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중간 중간 덕질 관련 메모 나옵니다. 제가 읽으려고 정리한 글. 








총평: 올컬러로 복원한 영상이 가장 큰 장점이다. 주로 흑백으로 접했던 2차 대전기의 영상에 색을 입히니까 자연스럽게 집중도와 전달감이 높아진다. '흑백 사진과 흑백 영화로 점철된 사료들은 역사를 우리 시대와 무관한 일로 느끼게 한다'던 미셸 파로의 푸념이 옳았다. 돌이켜 보면, 겨우 70여년 밖에 지나지 않은 일들이다. 흔히 2차 세계대전을 두고서 '우리 시대를 형성한 사건'이라고 부르면서도, 그동안 흑백사진 속에 찍힌 모습만 보고서 고루하고 약간은 진부한 과거로 치부한 건 아니었는지. 영상 1분을 복원하는 데 하루가 꼬박 걸렸다는 제작진의 말을 증명하듯이, 여느 역사 다큐멘터리와 다르게 전체 상영 시간의 90% 이상이 1차 사료(영상)로 구성돼 있다. 그만큼 모자이크 처리 하지 않은 시신 장면이 나올 때는 가감 없이 비참함을 느끼고, 폭격 장면은 소름끼치는 전투기 소음이 더해지면서 공포감이 배가 된다. 2차 세계 대전의 기원과 전개를 시간 순으로 잘 정리했으며, 필요한 부분에서 등장하는 지도 그래픽도 간단하며 전달력이 높다. 모처럼 핵심과 세부를 고루 갖춘 2차 대전 다큐멘터리를 만날 수 있어 반갑다. 늘 그렇듯이, 6시간의 상영 시간 동안 나를 가장 매혹시킨 것은 영상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사람들의 행동과 기록들이다. 





베를린에서 공연하는 독일의 마를렌. 1930년대.
베를린에서 공연하는 독일의 마를렌. 1930년대.








1부 히틀러의 유럽 침략 ~ 2부 프랑스의 참패



† 39년의 수데텐 합병-폴란드 침략부터 40년 중반 프랑스 진격까지의 일 년을 다룬다. 특히 2차 대전의 별명으로 흔히 '가짜 전쟁'(영국), '웃기는 전쟁'(프랑스)라고 불렀던 이유를 처음 알게 됐는데, 영/프의 선전포고로 39년 9월 전쟁이 시작됐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일 년 간 어정쩡한 교착만이 지속되는 것을 비웃어 붙인 별명이었다. 그러나 약 일 년 간의 교착 상태는 독일군이 벨기에-프랑스-독일 국경에 인접한 아르덴 숲을 통과해서 기습 공격을 성공시키면서 곧 깨지게 된다. 




39년 영국군의 유행가, '지크프리트선 위에 빨래를 널게 되리'. 지크프리트선은 독일의 요새 명칭. 병사가 쓰고 있는 글자는 Vive La France (프랑스여 영원하라)
39년 영국군의 유행가, '지크프리트선 위에 빨래를 널게 되리'. 지크프리트선은 독일의 요새 명칭. 병사가 쓰고 있는 글자는 Vive La France (프랑스여 영원하라)




독일군은 마지노선 대신 아르덴 숲을 돌아 기습 공격하고, 이후 프랑스는 속수무책으로 던커크까지 밀려난다.
독일군은 마지노선 대신 아르덴 숲을 돌아 기습 공격하고, 이후 프랑스는 속수무책으로 던커크까지 밀려난다.


† 39년 개전 초기까지만 해도 장교들이 말을 타고 다니던 풍경은, 고작 일 년 후인 40년 중바이 되자 탱크와 트럭을 타고 이동하는 사병들의 풍경으로 바뀐다. 유럽의 도시들 위로 독일 폭격기가 폭탄을 투하 하고 지나간다. 그 일 년 사이 전쟁은 우리가 아는 '현대(전)'의 모습을 만들어낸다.  

   영/프의 선전포고 직후 징집령이 떨어진 프랑스의 기차역은 25년 전과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14년의 북역에는 출정 가는 병사들을 축복하는 꽃과 환호가 가득했으나, 39년의 북역에는 떠나는 이와 떠나보내는 이의 두려움이 팽배해 있다. 2차 대전은 시작부터 환영받지 못한 전쟁이었다. 또 다른 독일 병사의 어머니가 들뜬 아들에게 편지를 보낸다. '이 전쟁은 범죄'라고 칭하는 편지 내용을 보아, 당시 유럽인들 또한 20년 만에 다시 시작되는 전쟁(이때까지만 해도 아직 세계대전이라는 명칭은 쓰이지 않았고, 14~17년의 전쟁도 '대전쟁'이라고만 불렸다)을 참담하게 기다렸음을 알 수 있다. 



† 독일의 폴란드 침공 소식이 타임스퀘어 전광판 위로 지나간다. 뉴욕 시민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두려운 눈으로 라디오 방송에 귀를 기울인다. 그러나 미국 국내에서는 여전히 고립주의가 여론을 주도한다. 나치 독일의 팽창주의가 첫발을 디딘 단치히 침략 시기까지도, 미국에서는 파시스트, 나치주의자, 정치인 다수가 고립주의를 지지한다. 그런 와중에 존 F. 케네디는 유럽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연설을 하며, FDR은 국가로서의 미국은 중립이나, 미국인 개개인의 양심에까지 중립을 명할 수는 없다고 선언한다. (정치적으로 굉장히 잘 짜인 연설이었다.) 이후 42년이 되면 미국은 일본의 진주만 공습에 응해서 연합군의 주요 세력으로 참전하게 된다. 그 3년 사이에 미국인들의 유럽 전쟁을 바라보는 관점이 어떻게 변한 것일까? 다수 여론이었던 고립주의자들과 FDR, 존 F. 케네디가 달랐던 이유는 무엇이었나? 아직 미국이 '세계경찰'로 등장하기까지는 몇 년의 시간이 남았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 






바르샤바 함락 직후, 루스벨트의 고립주의 선언. 그러나 속에 뼈가 들어있다.
바르샤바 함락 직후, 루스벨트의 고립주의 선언. 그러나 속에 뼈가 들어있다.






† 히틀러가 전쟁을 시작하게 된 과정은 다시 봐도 당황스러울 만큼 무모하고 어리석다. 영/프 침공을 노리는 동시에 노르웨이, 네덜란드, 벨기에를 일제 공격한다는 비합리적인 판단이 단적인 예다. 이에 대해 A.J.P는 히틀러가 처음부터 영국, 프랑스 등의 강대국과 직접 전쟁을 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으며, 다만 독일이 강하게 나가면 협상에서 유리할 것이라는 판단착오를 내린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히틀러 개인 입장에서는 끊임없는 팽창이 있어야만 전체주의 권력이 유지되므로 전쟁에 열을 올렸다고 쳐도, 독일 대중은 무엇 때문에 이렇게 무모하리만치 팽창에 눈이 멀었던 걸까? 히틀러 개인적 측면에서의 설명 외에도 독일인의 집단적 의식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아직 명쾌한 설명을 찾진 못했다. 다만 아렌트가 말했던 '지도자를 갈아치우며 계속되는 전체주의', '팽창을 위해 팽창하는 익명 대중(mob)'이라는 이미지가 떠오를 뿐이다. 다시 전체주의의 기원을 들추어볼 때가 온 것 같다. 전체주의의 기원을 찾는 일은 불가해한 미스터리 같다. 





† 독일 폭격기인 슈투카의 공격 영상을 봤다. 40년 독일 공군의 프랑스 공격 중, 실제로 도시를 폭격하는 장면을 나치 측 선전 영화 감독이 기록한 영상이었다. 독일 폭격기 부대가 애용한 '급강하 폭격'이란, 빠르게 날아가다가 목표 지점에 도달하면 수직 강화, 연속으로 폭탄을 떨어트리는 공격 방식이다. 이때 발생하는 비행기의 엔진 소리나 폭탄이 떨어질 때의 굉음을 계속 듣다 보니까 저절로 신경이 곤두서는 기분이었다. 왜 셸 쇼크가 발생하는지 절절히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덩케르크에서 주인공 토미가 포탄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죽을 것처럼 귀를 막고 웅크렸던 이유도 알 것 같았다. 





지상을 향해 낙하하는 슈투카.
지상을 향해 낙하하는 슈투카.



공습에 휘말려 죽어버린 소.
공습에 휘말려 죽어버린 소.






† 덩케르크 철수 작전 당시, 프랑스군 일부도 같이 도버로 철수했었다는 사실. 포위된 40만 명 중 영국군이 21만, 프랑스군이 12만이었는데 이들은 다이나모 작전 후반부에 영국 함선을 타고 같이 철수했다고 한다. 그 후에 곧바로 프랑스로 귀국해서 다시 전투에 투입되긴 하지만. 만약 영화에서 깁슨도 그 난파선을 타지 않고 며칠 더 버텼다면 무사히 바다를 건널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 슬퍼진다. 


또한 다이나모 작전 성공 후의 클립에서 말로만 듣던 영국인들의 차 사랑을 엿볼 수 있었다. 배급 주전자가 오자마자 배낭에 묶어둔 철제 찻잔을 꺼내든다. 병사는 직사각형 수통 외에 나름 찻잔 모양을 흉내낸 철제 컵을 따로 또 휴대하고 있었다. 손때 묻은 철제 찻잔이라니. 심지어 같이 탈출한 프랑스 군인에게도 차를 배급해주는 듯 했다. 



아르덴에서 밀려나 됭케르크까지.
아르덴에서 밀려나 됭케르크까지.




됭케르크 해변의 군인들.
됭케르크 해변의 군인들.







도버로 가는 배 위에서.
도버로 가는 배 위에서.






병사의 배낭에 철제 찻잔이!
병사의 배낭에 철제 찻잔이!



차는 찻잔에 마셔야지 + 앞에 있는 병사가 철제 찻잔을 꺼내고 있다
차는 찻잔에 마셔야지 + 앞에 있는 병사가 철제 찻잔을 꺼내고 있다





토스트를 먹고 있는 병사들. 어깨에 찻잔을 매달고 있다.
토스트를 먹고 있는 병사들. 어깨에 찻잔을 매달고 있다.



이후, 됭케르크에서 철수한 병사들은 재무장센터로 보내져서 재정비 후 다시 유럽과 북아프리카로 파견된다. 영화에서는 살아남은 것으로 나오는 알렉스와 토미도 아마 직후 SOE로 입소 후, 재배치되지 않았나 싶다. 

재무장센터로 가는 열차 앞에서 두 병사가 서로 면도를 해주고 있다. 칠십 년 전에도 면도기 모양은 같았다. 피폐한 사건의 연속 중에 모처럼 등장한 평화로운 풍경. 







† 다이나모 작전 직후, 처칠은 국내의 패배주의 진영을 겨냥해서 다소 냉정한 연설을 한다. '우리는 해변에서, 상륙지점에서, 들판에서, 거리에서, 언덕에서 싸울 것입니다. 결코 항복하지 않을 겁니다.' 더욱 심해질 전황을 앞둔 지도자로서 취할 수 있는 최선의 태도였으리라고 본다. 이 작전을 기점으로 영국에서는 소위 '던커크 정신(Dunkirk Spirit)'이라고 부르는 의식이 생겨나고, 고조된 사기는 처칠을 향한 영국인들의 지지와 함께 전쟁이 끝날 때까지 지속된다. 섬나라라는 지리적 특성, 제국주의를 통해 축적한 막대한 부가 영국을 다른 유럽 국가들의 운명으로부터 멀리 떨어뜨려 놓는다. 




 



됭케르크를 점령한 기념으로 사진을 찍는 독일군.
됭케르크를 점령한 기념으로 사진을 찍는 독일군.


† 같은 행운이 프랑스에게는 찾아오지 않는다. 됭케르크는 점령됐고, 무솔리니가 통치하는 이탈리아는 추축국으로의 참전을 선언한다. 다가온 점령을 느끼고, 파리는 바르샤바나 암스테르담처럼 폐허가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무방비 도시를 선언, 항복한다. 유럽의 꽃, 파리 안으로 독일군의 행진이 시작되고, 수백 만의 벨기에-프랑스인들이 마지막 남은 탈출구인 남부를 향해 출애굽기를 시작한다. 


   그러나 기나긴 피난민의 줄 위로 슈투카는 다시 한 번 폭격을 퍼붓는다. 무방비 민간인에 대한 공포스러운 폭격. 이후 패배한 프랑스는 북부의 나치 점령지와 남부의 비시 자치 정부로 분할된다. 이제 유럽에서 나치 독일의 점령을 피한 나라는 영국 하나가 남고, 처칠은 무한 저항을 선언하며 적군의 손에 넘어간 프랑스 함선을 강제로 침몰시킨다. 




슈투카의 폭격을 피해 몸을 낮춘 피난민들.
슈투카의 폭격을 피해 몸을 낮춘 피난민들.
피난길에 잠든 프랑스 아이.
피난길에 잠든 프랑스 아이.








속도가 느려서 일단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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