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출간 직후 서점에서 훑었을 때는 별로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서 내려놓은 책이다. 일 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이 책을 고른 이유는 순전히 덩케르크 때문이다. 한 번 덕질을 시작하면 원작과는 거리가 먼 분야까지 관심 분야가 동심원처럼 퍼지는 성격이다. 덕분에 2차 대전기 미 육군의 위장술 전문 부대라는, 시작과는 사뭇 차이가 있는 영역의 책을 읽게 되었다. 그런데 이 책, 읽다 보니 술술 진도가 나가고 재미있다. 


기만과 위장술을 전문적으로 담당한 부대, 미 육군에서 평균 IQ가 가장 높다는 소문이 돌던 부대, 대원의 70% 이상이 예술 종사자로 구성된 부대라니, 흥미가 안 일 수 없다. 군대와 예술가, 멀기도 멀고 참 독특한 조합이다. 눈길이 끌리는 것이 당연하다. 반 세기가 지나 드디어 대중에 공개된 고스트 아미의 영웅담은 우울하고 쓸쓸한 2차 대전사에서 모처럼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한다. 





미 육군 제 23본부 특수부대 공식 마크.
미 육군 제 23본부 특수부대 공식 마크.




아래는 발췌문.





† 제 23본부 특수부대 지휘체계

 제 23본부 특수부대는 고스트 아미의 정식 명칭이다. 화가였던 부대원이 부대의 지휘체계를 간단히 그림으로 나타냈다. 특히 페인트칠을 하고 있는 위장공병(Camouflage Engineering)의 삽화가 눈에 띄는데, 붓과 물통을 들고서 춤추듯이 팔을 휘두르는 동작에서 이 부대 대원들의 숨길 수 없는 감각이 엿보인다. 어느 누가 군대에서 저런 귀여운 아이콘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이나 했을까. 예술가들의 군대여 영원하라! 


참고로 23본부 특수부대는 총 네 가지 대대로 나뉘어 있었다. 고무로 모조 탱크를 만들고 위장술에 특화된 위장 공병, 가짜 통신을 보내서 도청하는 적을 속이는 역할의 통신 대대, 전차/포탄/이동 시의 소음을 재현하는 음향기만작전 대대, 방어를 담당하는 전투공병 대대가 그것이다. 





† 예술 종사자들이 모인 부대여서 그런지, 확실히 다른 어느 부대보다도 그림 자료가 대거 남아있다. 목캔디 박스를 팔레트로 개조해서 휴대하면서 틈 날 때마다 그림을 그린 엽서들이 많다. 수송선에서, 야영지에서, 최전선에서, 점령한 도시에서, 어디에서나 그림을 그리고 다닌 병사들을 보고 있으려니 그림장이들의 집념에 괜히 감탄이 인다. 특히 '병사 수송'처럼 개성 넘치고 귀여운 일러스트는 이곳 고스트 아미가 아니면 찾아보기 어렵다. 



 

목캔디 박스를 개조한 팔레트.
목캔디 박스를 개조한 팔레트.



부대원들을 그린 캐리커쳐.
부대원들을 그린 캐리커쳐.



조셉 맥 병장, '병사 수송'.
조셉 맥 병장, '병사 수송'.



영국에 처음 도착한 병사들은 야영지에 재미 삼아 표지판을 만들었다. 브루클린, 로마, 세인트루이스, 런던, 베를린, 도쿄까지의 거리를 나타내는 표지판. 언뜻 보면 실제로 존재하는 표지판처럼 감쪽 같다. 광고, 간판 업계 종사자가 많았던 고스트 아미에서 이런 표지판 하나쯤이야 순식간이었으리라. 





† 그림러 병사의 집요함 (p.79) 


"아서 실스톤 상병이 회상했다. 그는 무거운 군장을 지고도 유혹을 못 참고 미술 도구를 꺼내 눈앞에 펼쳐진 놀라운 광경을 스케치했다. 엄청난 규모의 침공군 함대, 공중에 떠 있는 방공 기구들, 그리고 '상상할 수 있는 온갖 종류의 선박들이 시야 닿는 곳까지' 바다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고스트 아미는 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즈음해서 처음 유럽에 파견되었다. 유타 해변으로 상륙한 대원들은 혼란스러운 상륙 작전의 장관을 흑백 스케치, 수채화 등으로 남겼다. 모두 파도 치는 상륙정을 타고 가면서 그린 것들이다. 




† 위장대대의 미군들은 넷이서 탱크를 든다 (p.83) 


위장공병 대대의 주된 도구는 고무로 만든 모조 전차와 모조 화포였다. 독일군의 주의를 끌기 위해서 반쯤 드러내고 반은 감춘 모조 전차들을 세워놓았는데, 덕분에 진짜로 착각한 아군의 해프닝도 적지 않았다. 


"또 한 번은 자전거에 올라탄 프랑스인 두 명이 어쩌다 보안 경계선 내로 들어왔다. 실스톤이 정지시켰을 때 그들은 이미 너무 많은 것을 보고 말았다. '그들은 미군 네 명이 40톤짜리 셔먼 전차를 번쩍 들어 방향을 돌려놓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저를 쳐다보길래 제가 '우리 미군들이 힘 좀 씁니다' 그랬죠." 




미군은 넷이서 탱크를 듭니다.
미군은 넷이서 탱크를 듭니다.




† 그렇다면 위장대대는 어떻게 진짜 같은 부대를 만들었는가? (p.84)


"이를테면 시각 기만 전술은 미세한 부분까지 신경 쓰는 미술가의 눈썰미를 요구했다. '숨겨놓은 듯하면서도 실은 뻔히 보이도록, 위치를 잘 잡아 배치했습니다.' 적의 정찰기가 모조 장비 한 대의 한쪽 모서리만 보고도 그보다 더 많은 장비가 숨겨져 있을 거라고 억측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 특정 지점에 전차를 여러 대 배치해도 그곳에 이르는 전차 궤도 자국이 없으면 공중에서 봤을 때 진자로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406부대 전투공병들은 불도저를 이용해 들판에 전차 궤도 자국을 냈다. 가짜 화포를 설치할 때는 진짜 화포처럼 주변에 탄피를 흩뿌려놓았다."




† 순회 공연단이 될 것 (p.85)

 

고스트 아미는 모조 장비, 가짜 소음, 가짜 통신 외에도 직접 부대원들이 타 부대를 연기하면서 거짓 정보를 흘리고 다니라는 지령을 받았는데, 이른바 '특수 효과'였다. 다음은 부대 책임자인 리더 대령의 지령이다. 전투가 아니라 연극을 요구하는 부대라니, 확실히 특이하다. 


"맡은 임무에 대한 제 23본부 특수부대의 자세가 한 쪽으로 치우쳐 있다. '군사적'인 요소가 지나치고 '쇼맨십'이 부족하다. (...) 제 23본부 특수부대는 스스로를 순회 공연단으로 여기고 언제든지 즉석에서 아래 부대를 연기할 준비가 돼 있어야 마땅하다. (...) 통신망, 육지, 공중에서 매우 날카롭고 꼼꼼한 관객이 우리의 공연을 지켜보고 있다는 점을 기억하라. 그들이 우리의 연기를 진짜로 믿어야만 한다." 




† 아군도 속이는 특수 효과(연기). (p.109)


고스트 아미 대원들은 위장술, 가짜 통신, 음향 기만 외에도 타 부대를 연기함으로써 전선의 공백을 메웠다. 타 부대의 계급장, 표지, 사령부 마크 등을 사전 제작해서 착용하고 주둔지 주민들 사이에 거짓 정보를 흘리고 다니느 것도 이들의 몫이었다. 어찌나 철저하게 연기해야 했는지 같은 미군도 이들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고 당황하기 일쑤였다. 


"(...) 중위는 작전 중에 타 부대에 복무 중이던 옛 친구와 마주친 일을 회상했다. 그는 (...) 지난번 만났을 때 시러큐스가 제 5 기갑사단 마크를 달고 있었고, 또 그전에는 다른 패치를 착용했던 일을 기억해냈다. (...) 그래서 시러큐스는 자신이 좀 문제가 있어서 이 부대 저 부대로 계속 전출당하고 있다고 친구에게 고백했다. '야 너 조심해.' 친구는 걱정스럽게 경고했다. '잘못하면 강등 당해 소총수 되는 수가 있어.' 시러큐스는 그저 미소만 지었다."




† 예술 병사들의 집요함: 그림 그리기 2 (pp.85~86 외)


"그들은 대기하는 동안 주변을 탐색했다. 화가 출신 병사들은 물감과 연필을 꺼내 들었다. '기회만 생기면 그림을 그렸습니다.' (...) '세계가 전쟁 중이어서 이렇게 외국에 나와 엄청난 모험을 하고 있으니, 이걸 무조건 그림으로 남겨야 했습니다.' 이들은 노트, 색인카드, 영수증 등 뭐든 구할 수 있는 종이에 데생을 하고 물감을 칠했다. 프랑스 사람들, 폭격당한 농가 그리고 서로의 모습을 그렸다." 


그중에서도 파리 해방 직후에 도시에 주둔하면서 남긴 엽서그림들이 눈에 띈다. 유럽 제 1의 도시, 소위 예술의 도시에 온 것이 흥분됐는지 병사들은 이전과는 사뭇 다른 세련되고 유려한 스케치를 남겼다. 



'특이하게 자전거 타기'. 파리에서.
'특이하게 자전거 타기'. 파리에서.


파리에서 만난 소녀. 빌 블라스. 이게 1940년대의 헤어와 패션이라니.
파리에서 만난 소녀. 빌 블라스. 이게 1940년대의 헤어와 패션이라니.



파리의 카페에서.
파리의 카페에서.




† 유럽이라는 곳: 전쟁의 막바지, 독일 진격 중에. (p.193)

그러나 화려하고 고색창연한 구세계의 겉면 뒤에는 아메리카 대륙과는 선천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는, 전쟁이 잦은 유럽의 현실도 분명히 놓여 있었다. 


"룩셈부르크를 벗어나던 대원들은, 지역민이 독일의 재점령에 대비해 걸어놓은 스와스티카 깃발과 백기를 다시 급하게 성조기로 바꿔 거는 장면을 목격했다. '유럽이라는 데가 어떤 곳인지 약간 감이 오더군요.' '그들은 온갖 방향에서 들어닥치는 세력의 희생양이었고, 늘 살아남기 위한 준비를 해야 했습니다."




† 44년의 크리스마스, 프랑스에서. 아이들의 얼굴. (p.197)

44년 혹한기의 크리스마스를 고스트 아미 대원들은 프랑스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맞이했다. 먼 이국땅에서도 이들은 실력을 발휘해서 나름의 크리스마스 파티 준비를 했고, 그중에는 동유럽에서 추방당한 피난민 아이들을 초대해서 선물을 주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다우드 병장이 그중 한 아이의 반응에 대해서 기록했다. 


"빅터 다우드 병장은 폴란드에서 온 일곱 살과 세살배기 자매의 슬픈 눈매, 그리고 아무리 달래고 선물을 줘도 시무룩한 어린 소년에게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생생히 기억합니다. 그 아이는 뚜껑 없는 상자를 들고 있었어요. 아무도 그 쓸쓸해 보이는 아이를 웃게 할 수 없었습니다. 걔가 대체 무슨 일을 겪었는지는 오직 신만이 아실 겁니다.'"




펼치면 미군이 드러나는 크리스마스 엽서. 부대원들이 직접 제작해서 나눠주었다. 
펼치면 미군이 드러나는 크리스마스 엽서. 부대원들이 직접 제작해서 나눠주었다. 



† 여전히 위험한 임무들 (p.159)


여기까지 읽으면 이들은 직접 전투에 참가하지도 않고, 참 편한 군 생활을 했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실제로 대원들은 당장 총검을 들고 싸우는 아군 동료들에 비해서 자신들은 참 편하게 전쟁을 견뎠다는 회상들을 한다. 그러나 23본부 특수부대의 존재 목적이 다른 아군 부대를 대신해서 적을 유인하는 역할이었던 만큼, 그들의 모든 작업은 총탄이 빗발치는 최전선에서 이뤄졌다. 전선에서 모조 탱크를 설치하고, 가짜 부대를 운용하고, 가짜 통신을 흘리며 빈 전선을 메꾼 것이다. 여전히 위험은 상존했다. 


"기만작전 수행 중에 포격을 받는 일은 흔했다. (...) 매번의 임무가 마지막 임무가 될 수 있었지요. 누구한테 총격을 가하거나 공격을 막아내는 임무는 아니었지만, 독일군의 공격 위험에 상시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결국 전쟁은 전쟁이다. 고스트 아미에서 복무한 대원 다수는 이때 경험을 통해서 일생 가져갈 영감, 기술을 얻었지만 동시에 부상이나 사망을 당한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도 모 장르의 로저스 씨는 역시 이 부대에 들어가는 게 훨씬 나았으리라는 생각이 드는 걸 멈출 수 없다. 그러다가 한참 뒤에 친구와 재회하는 것이 최상의 시나리오였을 텐데. 



† 그러고 보니, 고스트 아미는 마크도 참 개성 있다. 언뜻 고스트 버스터즈 로고를 떠올리게 하는 유령 마크는 실제로 당시에 공식 부대기록을 작성하면서 사용된 것이다. 공식 기록 표지에 덕지덕지 붙은 서로 다른 마크들은 아마 3년 여의 참전 중에 고스트 아미가 흉내낸 다른 부대 마크를 모아놓은 것이다. 역시 끝까지 재치 있는 군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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