었다. 근 몇 달 만에 목격하는 파란 하늘이어서 도저히 놓칠 수 없었다. 해가 떨어질까 얼른 작은 가방만 챙겨서 창경궁으로 갔다. 도착한 다음에야 생각해보니, 평생을 서울에서 살면서 도시의 고궁 중 가본 곳이 드물었다. 경복궁과 덕수궁만 조금 알고 있으니, 창경궁과 창덕궁의 위치조차 제대로 알 리 없었다. (두 궁이 바로 붙어있다는 것도 이 날 처음 알게 되었다.) 굳이 창경궁을 고른 것에 특별한 이유가 있던 것은 아니다. 이 복잡한 거대 도시에서 인파를 피해 녹음을 보기에 좋은 곳은 역시 고궁일 텐데, 언젠가 창경궁이 가장 예쁘다는 얘길 들었던 게 기억났다. 그렇게 짐도 사진도 가볍게 창경궁 나들이를 다녀온 기록. 









운이 좋았다. 미세먼지가 싹 사라져서 남산타워까지 보인다.
운이 좋았다. 미세먼지가 싹 사라져서 남산타워까지 보인다.

운이 좋았다. 미세먼지가 싹 가신 덕분에 남산타워까지 볼 수 있었다.











처마 01.
처마 01.





처마 02. 서유기의 모험자들.
처마 02. 서유기의 모험자들.






처마 03.
처마 03.


예전에는 '처마가 한국의 미'를 보여준다는 말을 잘 이해를 못 했다. 붉은색, 다홍색, 녹색으로 채색한 중국이나 일본의 처마에 비하면 너무 간단하고 심심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날 창경궁을 거닐다가, 문득 처마가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직선으로 뻗지도, 힘없이 처지지도, 너무 높이 솟아버리지도 않고, 장인의 붓꼬리처럼 하늘 위로 슥, 치솟은 곡선이 굉장히 세련되게 느껴진 것이다. 화면 속에 고정된 사진이 아니라, 그 아래를 지나갈 때 비로소 처마의 매력은 발견하게 되나 보다. 


그건 그렇고, 경복궁-운현궁에 이어서 창경궁의 처마 위에까지 서유기의 등장인물들이 올라타 있다. 성리학의 나라 조선에서 처마마다 손오공과 사오정, 저팔계가 앉아있던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통명전에서 01.
통명전에서 01.
통명전에서 02.
통명전에서 02.


낮에 창경궁을 방문하면 좋은 점은 이렇게 통명전 내부를 공개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근처에 가보니 이미 다른 사람들이 앉아서 쉬고 있길래, 나도 같이 발을 얹었다. 바람이 솔솔. 통풍전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뒤편 언덕에서.
뒤편 언덕에서.




창경궁 분기점의 담벼락.
창경궁 분기점의 담벼락.


이유는 잘 모르지만, 어디를 가나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풍경이 있다. 풀이 담벼락을 타고 자라는 장면도 그중 하나다. 히타에서든 세비야에서든 버리지 못한 그 버릇이 창경궁에까지 따라왔다. 어쩌면 닫힌 공간이 주는 안정감에 끌리는 걸까. 








춘당지 01
춘당지 01
춘당지 02
춘당지 02




물결
물결


창경궁에는 춘당지라는 이름의 연못이 있다. 본래 왕비가 직접 농민들의 양잠(누에치기)를 경험하며 백서의 노동에 대한 감사함을 배우는 누에 밭이었다. 고종 때 이 누에밭에 물을 끌어오면서 춘당지라는 이름의 큰 연못으로 변했다. 


위의 사진은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한국적인' 나무 풍경이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나는 연못과 그 주위에 늘어진 버드나무를 볼 때마다 가장 한국적인 풍경이라고 느낀다. 아마 어릴 때 자주 가던 공원 호수에 있던 나무가 버드나무여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어느 순간부터 내게 한국의 나무란 소나무의 직선이 아니라 버드나무의 둥근 곡선이 되었다. 







잉어도 보고.
잉어도 보고.









춘당지에는 출처 불명의 다각다층탑 하나가 있다. 척 봐도 한반도에서 난 것은 아닌 것 같은 모양. 무엇보다 조선 왕비의 궁궐 안에 불탑을 세웠을 리가. 의아하게 생각하던 차, 설명 판넬을 보니 조선시대에 들어온 중국 원명대 탑이란다. 어쩌다가 라마교 냄새가 물씬 풍기는 불탑이 여기까지 흘러들어왔는지, 정확히 밝혀지진 않았다고 한다. 









나무가 그린 아치.
나무가 그린 아치.


담벼락과 녹음에 이어서, 절대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풍경 2: 아치문 사이로 엿보이는 야외 풍경이다. 돌로 쌓은 회랑과 문은 없지만, 대신 나무가 아치를 그려냈다. 이번에도 버드나무의 휘어진 가지가 술 장식이 된다. 







야간개장용 청사초롱.
야간개장용 청사초롱.

정문으로 돌아가는 길, 청사초롱이 길게 달려 있었다. 밤이 되면 불을 켜서 야간 조명 대신으로 사용하는 것이었다. 정말 간만에 보는 청사초롱을 놓칠 수 없었기에, 며칠 뒤 가이드 겸 야간 티켓을 끊고 창경궁을 재방문했다. 







밤의 춘당지.
밤의 춘당지.


밤에 창경궁을 방문하는 것에는 각기 장단점이 있다. 장점은, 낮에는 볼 수 없는 검푸른 창경궁을 만날 수 있는 것. 단점은, 그 색깔을 온전히 카메라에 담기 어렵다는 점이다. 어쩔 수 없다. 폰카로 찍으면서 많은 걸 바랄 수는 없으니. 그래도 밤의 춘당지는 청사초롱처럼 청색과 다홍색, 녹색이 골고루 섞여 있었다. 


또 다른 단점은 야간에는 통명전의 내부 출입이 막히고, 대신 그 자리에서 야외공연이 열린다는 점이다. 내가 방문했던 날에는 퓨전 국악 공연이 40분 정도 진행됐는데, 음악도 음악이지만 통명전 처마 위로 은은하게 물들던 색색의 조명이 더 기억에 남는다. 





마지막으로 밤의 춘당지 02. 조만간 또 가게 될지도 모르겠다. 







cocktail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