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퇴고 없음. 파리어/콜린스 맞습니다. 물렁복숭아인줄만 알았던 콜린스가 사실 남자다운 딱딱복숭아라는 설정에 요새 꽂혔습니다. 













하늘을 활공하던 맹금도 바닥에 내려오면 굼뜬 길짐승이 된다. 반드시 틀린 말은 아니라고, 파리어는 생각했다. 지상으로부터 만 피트 떨어진 창공을 사냥터처럼 누비고 다녀도, 지상으로 내려앉는 순간 권속을 잃고 주저앉았으니. 새의 길고 곧은 날개가 중력에 붙잡혀서 바닥 위를 질질 끌리는 것처럼, 무수한 인간사는 파일럿의 사지를 휘감아 깊은 무기력의 우물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런 무기력의 위협은 특히 생명력으로 넘실거리는 존재 앞에 서면 더욱 깊어졌는데, 강한 태양 앞에서 그림자가 길이를 늘이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즐거움이나 사랑, 희망 따위보단 생존과 승리를 삶의 우선순위로 두고 살았던 파리어의 눈에 황금 같은 생기를 내뿜으며 다가오는 존재가 두렵게 비친 것은 필연적인 결과였다.


그는 타는 노을을 배경으로 자신을 똑바로 쏘아보는 동료를 무덤덤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대위님은 비겁하십니다.”


후임은 기합이 잔뜩 들어간 목소리로 호소했다. 꼿꼿이 핀 자세는 들리지 않는 흐느낌으로 떨리고 있었다. 비난의 화살을 받은 파리어는 그저 묵묵히 서서 원망을 받아들였다. 아무 대답도 돌려주지 않자, 후임은 고개를 뻣뻣이 쳐들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


“대위님은, 정말로, 비겁하십니다.”


한 마디씩 힘주어 말하는 목소리 뒤로 숨길 수 없는 긴장이 묻어나왔다. 부스스한 머리터럭이 황혼 빛을 받아 황금으로 반짝이는 것을 보며, 파리어는 애써 마른 목을 축였다.


“그만 가라.”


평소에도 소대원들을 긴장하게 하는 굵고 걸걸한 음성이 짧게 끊어냈지만, 노란 꼬맹이는 꿈쩍하지 않았다. 하긴, 그래야 내 매답지. 파리어는 기묘한 흐뭇함을 느끼며 생각했다. 자신이 맹금이라면 콜린스는 작은 매였다. 태풍에 휘말려 바다로 떨어져도, 그 기민함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는 작은 매. 그러나 융통성도 용기도 모자란 자신은 달랐다. 상관의 얼굴 위로 씁쓸한 체념이 떠오르는 것을 본 콜린스가 심문하듯 힘주어 말했다.


“저 좋아하시잖습니까. 그런데 왜 자꾸 도망치십니까.”


에두르는 시늉조차 없이 정곡을 찌르는 말에 파리어는 방한모를 쥐고 있던 손에 지긋이 힘을 주었다.


“그만 가라고.”


그는 부러 딱딱하고 무뚝뚝한 어조로 쳐냈으나, 마지막에 그만 옆으로 시선을 피하는 실수를 하고 말았다. 하늘에서나 지상에서나 빈 틈 없기로 유명한 남자치고는 너무 허무한 실수였다. 무딘 말 뒤에 가려진 흔들리는 마음. 그 갈등을 낚아챈 콜린스는, 희미한 빛처럼 비치는 기회를 망설임 없이 낚아챘다.


“저 그렇게 실없는 놈 아닙니다. 좋아하는 사람이 쳐다보는 것도 모를 만큼 모자라지 않아요.”


안 그래도 크고 둥근 눈을 더 동그랗게 뜨면서 눈을 맞추는 꼴이 당돌하기 짝이 없었다. 파리어는 기가 찬 몸짓으로 당혹감을 감췄다.


“간이 부었군, 소위. 못 들은 걸로 해두지.”

“어딜 가든 대위님 눈길이 따라옵니다. 훈련 중에도, 무전 너머로 대위님 시선이 느껴진다고요. 하늘, 바다, 비행장, 어디로 도망가도 계속 따라붙는데 그걸 모르면 바보 아닙니까?”


자신만만하게 몰아붙이는 주제에, 어쩐지 둥근 눈매는 더 아래로 처져 보인다. 선임은 본능적으로 팔을 뻗어 포슬한 뺨을 쓰다듬고 싶은 것을 참았다. 대신 그는 안 그래도 흐트러진 자기 머리터럭을 짜증스럽다는 듯 몇 번 더 휘적였다. 거친 손길에 막바지에 몰린 피식자의 피로가 묻어 있었다.


“너 군에서 쫓겨나고 싶어? 아무리 어려도 머리 굴릴 짬밥은 되는 놈이 이게 무슨 짓이야?”


훈련이 끝난 비행장이었으나, 아직 남아서 정비하는 사람이 남아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기에 파리어는 부러 험악하게 몰아붙였다. 연대 최고의 에이스라는 그의 명성으로도 막아줄 수 없는 일들이, 군대라는 보수적인 조직에는 존재했다. 평생 독고다이로 살아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예정인 자신은 그렇다 쳐도, 아끼는 후임의 촉망받는 장래까지 불명예로 먹칠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바로 그 아끼는 후임 녀석이 이 골치 아픈 상황을 부른 장본인이라고 해도. 파리어는 화를 내고 싶었다. 제발 그런 눈으로, 그렇게 올곧은 눈으로 날 바라보지 말라고. 겁 많은 그는 점점 거리를 좁히며 다가오는 콜린스를 차마 피하지도 못했다.


“뭐가 그렇게 두렵습니까?”


평소 나긋나긋하고 온화하던 목소리에 날이 서 있었다. 바람에 휘는 버들인 줄 알았던 것이 사실 강철이었다.


“……”


침묵을 지키는 파리어의 모습에, 후임은 아직 앳된 티를 내며 재차 캐물었다.


“뭐가 그리 무서워서 스스로를 속이고 도망치는지 알려주십쇼.”

“그럼 넌 안 무섭냐.”


파리어가 되물었다. 콜린스의 거침없던 직진이 잠시 멈칫하는 것을 보고서, 그는 이 순간까지 차마 자신에게마저 털어놓을 수 없었던 두려움과 공포를 풀어냈다.


“소문들, 징계, 실추된 명예, 원치 않는 제대. 가족들은 등을 돌리고 두 번 다시 하늘을 날지도 못할 거다. 그래도 넌 두렵지 않다고?”


낮고 음울하게 가라앉은 음성이 수많은 가능성을 토로했다. 묵묵하게 늘어놓지만, 질문하는 말꼬리가 미약하게 흔들렸다. 파리어는 다가올 끝을, 고백도 하지 못하고 사라질 연정의 결말을 기다렸다.


그러나 물러날 줄 알았던 빛은 오히려 한 걸음 더 다가서는 것이었다.


“알게 뭡니까, 어차피 죽으면 아무 소용없을 일인데.”


나무처럼 뻣뻣하게 굳어버린 파리어를 향해, 금발의 후임은 겁 없이 손을 뻗었다. 그는 조종사답게 마디지고 굳은살이 불거진 손가락을 들어 파리어의 거칠한 뺨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입술, 턱, 어깨, 가슴을 지나 떨고 있는 손바닥을 꼭 붙잡으며 말했다.


“오늘이 스핏파이어 사이에 있는 날 보는 마지막 날일 수도 있어요. 당장 내일 어떻게 될지 누가 알텐가요? 오지 않은 미래 때문에 숨죽이느니, 나는 지금을 살 겁니다. 욕할 테면 해 보라죠. 당신을 데리고 날아가 버릴 테니까.”


두 손을 붙잡고 눈까지 마주치며 말하는 폼이 제법 진지해 보였다. 큰 키 때문에 허리를 낮춰 경애의 입맞춤을 건네는 후임을, 파리어는 차마 밀쳐낼 수 없었다. 그는 뺨에 닿는 입술의 부드럽고 말캉한 감촉을 느끼며 생각했다.


‘전쟁 탓이다. 전쟁이 사람들의 정신을 뒤집어 놓았듯이, 이 녀석의 머리도 헤집어 놓은 거다. 언제 죽음이 찾아올지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판단도, 이성도 잃고 순간의 충동에 삶을 던져버리는 것. 그 충동을 경계해야 한다. 넘어가는 순간 죽음보다 가혹한 경멸이 찾아들 테니까.’


네가 사랑으로 착각하는 것은 다만 공포가 불러온 절박함일 뿐이라고, 응당 그렇게 일러줘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파리어는 할 수 없었다. 좀처럼 떼어지지 않는 입을 열어 꺼낸 말은 스스로 듣기에도 한심할 만큼 맥빠진 체념이었다.


“마냥 순해 빠진 놈인 줄 알았더니,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고집불통이었구만. 생긴 거랑 달라도 너무 달라. 완전히 속았어.”


불퉁한 목소리가 투덜거리자, 두 손을 잡고 있던 손끝이 환희로 파리하게 떨렸다. 용기 없는 남자의 무뚝뚝한 푸념 뒤에 숨은 진심을, 콜린스는 모르지 않았다. 어느 때보다도 환한 미소가 말간 얼굴 위로 햇살처럼 피어올랐다. 말은 안 해도 긴장했었는지 움츠려 있던 어깨가 서서히 넓게 퍼지고, 이제 갓 피어난 사랑에 부드러운 눈매가 아치처럼 휘었다.


“그래서 절 좋아하시잖아요. 알고 있습니다.”


어린 후임은 두 팔 벌려 파리어를 끌어당겨 토닥이듯 말했다. 비행장 저편에서 마지막 수리를 끝내는 정비병들의 발소리가 들렸다. 파리어는 귀를 닫은 채, 다만 연인의 품속으로 숨었다. 부드러운 심장 박동이 울리는 그 품에 안기면 죽음의 공포도, 세상의 비수도 발소리를 죽였다.


콜린스. 낮게 읊조려보는 이름에 작은 매가 어르듯 속삭였다.


“그러니까 이제 그만 사랑한다고 말해주세요.”


파리어는 조용히 등을 어루만지는 손길에 몸을 맡겼다.









<후일담 쓰고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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