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알못 주의, 퇴고 없음 주의. 


비밀 연애 중인 파리어와 콜린스가 방에서 뜨끈뜨끈 떡치는 내용인데, 막상 꾸금은 다음부터 나옴 주의. 










RAF 호킹스 기지의 시설들은 ‘왕립’이라는 수식어에 맞지 않게 소박하고 단촐한 편이었다. 아무리 늦게 쳐줘도 지난 세기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는 낡은 숙사, 아침저녁으로 장병들이 집합하는 흙먼지 가득 배인 강당, 그곳에서 배식되는 식사만큼이나 후진 식당 건물 등, 이곳에 삼 개월 이상 머물러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진절머리를 내는 것이 관례였다.


그런 RAF 기지에 어쩐 일인지 새 숙사가 들어선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거주자들이 두 팔 벌려 환영한 것은 당연했다. 짠돌이 같은 높으신 분들이 어쩐 일로 장병들의 복지를 생각해주느냐는 비꼼 섞인 흥분이 부대를 휩쓸었고, 호킹스 사람들은 바쁜 일과 중에도 틈을 내어 이사를 준비했다. 숨 막히는 더위도 가라앉고, 날씨가 선선해지기 시작한 어느 초가을 날, 드디어 전체 이사 날짜가 정해졌다. 특별 외박 허가까지 받은 장병들은 병사 장교 할 것 없이 들뜬 기분으로 구 숙사에서 신 숙사까지 가는 700m 가까이 되는 거리를 기꺼이 짐을 들고 나섰다. 그리고 저마다 등짐이며 상자 더미를 안고 줄지어 가는 무리 속에는 포티스 팀의 두 조종사도 섞여 있었다.


과묵한 말수만큼이나 짐도 가벼운 파리어 대위와, 다른 사람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껑충한 키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콜린스 소위의 동행은 멀리 줄 밖에서도 눈에 띄는 조합이었다. 그 옆을 지나가던 후임이나 동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파리어의 가벼운 두 손을 향해 부러운 시선을 던졌다.


“대위님, 짐이 정말 적으십니다! 부럽습니다!”

“음.”

“여, 파리어. 자넨 개인 비품도 없어? 어째 지급품이랑 담배 보루밖에 안 보인다?”

“음.”


여느 때처럼 비음 섞인 신음 하나로 모든 답을 끝내는 파리어의 말을 다른 전우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은 대개 콜린스 덕이었다. 무뚝뚝하고 과묵한 성정 때문에 오해를 사기 쉬운 그의 태도는, 늘 그 옆에 붙어 다니는 후임 덕분에 어느 정도 상쇄되었다. 이번에도 어린 후임이 에이스의 단답에 어깨를 움츠리는 것을 눈치채고서, 콜린스가 대신 나섰다.


“파리어 대위님이 원래 사품 잘 안 들이십니다.”

“그래? 난 집에서 보낸 사진이랑 옷만 챙겼는데도 팔 떨어질 것 같다.”


파리어의 동료가 보란 듯이 들고 있던 상자를 들썩이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열 지어 지나가는 장병들의 짐 한 구석에는 저마다 가족사진이라던가 어린 자녀, 부인, 하다못해 애인 사진이 끼워진 액자가 한 가득이었다. 그에 비하면 보스턴 백 하나에 필요한 물건만 챙긴 파리어의 널널한 짐 속에 확실히 소중한 액자라던가 앨범 같은 것이 들어갈 공간은 없어보였다. 동료 대위는 자기 짐의 절반 밖에 안 돼 보이는 가벼운 가방을 흘끗 내려다보더니, 한 마디 툭 던졌다.


“정 없는 녀석.”


진담인지 농담인지 모를 말을 던지고선 앞서 가버리는 동료를 보고서도 파리어는 별 말 하지 않았다. 오히려 옆에 있던 콜린스가 당황해하며 말했다.


“그, 대위님, 신경 쓰지 마십쇼.”


남들에게 들리지 않도록 작게 귓속말로 속닥거리는 행동이 누가 봐도 달래려는 어조였다. 그는 아무래도 무뚝뚝한 성격 때문에 남들한테 오해를 사는 일이 잦은 상관 걱정까지 대신 하는 경우가 잦았다. 슬며시 옷깃을 잡아 오는 손이 이번에도 안절부절 못하고 이리저리 매무새를 만져주고 있었다.

그러나 파리어는 아무렇지 않은 기색으로 고개를 까닥였다.


“사진이라면 항상 지갑에 넣어서 다녀.”

“예?”


가장 가까운 친척이 8촌 관계인 파리어의 가족 사정을 잘 아는 콜린스가 의아한 눈빛을 띄었다. 그는 이미 오래 전에 떠난 사람들 사진까지 갖고 다니며 청승떨고 싶지 않다던 파리어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사실 거짓말이었던 걸까? 아직 많이 슬픈데도 애써 아닌 척 한 걸까? 생각하는 게 곧이곧대로 얼굴 위에 떠오르는 성격답게, 콜린스는 자못 심각하게 눈썹을 축 늘어트리며 팀 메이트를 내려다봤다. 서글서글한 인상이 걱정스럽게 찌푸려지자, 파리어가 정신 차리라는 듯이 어깨를 툭 쳤다.


“네 사진.”

“예에?”

“전에 기자양반한테 부탁해서 받은 거.”


일전에 국방부 섭외로 다녀간 사진 기자를 말하는 것이었다. 근사한 홍보 사진을 찍어야 한다며 포티스 팀원들도 강제 동원되었는데, 그때 몰래 한 장 더 부탁했던 모양이었다. 불현 듯 기억이 떠오른 콜린스는 얼굴을 발그레 물들이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아아니 그걸 대체 왜 가지고 다니신답니까?”


그야 당연히 예쁘니까 지니고 다녔지만, 심하게 부끄러워하는 콜린스의 반응 탓에 파리어는 대충 얼버무리고 말았다.


“그냥 행운의 부적 같은 거지.”


옆에서 보통 그런 건 아내 사진이지 않느냐는 둥 트집 잡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파리어는 일부러 못 들은 척 했다. 연인의 흉터 하나 없는 상아빛 볼이 잘 익은 과실처럼 진홍빛으로 물드는데, 당장이라도 손을 뻗어 콕콕 찌르고 문지르고 싶은 충동을 참는 것만으로도 정신력이 바닥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주위에 보는 눈, 그것도 제복 입은 장병들이 널려있는 상황에서 대놓고 팀 메이트(당연히 남자)와 수상쩍은 접촉을 할 만큼 파리어가 대책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대신 그는 뒤에서 꾸물거리고 있는 콜린스를 재촉하며 발걸음을 빨리 했다.


“대위님, 진짜로……?”

“빨리 짐이나 옮겨라.”

“……네.”


짧게 잘라내는 파리어의 태도가 어딘가 어색해 보여서, 콜린스는 할 말이 있는 듯 입술을 우물거리다가도 그만 뒀다. 목덜미가 붉어진 대위는, 부러 속도를 높여 성큼 성큼 걸었다. 유독 다리가 긴 후배보다 한참 앞서서 걸으려니까 저절로 보폭이 빨라져 거슬렸지만, 그대로 눈이 마주쳐서 기어이 남사스런 사고를 치는 것보단 나으니 어쩔 수 없었다. 남은 길을 걸어가는 내내, 두 사람은 어쩐지 내외하는 부부처럼 어색하게 한 뼘 거리를 두고 앞서거니 뒤지거니 했다.


대화가 재개된 것은 신 숙사에 도착한 다음부터였다. 새롭게 단장해서 깨끗한 로비에 들어서자, 행정장교가 방 배치를 알려줬다.


“몇 동이야?”

평면도를 살펴보던 파리스가 물었다.


“저 우측 동입니다.”

“너도 2인실이네. 장교들은 다 2인실 줬나봐?”

“이번엔 돈 좀 썼나 봅니다. 저야 감사하죠. 사실 세 명이서 쓸 때 좁아서 고생했습니다. 키 작은 사람으로 배치되면 좋겠네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골똘히 안내도를 읽는 모습이 퍽 귀여웠다. 파리어는 저절로 미소가 번지려는 것을 꾹 눌러 참으면서 현실을 직시한 말로 대꾸했다.


“여기 있는 놈들 중에 아무나 던져 넣으면 되겠네.”

“아 왜 그러십니까 진짜.”


주거니 받는 사이에 어느 새 우측 동에 도착했다. 콜린스는 둘 다 3층까지 올라가야 한다는 걸 알고 나자 꽤 기쁜 듯한 기색으로 말을 붙였다.


“이번엔 같은 층이지 말입니다!”

“좋냐?”


한 층 한 층 올라갈 때마다 발걸음이 점점 더 들뜨는 모습이 퍽 귀여웠다. 파리어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가, 싱글싱글 웃으며 대꾸하는 콜린스의 대답에 멈칫해야 했다. 평소 애어른처럼 의젓하다가도 둘만 있을 때면 은근슬쩍 천진해지는 어린 애인이, 구슬 같은 눈을 깜빡이며 되물은 것이었다.


“그럼 대위님은 안 기쁘십니까? 전 예전 숙사에선 매번 1층에서 헤어져야 해서 좀 아쉬웠습니다. 오 분이나 더 일찍 헤어져야 하잖습니까.”


그러더니 머뭇거리다가 목소리를 낮추며 덧붙였다.


“이젠 오 분 더 같이 있을 수 있어서 기뻐요.”


복도에 둘밖에 없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재빨리 말을 놓는 콜린스의 태도에 파리어는 순간적으로 뇌가 아찔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보통 침대 위에서가 아닌 한 철저하게 경어를 지키던 녀석이 요즘 따라 점점 대담해지기 시작하더니, 이젠 수시로 심장을 들었다 놨다 한다. 그래도 이런 애교까지 부릴 줄이야. 방심한 사이에 제대로 심장을 두드려 맞은 에이스는 적절하고 재치 있는 말로 받아치긴 커녕, 금붕어처럼 입을 뻐끔거리기만 했다.


당황해서 얼어붙은 연인을 아는지 모르는지, 상황의 장본인은 뽀얀 얼굴 가득 뿌듯한 미소를 띠고서 걸음도 사뿐사뿐 남은 층계를 걸어 올라갔다. 노란 뒤통수가 층계 너머로 살랑살랑 사라지는 것을 보는 내내, 파리어는 만약 후임이 들었다면 엄청나게 실망했을 혼잣말을 삼켰다.


‘아니, 내 심장 건강엔 예전이 더 나은 것 같다.’


같은 층에서 지낼 거라는 사실 만으로 이렇게 긴장될 것이라곤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젊은 나이답게 매사에 좀 더 긍정적인 콜린스는 어떨지 몰라도, 최근 들어 스스로의 절제력에 의심이 가기 시작한 파리어로서는 막연히 좋아하기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훈련 중에 시선이 마주치기만 해도, 무전기 너머 스코틀랜드 억양이 강하게 섞인 목소리가 들려오기만 해도, 편대 비행 중에 날개 끝이 살짝 스치듯 닿기만 해도 피가 끓는 것처럼 달아오르는데 잠들기 직전까지 같은 공간을 공유해야 하다니. 이 아이러니한 행운 속에서 파리어는 약간 무거워진 발걸음을 옮겨 콜린스 뒤를 따랐다.


그러나 사십 가까운 세월을 사는 동안 항상 뒤통수만 쳤던 행운이 어쩐지 이번만큼은 한 번에 몰려들었고, 밀린 세월만큼 한꺼번에 들이닥친 행운의 해일 앞에서 대위는 육지로 떠밀린 생선처럼 심장이 퍼덕거리는 것을 직접 체험할 수 있었다. 3층까지 올라올 때까지만 해도 설마 했던 마음은 복도마저 같은 방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좌불안석으로 뛰기 시작하더니, 콜린스의 발걸음이 자기와 같은 314호 문패 앞에서 멈췄을 때는 그대로 멈춰버렸다. 물론 그는 언제 어느 때라도 당황을 표출하지 않도록 교육받은 에이스였기에, 표정만은 가까스로 예의 침묵을 유지할 수 있었으나, 희미하게 떨리는 동공만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런 희미하게 찌푸려지는 미간 주름을 아는지 모르는지, 젊은 소위는 그저 반가움에 밝게 조잘거릴 뿐이었다.


“저희 같은 방인가 봅니다!”


그렇게 외치는 소리에 감탄과 설렘이 깊이 묻어있어서, 파리어는 차마 티를 낼 수도 없었다. 그는 다만 잠깐 행정실 좀 다녀오겠다는 말과 함께 어안이 벙벙한 콜린스를 두고 떠났다.


조급하게 걸음을 옮겨 다다른 행정실에서 그를 맞이한 건 행정장교의 안타까운 선고였다.


“두 분이서 같은 편대시지 말입니다. 팀워크도 뛰어나고, 아무래도 같은 방 쓰는 쪽이 더 편하지 않으십니까?”


어디까지나 상식적이고 순수한 호의에서 같은 팀 조종사끼리 묶어줬던 소위는, 갑자기 들이닥친 파리어 대위의 무시무시한 눈빛을 받고서 약간 쫄아 버렸다. 사이좋은 줄 알았더니 사실 근무 시간에만 그렇고 사적으로는 별로였던 걸까, 지레 그런 짐작까지 해보았다. 물론 진실은 정반대 방향을 가리켰지만, 그토록 비밀유지에 신경을 쓰는 파리어가 티를 낼 리 만무했다. 침묵, 바로 그 침묵의 부담이 문제였다. 그렇다고 두 계급 차이를 같은 방에 묶어버려? 당장이라도 한 마디 쏘아붙이면서 갈구고 싶은 욕구가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괜히 민감하게 반응하면 도리어 의심을 살지도 모른다. 보통 원만하게 잘 지내는 팀원이 있으면 둘을 같이 묶지, 얼굴도 잘 모르는 데면데면한 사람들끼리 같이 묶어버리는 경우는 잘 없는 것이 사실이니. 파리어에겐 다만 꾹 다문 잇새로 혀를 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이 사단을 일으킨 행정장교는 심기 불편함을 전신으로 드러내는 대위의 기에 눌려서 떠듬떠듬 변명했다. ‘


“죄송합니다, 대위님! 하지만 이제 남는 방이 없습니다. 정말입니다!”


말하자면 일단 사과는 하지만 나도 어쩔 도리가 없다, 그런 뜻이었다. 더 이상 애먼 사람만 괴롭히는 것도 치졸해 보여서, 파리어는 그만 발길을 돌렸다.


다시 3층으로 돌아갔을 때, 방 안에서 콜린스는 벌써 짐을 풀기 시작하며 부산을 떨고 있는 중이었다. 공과 사가 얽혀버려서 당황스러운 건 오직 파리어 하나뿐인지, 다른 플랫메이트는 내색 하나 없이 부지런하게 휑한 방 이곳저곳을 채우는 데 온 정신이 팔려 있었다. 이제부터 몇 년은 써야 하는 낯선 방, 그래도 일단은 ‘내 방’인 공간에서, 한창 눈만 마주쳐도 화끈거릴 관계의 상대가 돌아다닌다…… 근무 시간에는 칼 같이 챙겨 입는 활동복 단추도 풀고, 송골송골 땀이 맺힌 이마를 흰 팔목으로 쓸어 올리면서. 콜린스가 아무리 담백한 태도를 보인다 한들, 연상의 대위는 덜컥 직장 기숙사에 신혼살림을 차리게 된 찜찜함을 지울 수 없어 쓴맛을 다셨다.



*

남은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도 모르는 새, 선뜻 저녁이 다가왔다. 콜린스는 다른 장병들처럼 이삿짐 정리는 나중으로 미루고 펍으로 가는 대신 착실하게 짐 정리하기를 택했고, 덕분에 혼자 일하게 두고 내빼기 뭐했던 파리어까지 합세해서 이틀치 일을 하루 만에 끝내버렸다. 작은 방이긴 해도 나름 바삐 움직인 탓에 가장 열심히 일했던 콜린스는 땀에 푹 절어버렸다. 어린 소위는 무심한 손길로 짧게 깎은 목덜미의 땀을 슥 훔쳐냈다. 파리어의 눈길이 그 발갛게 달아오른 살결에 가 닿았다 .


“아휴, 더워라. 대위님은 샤워 오래 걸리시죠? 저 먼저 씻겠습니다!”

“……그래.”


콜린스는 대답 전의 침묵이 무얼 의미하는지는 꿈에도 생각 않고서 발걸음도 사뿐사뿐 샤워실로 들어가 버렸다.

젊은 소위는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모습으로 새 방에 금세 적응했다. 직속 선임이자 비밀 연인과 직접 방을 쓰게 된 당황도 몇 시간 뒤에는 눈 녹듯이 사라져서 원래 제 집이었던 것 마냥 팔랑팔랑 활개를 치고 다닌 것이다. 동거인의 어색함은 안중에 없는지 꺽다리로 껑충껑충 걸어 다니면서 집안 곳곳에 제 흔적을 남기고 다녔다. 평소 행실 바르기로 유명하더니, 양치도 깨끗이, 샤워도 깨끗이, 군복도 각 맞춰서 깔끔하게 접어서 수납한다. 파리어가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는 어느 새 파리어 몫까지 이부자리를 준비하고서 잘 준비를 끝낸 참이었다.


“하아, 새 매트리스는 푹신푹신해서 좋네요.”


콜린스는 더 이상 침대가 삐걱거리지 않는다는 사실에 감탄하면서 포근한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평균 신장보다도 두어 뼘은 더 큰 탓에 이불 밑으로 발끝이 비죽 튀어나왔다. 그러자 찬 공기에 닿은 발이 시린지 몇 번 꼼지락거리다가, 몇 번 낑낑거린 끝에 결국 등까지 이불을 덮는 데 성공했다. 넉넉한 사이즈의 이불을 전신에 둘둘 두르고 나니까 목 위로 얼굴만 내놓은 누에고치 꼴이 되었다. 노동 끝에 찾아온 부드러운 휴식의 기쁨이 성실한 군인의 입에서 만족스러운 한숨을 뿜어냈다. 콜린스는 마지막으로 고개를 살짝 돌려 맞은편 침대에 앉아있는 파리어를 확인했다.


“잘 자요, 파리어.”


처진 눈꼬리가 부드럽게 휘어지며 웃는다. 둘만 있을 때 나오는 편한 미소였다. 그 소년 같은 얼굴이 곧바로 곯아떨어지는 것을 파리어는 착잡한 심정으로 바라보았다.



당연히 잘 잘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소등하고 침대에 누운 지 반 시간이 지났지만, 파리어는 아무것도 없는 천장만 노려보면서 송장처럼 누워 있었다. 구름이 껴서 달빛도 잘 들어오지 않았다. 전체 소등된 숙사 건물에서는 작은 발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오직 옆자리에서 나는 새근거리는 숨소리만이 귓가를 파고들었다. 억지로 눈을 감고 잠을 청하려고 하면, 맞은편 침대에서 몸을 뒤척이는 소리가 들려서 귀를 간질였다. 소용없는 자기 고문을 자행하던 파리어는, 결국 계속되는 누군가의 소박한 잠투정에 그만 참지 못하고 침대 밖으로 나왔다.


하의만 입고서 잠자리에 들었던 터라, 찬 공기가 맨 살에 닿자 팔뚝 위로 닭살이 돋았다. 일단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긴 했는데, 갈 곳이 없었다. 샤워실은 문이 낮아서 불을 켜면 곤히 잠든 콜린스를 깨울 것이 뻔했고, 비좁은 책상 위에 수그리고 앉아있자니 아래가 뻐근했다. 설상가상으로 상황을 가릴 줄 모르는 하체는 주책맞게 열기와 부피를 더해가는 중이었다. ‘제길’, 파리어는 급한 대로 구석에 있던 창가로 가서 문을 열었다. 부끄러움 모르고 솟아오르는 욕망에 찬 공기라도 쐬어야 했다. 단 하나, 그가 간과한 점은 콜린스가 잘 훈련된 군인이었고 그만큼 잠귀가 밝다는 사실 하나였다. 문고리를 돌리면서 나는 작은 소리가 깊은 잠에 빠져 있던 조종사를 깨웠다. 파리어는 불편하게 단단해진 아래에 신경이 쏠려있던 바람에 어깨에 부드러운 손길이 닿는 것을 느끼고서야 비로소 흠칫 놀랐다.


“잠이 안 와요?”


아직 잠이 덜 깼는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나른하게 울렸다. 콜린스의 손이 닿은 어깨부터 뻣뻣하게 굳어버린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린 연인은 응석 부리듯이 친근하게 등 뒤로 기대왔다. 키가 큰 콜린스가 팔을 벌려 품 안에 파리어를 가두자, 목덜미며 귓불에 느껴지는 새근거리는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추운데 들어가지 않고……’ 그는 품 안에 안긴 파리어를 한 번 더 꼭 끌어안으면서 걱정스레 중얼거렸다. 그러나 파리어로서는 감기에 걸리는 것보다도 당장 등이며 엉덩이에 꼭 닿아오는 뜨끈뜨끈한 콜린스가 더 걱정이었다. 쉽게 달아오르고 쉽게 빨개지는 콜린스의 살결은 맞닿는 것만으로도 촉촉하고 따끈한 열기를 더했고, 그 포슬한 살갗 뒤에 숨어 있는 탄력 어린 근육을 익히 알고 있는 파리어로서는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쓸데없이 상냥한 후임 녀석은 파리어가 부르르 떠는 것을 춥다는 신호로 오해했는지, 아예 어깨며 목, 팔뚝 이곳저곳을 주무르고 걱정스레 비비기 시작했다. 목덜미에서 시작해서 뭉친 승모근을 살살 마사지하고, 팔 안쪽의 움푹 팬 곳을 누르듯이 지그시 눌러준다. 그리고 허리로, 복부로, 더 아래로 조금씩 내려가는 손길. 말랑한 손끝이 익숙하게 길을 찾다가 마침내 부푼 앞섶에 닿았다. 파리어는 그동안 참고 있는 줄도 몰랐던 뜨거운 숨을 내뱉었다. 숨죽이려 했던 신음이 거칠고 낮은 울음이 되어 새었다.


손끝에 걸리는 두툼한 느낌에 멈칫한 것도 잠시 뿐, 눈치가 빠른 후배는 이내 아무렇지 않은 척 아래를 한 번 움켜쥐었다. ‘흐윽!’ 기다란 손가락이 팽팽하게 솟은 앞섶을 한 번 부드럽게 감싸자, 참지 못하고 소리가 터져 나왔다. 고개를 돌려 시선이 마주친 순간, 콜린스는 아무 일 없다는 듯 평온한 표정으로 속삭였다.


“대위님 침대로 가요.”


굳은살 배긴 자기 손을 그러쥐고서 한 걸음 두 걸음 이끄는 그 손길을 파리어는 거부하지 않고 순순히 뒤따랐다.











대자연통이랑 알레르기가 심해서 오늘은 여기까지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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