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야간비행

발행 연도: 2017년 6월

커플링: 하워드버키(메인), 스팁버키(언급), +토니

성향: 2차 BL, 전연령가

키워드: 단편, 퍼벤au, 데이트, 비행기, 파일럿, 조용하고 잔잔함, 캐릭터 사망 네타 

수록: 2017.06 버키른 단편 재록집 <야간비행> 중 발췌 



* 하늘과 비행기 관련 연성 재업로드 기간 (aka 비행기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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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위로 올라가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는 걸 알아요?



유능한 조종사인 스타크는 마음에 드는 사람이 생길 때마다 이런 대사로 꼬여냈다. 제임스가 그런 헌팅 대사의 다음 목표가 된 것은 순전히 백만장자의 변덕 탓이었다. 어느 날 납작한 비행 모자를 쓰고서 거들먹거리며 나타난 스타크는 대수롭지 않은 어조로 병장에게 말을 붙였다.


“오늘 밤에 시간 나요?”


반짝이는 치아를 자랑하는 미남자의 면상을 보자마자 제임스는 한 대 쳐주고 싶단 생각부터 들었다. 대체 스타크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느냐고 물어도 소용없다. 본래 군인이란 존재가 그렇다. 부대 안에서 육 개월만 푹 썩어도 반질반질한 낯빛으로 돌아다니는 민간인을 보면 저절로 시기와 아니꼬워하는 편견이 튀어나가고 만다. 족히 일 년을 그 안에서 숙성된 제임스로서는 번듯한 그 모습을 보고 떨떠름한 것도 어쩔 수 없는 반응이었다.


“뭡니까?”


무뚝뚝한 반응에도 스타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방금도 한 차례 비행을 마치고 온 하늘의 정복자는 유려한 미소를 지으며 조잘댔다.


“별구경 좀 시켜주려고요.”

“지금 나 머리 젖는 거 안 보여요? 비 오는데 무슨 별구경을 합니까.”


제임스가 솔 바늘처럼 직선으로 내리 쐬는 빗줄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는 간만의 소중한 끽연이 심심한 한량의 헛소리에 방해받는 바람에 심히 기분이 좋지 않은 참이었다. 눈뜰 때부터 잠들 때까지 다른 사람과 부대끼며 생활해야 하는 군대에서 혼자 여유롭게 담배를 태우는 시간이란 거금을 받고도 바꾸기 싫은 값진 사치였기 때문이다. 모처럼 로저스가 없는 틈을 타서 그 시간을 즐기고 있던 제임스는 껄끄러운 표정으로 남자를 흘겼다.


“비는 늦은 오후쯤이면 다 그칠 걸요. 뭘 그렇게 경계하고 그래요? 한 달째 여기 갇혀있다 보니 나도 심심해서 그러는 거니까.”


스타크가 부대 안의 유일한 민간인인 주제에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은근히 악수를 청하는 자세에서는 자신만만함이 넘쳐흘렀다. 그와 단둘이 있어본 적이 처음인 제임스는 입에 담배를 문 채로, 눈앞에 내밀어진 손을 조용히 내려다봤다. 스타크 같은 비전투 VIP가 스티브나 카터 요원이라면 몰라도 일개 병사에 지나지 않는 자신과 굳이 아는 척을 하려고 하는 것이 어색했다. 그는 발걸음이 저절로 뒤로 물러나려는 것을 체면과 자존심으로 겨우 막았다.


“……왜 그러는데요?”


기본적으로 호감형인 제임스의 얼굴 위로 껄끄러워하는 기색이 여과 없이 떠올랐다. 그런 반응이 기분 나쁠 법도 한데, 곳간이 넉넉하면 마음도 여유로워지는 건지 세기의 천재는 유들유들한 웃음으로 넘길 뿐이었다.


“데이트 좀 하자고요. 멋질 겁니다. 보증하죠.”


모자 때문에 눌린 머리를 격 없이 흐트러뜨리면서 그렇게 말하는데, 그 모습이 꽤 세련돼 보여서 제임스는 어쩐지 지는 기분이었다. 그는 뚱한 표정으로 잇사이에 문 담배를 깨물거렸다. 어딘가 못마땅함이 남아있는 듯한 반응을 확실하게 쓸어버린 건 스타크의 이어지는 한 마디였다.


“어차피 로저스 대위도 오늘은 외박으로 자리 비우잖아요. 카터 요원이랑.”


타인의 껄끄러운 부분을 제멋대로 건드리는 행동이 짜증을 부추길 만도 한데, 악의 없으리만치 무구한 눈빛이 직설마저 가려버려서 선뜻 화를 낼 수도 없었다. 능력이라면 신기한 능력이었다.


스티브. 제 몸처럼 익숙했던 이름이 요즘 따라 제임스에게는 아픈 손가락 같았다. 내려놓자니 슬프고, 들고 있자니 두 팔이 떨어질 것처럼 아픈. 방금도 그랬다. 익숙한 세 음절이 귓가에 꽂히는 순간 곧바로 아침에 막사 주위를 서성이다가 마주친 스티브와 요원이 떠올랐다. 삭막한 전선에서 싹튼 봄기운 같던 미소. 생애 처음으로 피어나는 그 애의 행복을 목격하고서 시기나 하는 자신이 추하게만 느껴졌다.


우울한 회상의 틈을 깨트린 것은 바로 그 스티브가 아니었으면 이렇게 대화할 일도 없었을 남자였다.


“갑시다. 그 치들이 부러워할 만큼 멋지게 놀아보자고요.”


비뚜른 미소가 약해진 심장의 빗금을 파고들었다.









오전부터 내리던 빗줄기는 일몰이 시작되면서 점차 가늘어지더니, 비행장에 도착할 때 즈음엔 거의 멎어 있었다. 스타크의 말대로였다. 날씨라면 기상청처럼 꿰고 다니는 현직 군인도 놓친 변덕을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를 일이다. 약속한 대로 정시에 맞춰서 도착한 제임스는 컨테이너 창고와 부품이 널려 있는 비행장을 둘러봤다. 활주로와 차고가 따로 구분돼 있지 않은 작은 비행장이었다. 움직이는 존재라고는 정비공 몇뿐이었다. 정비공들은 꼬리가 날아간 선체를 수리하느라 정신이 팔려 있었다. 벽이며 바닥에 그려진 낯선 항공 마크를 본 보병은 모르는 세계에 함부로 발을 들인 것 같아 문득 어색해졌다.


게이트 근처에서 일 없이 서성이던 제임스를 구해준 사람은 스타크였다.

“아, 딱 맞춰 왔네요.”


시간을 확인하는 것. 민간인은 약속 시간이 지켜진 것이 만족스러웠는지 씩 웃었지만, 군인한테는 몸에 배인 습관이었다. 제임스는 별 거 아니라는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서 이제 뭘 합니까? 여기나 진지나 똑같은 하늘이잖아요.”

“안 그렇게 생겨선 의심이 참 많네. 자, 이쪽으로.”


앞장선 스타크를 따라서 격납고를 지나 활주로를 가로질렀다. 드문드문 형광안료를 칠한 아스팔트 도로 위를 건너는 기분이 낯설었다. 일직선으로 뻗은 활주로는 어림짐작했던 것만큼 길지 않았다. 절반쯤 건너자 벌써 마지막 유도등이 보였다. 그 다음부터는 황무지였다. 전형적인 기지 풍경이었다.


이 황량한 곳까지 와서 굳이 별을 봐야하나 회의가 들 무렵, 앞장 선 스타크가 갑자기 방향을 꺾었다. 그러자 사각지대에 가려서 보이지 않던 단엽 프로펠러기 하나가 나타났다. 전장에서 흔히 보던 폭격기보다 아담한 높이의 2인승 우편기였다. 군용기에 으레 그려놓기 마련인 야한 여자그림이나 형형한 도장도 없는 깔끔하고 단정한 물건이었다. 대신 소유자의 이름이 검은 페인트로 미끈하게 쓰여 있었다. 군용 기지에 자가 소유의 비행기를 주차해놓을 만한 인물은 제임스가 아는 사람 중에 하나밖에 없었다. 일개 병장에 지나지 않는 제임스는 어쩐지 약간 허탈해졌다.


“에어쇼라도 보여주려고요?”

“별 보여준다고 했잖아요.”


그렇게 대꾸하더니 스타크는 한참을 조종석 짐칸을 뒤지느라 여념이 없었다. 한참 후에 돌아선 그의 손에는 비행모자와 보안경, 그리고 스카프 한 벌이 들려 있었다.


“받아요.”

“뭡니까, 이건?”


난데없이 낯선 장비들을 받아든 제임스가 떨떠름한 태도로 물었다. 당혹스러워 하는 그를 본 스타크는 씩 웃으며 조종석 옆자리를 가리켰다. 목에 걸고 있던 고글은 어느 새 다시 눈에 걸친 채였다. 둥근 테두리가 영화에서나 보던 똑같았다. 자세히 보니 모피 달린 항공점퍼까지 걸치고 있다. 그야말로 ‘진짜’ 조종사들과 다를 바 없는 차림새였다. 몇 주 째 빨지 못해서 헤지고 닳은 군복을 입은 자기 꼴과 비교되면서 제임스는 한층 기분이 가라앉았다. 그러나 스타크는 아랑곳하지 않는 기색이었다.


“거추장스럽다고 빼지 말고 스카프 꼭 둘러요. 위로 올라가면 추워지니까.”

“멋없게시리.”


제임스는 속 빈 투정을 부리면서도 착실히 스카프로 목을 가렸다. 하늘하늘한 천이 나풀거리는 모양이 꼭 할머니 치맛자락 같았다. 그는 다른 대원들한테 들키면 일 년치 놀림감이라고 생각하면서 마지못해 커다란 기체 위로 발을 올렸다.


제임스가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곧바로 엔진에 시동이 걸렸다. 거대한 철골이 부르르 우는 소리를 내면서 첫 호흡을 내뱉었다. 비행기를 타는 것이 처음이었던 병사는 호기심을 누르지 못하고 아직 열려 있던 창문 사이로 슬쩍 팔을 뻗어보았다. 손끝에 닿는 날개가 강판처럼 얇았다. 엔진 화력 때문에 뼈대가 진동하는 것을 구경하고 있으려니까, 과연 이런 연약한 철판지 몇 개로 지상을 박차오를 수 있는 걸지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초행자가 의심의 안개에 쓰인 것도 잠시, 스타크의 손이 조종간을 움켜쥐었다. 그 단단한 손이 승객의 걱정을 무마시키기라도 하듯이, 몰아치는 바람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앞을 향했다.


“자, 이제 출발합시다. 팔 집어넣어요. 달리는 동안 시속이 300까지 오르니까.”


그 말이 끝나자마자 5톤 무게의 금속이 부르르 떨면서 생명력을 과시했다. 잠시 후 복잡한 눈금이며 계기판 따위가 수십 개씩 달려있는 조종간 위로 하나 둘씩 불빛이 들어왔다. 스타크의 손이 몇 번 그 위를 돌아다니더니, 기체가 마법처럼 전진하기 시작했다. 이제 병사의 호기심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별천지로 옮겨가 있었다. 제임스는 방금 전까지 의심의 안개에 흠뻑 빠져있던 것도 잊고서, 전방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광경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관목이 흔들리는 황무지가 빠른 속도로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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